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마르면 보라색이 된다.
'보라'는 빨강과 파랑이 섞인 색이다. 당연히 빨강과 파랑이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불의 열기와 얼음의 차가움이 섞인 형태로 양극적이며 특별하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보라는 마력, 요술 등의 이미지를 지닌 아주 신비하고 고귀한 색이다. 현실인 물질세계와 지적인 영적 세계의 경계를 초월한다. 현실과 미지의 공간, 천사와 유령, 악마의 경계를 넘나드는 황홀한 색이다.
보라는 자연에서 가장 드물게 발견되는 색으로 보기에 부자연스러운 색이다. 가시광선 영역에서 보이는 색상 중 파장이 가장 짧아 맨 마지막에 나타는 색이다. 무지개의 끝점이다. 인간의 시각으로 보이는 가장 극단의 색이면서 초월에 접근한 색이 보라다.
"나는 마침내 대기의 진정한 색을 발견했다. 그것은 보라색이다. 신성한 공기는 보라색이다. 앞으로 3년 뒤에는 모두가 보라색으로 작업할 것이다." - 클로드 모네
"너를 슬프게 하려던 건 아냐. 너를 아프게 하려던 것도 아냐. 너의 웃는 모습을 단 한 번만 더 보고 싶었어. 보라색 비를 맞으며 웃는 너의 모습을. - 프린스의 곡, Purple Rain 중에서
보라색은 빨간색과 파란색이 어느 비율로 섞이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이다. 보라는 한때 여성운동의 수단으로써 커다란 붐을 일으켰다. 1980년 연보라색의 멜빵바지를 내세운 여성운동은 국경을 넘어 널리 퍼지기도 했다. 1908년 영국 여성인 에멀린 페틱 로렌스는 보라, 흰색, 녹색을 여권운동의 색으로 발표했다. "지배자의 색인 보라는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싸우는 모든 여성의 혈관 속에 흐르는 왕의 피를 상징하며, 또 자유와 품위에 대한 여성의 자각을 상징한다. 흰색은 사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에서 정직함을 상징한다. 녹색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라고 말했다.
보라색은 가시광선 영역 안에서 볼 수 있는 색상 중에 가장 파장이 짧고, 이보다 파장이 짧은 광선은 자외선으로 분류된다. 한국어에서는 모두 보라색이라고 부르지만, 영어에서는 purple과 violet으로 나누는데, 정확하게 'Putple 퍼플'은 붉은빛이 더 강한 보라, 즉 자주색(紫朱色)(색상 코드 #800080)이다. 'Violet 바이올렛'은 푸른빛이 더 강한 보라, 즉 청자색(靑紫色)(색상 코드 #7f00ff)을 말한다.
빨강과 파랑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보라색은 '빨강과 파란색이 혼합된 색'으로 정의하며, 바이올렛은 380~450nm 사이의 파장을 가진 색으로 정의된다. 무지개의 보라색은 바이올렛이라고 한다. 넓은 의미에서 퍼플이 바이올렛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미국인들은 일반적인 보라색을 말할 때는 'purple'을 더 많이 사용한다. 보라색에 흰색이 더해져 채도가 낮아진 색으로 '연한 보라'가 있다. 영어로는 Light Purple, Lilac(라일락), 또는 Lavender(라벤더) 등으로 부른다. Lilac(라일락, 색상 코드 C8A2C8) Lavender(라벤더, 색상 코드 E6E6FA)
'보라' 단어는 한글 고유어이며, 색깔을 가리키는 단어 중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이 살아남은 것은 오방색(파랑, 빨강, 노랑, 하양, 검정) 외에는 보라색이 대표적이다. 한글 고유어라고는 해도 그 어원은 몽골어(boro/poro)에서 유래하였다. '보라'라는 말의 형태가 특이해서 '보랗다', '보란', '보랗게' 등의 활용이 불가능하며, '샛노란', '새파랗다', '누르스름하다', '거무스름하다', '불긋불긋하다' 등등의 색감의 정도를 표현하는 다채로운 단어도 거의 없다. 한마디로 베일에 싸여 숨겨진 요정 같은 색이다.
보라색은 모든 색상 가운데 가장 신비스러우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색이다. 비밀스럽고 또 슬프고 우울하기도 하며, 꿈과 환상을 일깨워 준다.
보라색은 민감, 변화, 매혹적인 쾌락을 의미한다. 어두운 색조의 보라색은 강하고 신비스러우며 밝은 색조의 연보라색은 상대를 유혹해 마음을 흔드는 힘을 지녔다. 보라색은 육체적 욕망, 특히 섹스와 연관이 깊다.
심리적 측면에서 보라색은 여성이 임신하게 되면 보라색을 좋아하게 되고, 허약한 어린이들이 주로 보라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는 보라를 매혹적이라고 느끼며 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보라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체념에 빠진 사람이다. 자신의 독립성을 포기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자아가 손상되는 것은 두려워한다. 예민한 감성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결정을 내리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 보라색을 멀리하면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경쟁한다. 이를 통해 명성이나 남보다 우월한 느낌을 얻고자 하는데, 이런 심리는 겉으로는 주위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듯 가장한다. 이러한 연기력으로 상대를 자극하고, 감동을 주기도 한다.
