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ptember Sky May 15. 2024

달리기도 춤이라서 가볍고 우아하게 달린다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 6분 40초

달리기도 춤이라서 가볍고 우아하게 달린다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 포코 알레그레토 6분 40초, 쇼팽의 즉흥 환상곡은 5분 40초, 반젤리스 Conquest Of Paradise (낙원의 정복)은 4분 53초다. 어렵게 고른 클래식 음악 연주 시간은 러너가 1km를 달리는 페이스와 같다. 6분 40초는 동료와 대화하며 편하게 달리는 조깅 페이스고, 5분 40초로 42km를 달리면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안에 완주하고, 4분 53초로 마흔두 번을 달리면 3시간 30분 안에 피니시 라인에 도착한다. 사실 달리기에 집중하면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방해만 되어 이어폰, 골밀도 헤드폰, 무선 헤드셋도 사용하지 않는다.


"발레 공연 무대에서 서 있는 백조도 춤이고, 달리기도 춤이라서 가볍고 우아하게 달린다."


25일 열리는 고구려 마라톤 대회 배번이 도착했다. 풀코스 75021번. 달리기 훈련이야 늘 하는 일이지만 대회를 2주 정도 앞두고 보내오는 배번호를 받으면 지옥으로 가는 티켓을 손에 넣은 것처럼 설렌다. 지금까지 훈련한 내용과 달린 거리, 육체의 상태로 그날 달성할 기록을 가늠한다. 풀코스를 달리는 거리와 시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돌발 상황이 일어나니 예상이 꼭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도 없다. 


"마라톤은 개인적 의지를 공적으로 시험받는 과정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달리는 일도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말을 마라톤 입문할 때 선배에게 들었다. 주자들의 달리는 모습을 보고 응원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고, 달리고 싶지만 건강이나 형편상 이유로 달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걷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고, 물론 일정한 참가비를 낸다 하여도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 짐을 보관하고 급수대를 운영하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 질서 유지와 도로 통제를 돕는 경찰과 불상사를 대비하는 구급차, 안내 요원 등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 후론 달릴 때마다 사회에 책임을 지닌 당당하고 건강한 러너로 달리고 있다.


삶은 언제나 평형 상태로 돌아가려는 속성이 있다. 아주 나쁜 상태에서는 좋아지는 쪽으로 이동하고, 아주 좋은 상태는 점점 안 좋은 상태로 이동한다. 젊은이들은 10대 시절에 새긴 타투를 지우는 데 많은 돈을 쓰고, 중년은 젊어서 서둘렀던 결혼에 대해 이혼을 서두른다. 갖고 싶은 것들을 모두 갖은 노인들은 중년에 얻으려 노력한 것들을 잃기 위해 노력한다. 삶은 그런 식이다. 그가 현재 무얼 갖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필요한 게 없는 사람이 정말 모두를 가진 사람이다.


식자 선배와 함께 달리는데 남자가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이야기 한 적은 없으니까, '다 가진 사람'이란 말을 하는데 의미를 모르겠다. 단 하나도 제대로 가진 게 없는 사람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 가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하기야 선배는 남자를 인정하고 남자는 훨씬 실력이 뛰어난 선배를 존경하니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마음에 걸린다. 아직까지 선배에겐 남자의 취약한 점을 드러내지 않았구나 싶었다. 취약성이 꼭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배웠다.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 일이 더 많다. 리더십이나 관계, 성장에서도 취약한 면을 드러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음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생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육체는 생각에 영향을 주고, 생각은 육체를 지배한다. 이 일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삶은 다시 하면 더 잘할 것 같은 일들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다시 도전할 수는 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인생은 지금이다. 이 순간 원하는 일을 만사 제치고 해야 한다. 지나간 모든 시절은 그립다. 


오래 보니까 친해지고 좋은 사람들도 있다. 무엇보다 달리기에 대해 많이 배운다. 페이스가 비슷하거나 실력이 더 나은 러너들하고 자주 이야기를 한다. 자세에 대해 물어보고 어떻게 페이스 분배를 하는지 묻는다. 엉덩이와 골반이 약간 뒤로 처진 느낌이 들어 늘 조용히 달리는 고수에게 물었더니 가슴 명치 아래에 다리가 붙어있는 느낌으로 달리라고 한다. 이해도 안 되고 어떤 느낌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처음 들었다. 그러면 골반을 쓰게 되고 자세에 있어 엉덩이와 골반이 앞으로 약가 나오고 자동으로 중심이 약간 앞으로 쏠려 기울어지게 된다고 했다.  


그 느낌을 알 때까지, 자세가 좋아질 때까지 생각한다. 대부분 달리기에 관해 가장 모르거나 달린 경험이 적은 사람이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작은 일을 대단한 것처럼 말한다. 이것은 어디에서나 그렇다. 그런 사람 말을 듣는 일은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아주 가난한 사람 말을 듣는 일과 같다. 그러면 망하는데도 말이다. 독성은 우리가 알지 못해도 아주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마라톤 배번호는 지옥행 티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