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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테 May 28. 2020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day3

모든 화살표는 이미 내 안에 있었다.

# 언제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


오전 6시. 알베르게의 모든 불이 켜지더니 음악 소리가 들린다. 성당이나 교회에서 들을 수 있는 종교의 노래가. 종교가 없는 나이기에, 귓가에 낯설지만 꽤나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멜로디를 들으며 침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3일 차라고 제법 개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게 또 뭐라고 기분이 좋아서, 그런 내 모습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마치 어린아이의 뒤집기에 손뼉 치는 부모의 심정처럼.


전날에 9시간 동안 쫄딱 비를 맞으며 고생했던 옷들을 침대와 창틀 이곳저곳에 걸어두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새 다 말라있었다. 나이스! 큰 S자 고리를 여러 개 챙겨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다 챙기고서 1층으로 내려왔다. 순례자들의 등산화가 가득한 방에 들어가니, 쾌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아... 오늘의 미션은 축축하게 젖은 등산화와 함께 20km를 넘게 걸어가야 하는 거야..?'


등산화를 꺼내 들고 나와 복도의 벤치에 앉았다. 슬리퍼를 벗고서 양 발에 바셀린을 아주아주 잔뜩 발라주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에게서 크고 작은 물집들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에 반해 내 발은 말랑말랑 오히려 평소보다 더 부드러워 보였다. 아무래도 과할 정도로 듬뿍 발라준 바셀린과 발가락 양말 위에 등산양말을 두 겹으로 신은 덕분인 것 같았다. 다행히 임시방편으로 화장지를 잔뜩 넣어두었던 등산화도 신을만해 보였다. 조금 축축했지만 예상보다 많이 말라있어서 이 정도라면 오늘 내 발을 맡겨도 충분해 보였다. 


배낭 안에 마지막 물품인 슬리퍼까지 넣고서 이제 떠날 준비를 마무리하려는데, 문득 크레덴시알(순례자임을 증명하는 여권)과 전 재산이 들어있는 복대, 그리고 진짜 여권을 넣어두었던 지퍼백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분명, 아까 침대에서 지퍼백을 배낭 안에 넣은 것 같은데 배낭을 두세 번이나 뒤졌는데도 없다. 

없다.. 

없어. 


'아... 좆됐다.'


머리는 블랙아웃 되어버렸고, 마음은 시꺼메졌다. 이 넓은 곳이 갑자기 깜깜해지면서 나만 홀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온갖 두려움과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순례길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돈을 다 잃어버릴 수 있지? 부리나케 3층으로 올라가 내가 썼던 침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주변을 샅샅이 다 살펴봤지만 지퍼백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내가 미처 까먹고 챙기지 못했던 티셔츠 하나를 손에 들고서 터덜터덜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창피했고 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니 쿵쾅쿵쾅 뛰었던 마음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40여 일 동안 순례길에서 입을 의복들과... 몇몇 장비들... 그리고 핸드폰뿐이다. 


'... 나 이제 어떡하지'


히키코모리였던 생활을 조금씩 청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피킹과 분류작업, 포장, 스티커 부착 등을 시작으로 매표 및 검표 알바, 그리고 판매부스 알바를 마지막으로 이 곳 순례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비상상황에서 내가 쓸 수 있는 돈이 수중에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단기 아르바이트들을 하며 모아둔 돈으로 이 곳에 왔는데, 순례길 여정에 쓸 전재산을 하루 만에 잃어버렸다. 한 달 반의 여정이 이제야 막 시작됐는데, 이 낯선 타지에서 내 손에는 고작 0원이라니. 막막한 마음으로 통장 잔액을 확인했다. 50만 원 정도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포기하고 싶다거나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건 애초에 내 선택지에 끼지조차 못했다. 점점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떠난 길은 순례길이니까 도네이션(기부제) 알베르게나 성당에서 잠은 잘 수 있지 않을까. 체력도 멀쩡하니 일단 목적지까지는 충분히 걸을 수 있을 거고, 남은 50만 원을 환전하면 당분간 먹는 것도 어떻게 해결은 할 수 있을 거야. 여권... 도 나중에 재발급하면 될 거야. 그래 일단 걷자. 걸으면서 생각하다 보면 해결책이 더 보일 거야. 괜찮아. 그래. 실수할 수도 있어. 자책은 그만하자. 이 경험을 통해 난 더 성장할지도 몰라.'