보라색은 외향적 심리를 나타내는 빨강과 구심적 심리를 나타내는 파랑이 혼합된 색으로서, 색상 자체만으로 고고함, 세련됨 등의 이미지를 주며 이로 인해 귀부인과 귀족들의 옷에 자주 사용되었다. 또한 대립하는 양면성의 감정이 혼재하는 심리를 나타내는 색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심리학자 '알슐러'와 '해트윅'은 보라색을 '침체한 우울한 기분이나 체험을 한 불행한 아이'라 했고,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로르샤흐'는 '정서 불안을 가져오는 몸의 기능 저하'라고 보고했다.
보라는 감각과 정신, 감정과 이성, 사랑과 체념을 연결한다. 보라에는 모든 대립이 녹아있다. 보라는 눈에 보이는 영역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사이의 경계선이다. 밤이 깊어 완전한 어둠에 빠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보이는 색이 보라이다. 인도의 상징체계에서 보라는 방황하는 영혼의 색이다. 현대의 상징체계에서는 비현실적인 자극에 의식을 열어준다는 심리적 마약의 색이다. 이런 약제 이름에도 '퍼플하트' '퍼플레인'등 보라색이 자주 들어간다. 1970년대에는 의식의 확장이 주요 이슈였고 보라가 유행했다. 당시 인기를 누렸던 록 그룹의 이름도 'Deep Purple 딥 퍼플'이었다. '아 내 마음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살고 있다네' 이는 전형적인 쌍둥이자리의 한탄이다. 쌍둥이자리는 상업의 신 머큐리에 속한다. 상업은 언제나 변화를 의미한다.
모든 인간의 죄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죄는 섹스일 것이다. 빨강이 관능적인 빛을 발하려면 반드시 보라가 필요하다. 빨강-보라-검정-분홍은 순서에 상관없이 부도덕, 유혹, 섹스의 색조다. 섹스는 빨강보다 보라에 더 많이 들어있다. 보라의 비밀이다. 천재적인 작가이자 동성애자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금지된 섹스를 "회색 시대의 보랏빛 시간"이라고 불렀다. 카테일 중에 '퍼플의 정열'은 유명한 미국 칵테일로써 알코올 함량이 높아서 섹스에 대한 망설임을 없애준다고 한다.
보라는 189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세기말 예술 양식에서 가장 인기를 누렸다. '아르누보'(새로운 미술)로 불렸으며 독일에서는 '유겐트 양식'이라고 알려졌다. 유겐트 양식의 예술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매혹적인 여인들은 대부분 은색과 금색이 배색된 보라색 옷을 입고 있다. 당시에는 일차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인위적이지 않은 것은 예술이 될 수 없는 시대였다. (출처: https://lovelytoxin.tistory.com/4 [All That Purple])
보라색은 몸과 마음의 조화를 원할 때 끌리게 되는 색이며, 심신이 피로할 때 무의식적으로 찾게 되므로 치유의 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색채 심리학자 '스에나가 티미오'는 보라색은 치유의 색으로 등장하며, 숭고함과 신비스러움의 색으로 보았다. 실제로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시기에는 유난히 보라색을 가까이하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특히 몸이 허약하거나 병약한 아이들이 보라색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외에 연보라색은 절제, 신중함, 영성, 회개를 나타내거나, 능동적인 단계에서 수동적인 단계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해석은 붉은색(열정, 불, 흙)과 푸른색(지성, 물, 하늘)을 합친 색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마케팅 업계와 마케팅 학도들에겐 세스고딘의 명저이자 마케팅 바이블이 된,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의 영향으로 마케팅을 상징하는 색으로도 여겨진다.
보라색은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상징하는 유일한 색이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보라에서 하나로 결합한다. 보라색보다 더 강렬하게 동성애를 상징하는 것은 없다. 연보라색 손수건은 동성애자라는 표시였다. '보라색 손'은 미국 남성 동성애 해방운동의 상징이다. 1980년경부터는 무지개 깃발이 남성 동성애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무지개는 원래 노아의 대홍수 뒤에 "나는 생명을 두 번 다시 멸망시키지 않겠다'라는 하나님의 표식이다.
보라색이 의미하는 것은 침울함, 심오함, 요술, 신비주의, 내향성, 미용, 타락, 친절함, 고독, 비밀스러움, 모호함, 부드러움, 달콤함, 마취와 같은 내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보라색의 긍정적 키워드는 신비함, 고귀함, 화려함, 초자아, 치유, 강력함, 로마, 황제, 희망이 있고, 부정적 키워드로는 고독, 악, 우울, 불안, 상처, 갈등, 애증, 이질적, 병약함, 죽음, 독극물, 광기, 폭력, 어둠, 오만, 색욕이 있다.
참고:
컬러의 의미와 상징 <색의 힘>, 하랄드 브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