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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ptember Sky Oct 15. 2019

인생에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이 마라톤에 있었다.

너를 만나고 엄청 많이 달린 것 같아.

남자는 알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자가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처음보다 가면 갈수록 사람이 달라졌다. 점점 더 멋진 사람이 되고, 나와 잘 어울리고, 자신이 보기에도 아름답게 변해갔다. 남자는 애쓰는 만큼 아주 조금씩 나아졌다. 현저한 변화는 진실한 모습이 아니고, 스프링의 탄성처럼 금방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알아가고, 변화해 가는 모든 과정에 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없이도 남자는 스스로 잘하는 사람이다. 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가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즐겁게 하길 바랬다. 


"너를 만나고 엄청 많이 달린 것 같아." 남자가 말했다. 

"왜 달리기가 좋아?" 여자가 말했다. 

"미친 듯이 질주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찬 것도 좋고, 달리고 나면 몸과 마음의 오염물질이 모두 빠져나가는 느낌이야!" 남자가 말했다. 

"그렇구나. 달리기 뿐만이 아냐. 너라는 애는, 정말 대단해. 있지, 너를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좀 미안하기도 하고, 가끔 두렵기도 해." 여자가 말했다. 

"알고 있어. 조금 슬프고 아쉽지만 지나간 거야. 잊어버려. 앞으로 그런 생각은 점점 잃어버릴 거야. 안 그러니?" 남자가 말했다. 

"그래. 네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네가 이룬 걸 보면 놀랄 지경이야. 작년 춘마에서 sub-4를 했지? 3시간 56분이라니, 나를 앞질렀어, 한참이나. 허벅지 부상으로 몇 개월 쉬다가 거짓말처럼 회복하고, 그러더니 담배를 끊더라. 견딘 지가 벌써 7개월 째야.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는 소프트웨어 코딩 교육 분야 창업을 했지? 회사는 잘 되는 거니? 마라톤 동호회에서 발행하는 책 출판 작업은 어때?" 여자가 말했다. 



  남자가 마라톤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루하루 새로운 아침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저 그런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처럼 살았다.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남자는 많이 변했다. 달리기가 일부분 그를 변하게 만들었지만, 남자 전체를 바꾼 게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남자를 바꾸는 대부분은 여자의 일이었다. 남자는 배우고 또 배웠다. 무엇이든 제 손으로 익혀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자는 마라톤의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고, 선배들을 배우고, 닮아가고, 달리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달리기에 대해서나, 명상과 수련에 대해서나, 사람들의 관계에서나, 글을 쓰고 자기를 관리하는 일에서 남자는 노력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무턱대고 시작한 달리기가 무턱대고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이야기하듯 보였다. 


  남자는 2018년 춘천마라톤에서는 마라톤 입문 2년이 채 안될 때 sub-4(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이내 완주)를 3시간 56분의 기록으로 달성했다.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아름다운 가을이 한창이었지만, 약간은 춥고 비가 내리는 날씨에 달성한 기록이라서 너무나 좋았다. 다음 목표는 정하지 않았다. 올해 2월에 허벅지 부상이 찾아왔다. 남자는 3개월을 봄 꽃구경만 하며 지냈다. 동아마라톤과 서울 마라톤을 달리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회복 훈련을 할 즈음 봄 시즌이 끝났다. 남자는 달리지 못해 우울했다. 그가 다시 달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은 지 7개월이 지나간다. 마라톤에서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니 다른 것도 할 수 있 것 같았다. 남자는 담배를 끊기로 하고, 담배가 생각나면 나가서 달렸다. 밤에도 달리고, 낮에도 달리고, 아침에도 달렸다. 몇 달이 지나니 미친 듯이 달리지 않아도 저절로 피지 않게 되었다. 여름이 시작될 때 잘 다니던 IT 회사를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코딩 교육을 하는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창업하고 취직하고, 또 창업하고 취직하고 하는 일들이 반복된 삶을 남자는 바꾸고 싶었다. 


  남자는 달리기와 남자가 성취하고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얻는 삶을 연결시키고 싶었다. 훈련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꾸준히 언덕 훈련을 하고, 양재천을 달리고, 관문운동장에서 트랙을 달렸다. 촘촘하고 빈틈없는 마라톤을 실제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일상이 어지럽고, 힘들었고, 무어라도 해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달렸다. 


"너, 좋아 보여. 편안해 보이네." 여자가 말했다. 

"그런가? 딱히 바뀐 건 없는데." 남자가 말했다. 

"응, 여러 방면으로 다 좋아 보여. 멀리서 봐도 좋고, 가까이서 봐도 괜찮아 보여.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는지도. 잘 생각해봐. 하하" 여자가 말했다. 

"나쁘든, 좋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 누구나 영향을 받지 않겠어? 특히 너를 만나는 사람은? 하하" 남자가 말했다. 

"놀리는 건 아니지?" 여자가 말했다. 

"내가 왜?" 남자가 말했다. 


  가끔 남자는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자기에게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달리는데 들인 노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남자는 그냥 손을 놓아버리면 언제든 모두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얼마 전에 생활을 단정히 한다든가, 훌륭한 태도를 키우든가 하는 노력도 하기 싫어졌다고 말했다. 달리기도 모르고 특별히 갖고 싶던 것도 없던 때가 그리운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남자는 번아웃은 아니지만 스스로 지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빨리 달리고, 아주 먼 거리를 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손을 뻗어 무엇인가 움켜쥘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지칠 때가 있고, 풀코스를 완주한 최상의 경험이 시들해지면 실망을 하기도 한다. 



  다시 남자는 2019년 춘천마라톤에서 3시간 40분을 목표로 한다. 330(3시간 30분 이내에 풀코스 완주)을 목표로 했지만 너무 일찍 좋은 일을 다 해버리는 게 아까웠다. 좋은 것을 더 좋아하고, 좋은 시간을 더 오래 가져가는 방법은 한 번에 왕창 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해야 하고, 좀 더 보살펴야 한다. 남자는 김치의 줄기보다 이파리가 맛있는 줄 알게 되고, 물 맛이 좋은 걸 아는 나이가 되었다. 


  마라톤은 정말 신비한 운동이다.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해도 대회날의 날씨와 장소 같은 외부적인 환경과 몸의 상태나 마음에 따라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없다. 꾸준한 훈련과 단계적인 목표를 잡고 오직 스스로 만족하고, 자신을 외적인 조건에 완벽하게 맞춰가는 운동이다. 몸과 마음 상태를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고 달리기가 주는 무심함에 몰입해 즐겁게 달리고 나서 목표를 성취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을의 전설 춘천마라톤, 노랑과 빨강사이의 주황이 지배하는 가장 아름다운 마라톤 코스를 다시 뛴다. 우리는 늘 변한다. 그것도 아주 일관성 있게 바꿔나간다. 스스로 자신감에 넘쳐 반짝반짝 빛나기도 하고, 주로에서는 늘 설레고 흥분한 몸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한다. 러너를 편안하게 해 주고, 빛나게 해주는 것, 우리가 마라토너임을 말해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주로에서 심장을 입에 물고 전력을 다해 달릴 때뿐이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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