여전히 절망스러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야 할 길을 일단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서 가만히 주저앉아있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애초에 히키코모리였던 시절에 나는 이미 삶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세상 밖에 나와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나보다는 조금도 절망적이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언제든 내가 가진 것을 전부 다 잃어버릴 수도 있지만, 또 언제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용기가 생기는 순간, 사실은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게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벤치에 널브러져 있던 내 소지품들을 다시 하나하나 배낭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배낭을 잃어버린 건 아니니까 나는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다. 핸드폰도 있으니 사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래, 할 수 있어.' 


자기 암시를 하는데 문득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공간이 마치 확대경으로 보는 듯 시야에 훅-하고 들어왔다. 홀리듯 그곳에 손을 집어넣으니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에 지퍼백이 만져졌다.


"저 찾았어요!!!"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 나 생각보다 훨씬 많이 무서웠구나. 그런데도 용기를 내려고 했던 나 자신에게 고마웠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면, 이 순례길이 오늘부로 끝난 다하더라도 이 곳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는걸 이미 하루 만에 다 얻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굉장히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내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긴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힘은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어쩌면 진짜 중요한 건 그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나를 향해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나를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믿고 나아가는 것. 그때를 회상하면, 지퍼백을 결국 찾지 못했더라도 나는 순례길을 다 완주하고서 돌아왔을 것이다. 나에게 그런 믿음이 생겼다.

AM 7:00 드디어 길을 나섰다.


# 큰 산을 넘어봤다고 해서, 작은 언덕이 쉬워지는 건 아니야.


드디어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큰 언니와 몇몇 분들이 배낭을 동키로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잠시 망설였지만, 오늘은 내 배낭을 한번 하루 종일 짊어져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배낭을 자꾸 회피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와서였다. 익숙하지 않은 불편한 나의 배낭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기도 했고, 도보 여행자로서 배낭에 애정이 생기길 바라는 일종의 로망 같은 것도 있었다.


오전 7시인데도 여전히 하늘은 깜깜했다. 차가우면서도 깨끗한 느낌의 공기가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었다. 어제 신청해두었던 3.5유로짜리 조식을 빨리 해치우고 이 즐거운 기분으로 어서 걷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식에 대한 설렘도 함께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엄청 배가 고프다!

그렇게 건물에 들어가자 테이블에 수북이 쌓인 잼들과 빵, 그리고 떠다 먹을 수 있는 오렌지 주스와 커피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따뜻한 수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살짝 실망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 빵들은 너무나 거칠었다. 유럽의 거친 빵에 적응하지 못한 입천장은 결국 아프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어제의 허기짐이 생생하게 떠올라 배를 든든히 채우고 싶었다.


그렇게 식당을 나와 오늘의 출발지점에 서게 되었다. 

SANTIAGO DE COPOSTELA 790!

