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낯선 느낌.
꽃, 아름다운 하늘, 평범하고도 지루한 일상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당신은 인생에게 약간 시달릴 필요가 있다. -알랭드 보통
날이 더웠다고, 잠을 못 자고, 훈련을 안 한 것은 핑계다. 달리기를 시작한 처음으로 돌아간다. 즐겁게 달리고, 걷지 않고, 완주하는 마음으로. 3년 만에 공식 마라톤 대회에 오니 좋았다. 익숙한 분위기인데도 왠지 낯설었다. 가장 힘든 마라톤이 열리는 곳이 공주 백제마라톤이다. 힘들면서도 자주 와서 달리는 이유는 재미있는 사연과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피니시라인을 들어올 때는 먼 거리를 달리면서 느낀 고통의 크기만큼 기분이 좋다.
한 달 전에 대회 참가 신청을 하고 대회 날 오전 6시 45분 고속버스 예매를 하는데 참가 인원이 9명이라서 감독님 봉고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서초구 예술문화회관에 모였다. 미자, 필자 선배가 어묵탕을 인원수에 맞춰 용기에 담아오셨다. 늘 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참가하는 회원들 챙겨주는 일을 한 번도 소홀히 하시는 법이 없다. 몸에 밴 버릇처럼 베풀어 주시는데 감사하게 받는다. 받는 데 서툰 사람은 잘 주는 법이 없다. 받는 데 서툰 사람이 주로 하는 말은 '뭘 이런 걸 다~'.
전날 늦게 친구들 모임이 수원에 있어서 집에 도착하니 밤 1시였다. 아침에 5시에 일어나 나오니 졸려서 가는 내내 잠을 자고 1시간 20분 만에 도착했다. 식자 선배는 배번을 빠뜨리고 왔고, 나는 싱글렛을 가져오지 않았다. 겨우 대회가 열리지 않은 기간이 2년이고, 공주 백제 마라톤 대회는 3년 만에 온다고 해도 많이 어색했다. 마라톤 대회를 자주 참가해서 무엇을 하든 서두르지 않는다. 느긋하게 옷을 갈아입고 짐은 마지막 10분 전에 맡긴다.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을 보고 준비 체조를 한다. 풀코스. 하프코스, 10km, 5km 참가 선수들은 순서대로 출발선 뒤로 대열을 맞춰 선다.
러너들은 출발점에 서 있을 때 긴장하며 흥분하고, 위로와 격려를 필요로 한다. 혼자 출전한 러너는 아무데도 기댈 곳이 없어서 긴장하고, 우리는 같이 온 동료가 옆에 있어 조금은 안정이 된다.
"아! 이런, 여길 또 온거야?"
32도까지 오르는 무더운 날이라서 풀코스를 뛰기는 무리였다. 준비가 덜 됐다고 생각해 하프코스를 신청했고, 식자 선배가 풀코스를 신청해서 함께 달리기로 했지만 자신이 없다. 일단 하프라도 잘 뛰기로 하고 출발한다. 출발하고 5km 위치부터 시작해 매 5km마다 식수를 제공한다. 2.5km를 더 달리면 7.5km 부근에서 물에 적신 스펀지를 준다. 17.5km에서는 간식으로 바나나를 준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 발이 뜨거워진다. 그늘도 없고 햇살은 강하고 조용한 금강을 따라 달리는 주자들은 모두가 지쳐 보인다.
풀코스와 하프코그 주자들이 힘차게 달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