목적지인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790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었다. 다들 이 커다란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들 어제의 여정이 고단하기도 하고 힘들었을 텐데, 표정들이 행복해 보였다. 멋진 여정을 해냈다는 즐거움과 또 다른 여정에 대한 설렘이 함께 묻어나는 듯했다. 나 또한 그 날의 나를 잔뜩 담아올 걸, 왜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는지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온 큰 언니를 만나 함께 출발했다. 아까 전의 빅 이벤트에 대해 쫑알쫑알 수다도 떨고, 오늘의 루트에 대해서도 큰 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길이 두 번째 순례길인 큰 언니는, 오늘 루트는 평탄하고 쉬운 길이라며 별로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순례길에서 가장 힘든 코스인 피레네 산맥을 어제 이미 넘었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제의 힘듦은 어제의 힘듦일 뿐이었다. 피레네에서의 고통은 어느새 그저 지나간 이슈처럼 느껴졌고, 나는 지금 내 어깨에 들려있는 이 배낭이 너무나 버거웠다. 어제의 피레네 산맥에 비하면 오늘은 그저 동네 산책길 같았지만 어제만큼 힘들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더 힘들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것도 있고, 어제의 피로도가 쌓인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피레네 산맥에 비하면 오늘 루트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오늘의 길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난 이미 이 여정을 얕잡아봤던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어떤 일을 쉽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경찰 수험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꼭 그랬었다. 경찰행정학과를 나오기도 했고 1년 후면 당연하게 나는 경찰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달려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막연히 왜 공무원 시험을 오랫동안 못 붙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공부를 안 하니까, 노력을 안 하니까 그렇겠지.' 라며 그들을 폄하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험생활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노력을 안 했던 것도 아니었다. 정말 많이 힘들었고, 인생에서 그렇게 한 가지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부었던 일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나는 결국 경찰이 되지 못했다. 순탄하게 풀릴 거라 생각했던 나의 꿈도, 청춘도, 목표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넘는 큰 산을 혼자 작은 언덕조차 못 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막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장수생이었다는 사실도, 불합격이라는 딱지들도, 결국 경찰이란 꿈을 접은 것도 내가 패배자임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오늘의 목적지 쑤비리 (ZUBIRI)


길을 걸으면서 몇몇의 한국인 순례자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제보다 길이 평탄해서 그래도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어제만큼 힘들다는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오늘이 이상하게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분명 어제보다 훨씬 쉬운 코스 이건만, 사람마다 느끼는 체감도는 이렇게나 달랐다. 그리고 하나같이 다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가장 어려운 산맥을 넘었기에 오늘은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라고. 힘들다고.


세상에는 더 어려워 보이는 길들이 있다. 그리고 그 어려운 길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사회는 박수를 보내고는 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 어려운 길을 끝까지 걸어서 해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고 멋진 거니까. 하지만 세상에 더 어려운 길, 덜 어려운 길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각자가 걸어가는 길은 다 어렵고 힘든 법이다. 그 어떤 루트를 걷더라도 모두는 힘을 내면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오늘의 여정도 반이 지났다. 저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까마득해 보이면서도 시야에 마을이 보이자, 문득 내일도 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갈 수 있겠다는 신뢰가 생겼다. 그렇게 하루하루 걷다 보면 어느 날에 이 배낭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해있을 내 모습이 떠올려졌다. 


'아, 나와의 믿음은 이렇게 쌓아가는 거구나.'


크든 작든 나에게 놓여있는 미션들을 최선을 다해 넘어가는 것. 어제의 큰 산을 넘었다고 해서, 오늘의 작은 산을 대충 넘어가려고 하지 않는 것. 내가 이 순례길에서 배우고 얻어가는 또 하나의 메시지였다.



# 사실은 장애물이 아닐 수도 있어.


혼자 이런저런 사색을 하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 길 한가운데가 울타리로 막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못 가는 길인가? 혹시 딴생각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나? 어쩌지?'


멈칫멈칫거리며 혹여나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서 핸드폰에 받아두었던 까미노 어플을 켜서 현재 나의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루트에서 내가 벗어나지 않음을 확인하고 난 뒤에도 앞에 막아져 있는 울타리가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는 괜히 불안해졌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왜 나 혼 자람. 


그렇게 울타리 앞까지 오고 나자, 잠시 이 상황을 바라보며 멈춰 섰다. 


'뭐지, 이건. 넘어가야 하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몇 발자국 더 앞으로 다가갔는데, 허탈함에 웃음이 나왔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그저 문이었다. 손으로 나무 문을 열면서 이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가로막혔다고 지레 단정짓고서서 애초에 가까이 가지조차 않았더라면, 이것이 사실은 장애물이 아니라 문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길이 막혔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그래서 지레 겁을 먹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에도 어쩌면 조금만 더, 몇 발자국만 더 나아가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직접 문을 열고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장치 인지도 모르니까.

대략 7시간 동안 23km를 걸어서 쑤비리 마을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냇가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위로 다리를 건너며 이 조용하고도 예쁜 풍경을 살며시 사진에 담아보았다. 계속 따로 걸어갔던 큰 언니와도 마을 초입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동키 서비스로 가방을 보냈던 큰 언니와 공립 알베르게로 발걸음을 향했다. 

MUNICIPAL ALBERGUE 공립 알베르게

그런데 웬걸. 쑤비리의 공립 알베르게는 내부가 공사 중이었고 운영을 안 하고 있었다. 공립 알베르게는 다른 사립 알베르게에 비해서 숙박비가 훨씬 싸다. 2~3배가 차이가 나기도 했고, 예상보다 좀 더 일찍 오후 2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큰 언니는 다음 마을에 머무를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도 마음이 살짝 동요했다. 하지만 오늘의 여정이 너무 피곤했던 나는 이 마을에서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그녀와 작별을 고했다. 


마음이 그저 끌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10유로를 지불하고서 숙소에 들어오니, 어제 묵었던 시설과는 딴 판인 풍경이 펼쳐졌다. 마치 감옥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알베르게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다 깨지는 순간이었다. 생장과 론세스바예스에서 머물던 알베르게가 굉장히 좋은 시설이었음을 깨달았다.


'감옥 같다.'

2층 침대에 올라와 짐을 풀어헤치고 났는데 무언가 수용자가 된 듯한 기분에 문득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이 알베르게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다 외국인들 뿐이었다. 갑자기 우울함이 올라왔다. 그렇게 한동안 정리되지 않은 짐들과 가만히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켰는데, 막 샤워를 마치고 들어오는 스페인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우오오~~~!!!"


서로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스페인어로 소는 '바까'라는 단어를 알려줬던 사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서 그가 내게 페이스북 아이디를 물어보았다. 팔로우를 하자면서. 


"아, Facebook~~ No~~"


아.. 지금 쓰면서도 괜히 머쓱해진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던 나는 그에게 아이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데, 아무 생각 없이 내 입에서는 'No ID.'가 아닌 그냥 "NO."라고 해버린 것이다. 허허허.


그가 "NO? Okay."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 뒤로 무언가 그 이후로 나를 쳐다보지 않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른 외국인들도 우리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그저 흘려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길을 걷다가 문득 이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지만(ㅋㅋㅋ) 이미 때는 늦었고, 그 날 이후로 그와 더 이상 마주치지 못했다. 다시 만나면 인스타 아이디라도 물어보려고 했건만, 그게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혹시나 의도치 않은 거절의 의미에 그가 상처 받았을까 마음이 쓰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이 길에서 좋은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기를 응원했다.

배낭에 있던 식량을 꺼내 휴게실에서 허기짐을 달래고 있는데, 마을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알베르게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장이 그들에게 알베르게에 인원이 가득 찼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다른 알베르게들도 다 인원이 가득 찼다는 이야기를 했다. 알고 보니, 공립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쑤비리에 도착한 순례자분들을 다 수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다음 마을로 떠나야만 했다. 문득 감옥같이 느껴졌던 이 알베르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감사하게 여겨졌다. 내가 거의 마지막 순례자로 들어온 듯했다. 


오후 5시가 되었고, 저녁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알베르게 옆 마트로 향했다. 무언가 해 먹을 수 있는 게 없을까 이리저리 헤매다가 나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 여자분이셨고, 내 또래처럼 보였다.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저녁 하실래요?"


마트에서 방황 중이던 나는 그녀의 제안이 반가웠다. 우리는 그렇게 마트 건너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서로 통성명을 나눴고 우리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곳에 왜 오게 되었냐는 그녀의 질문에 대략적인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장수생활과 요즘의 나의 고민들, 하고 싶은 방향과 생각들에 대해서. 그런 나의 이야기를 굉장히 진심으로 듣던 그녀의 첫마디는,


"고마워."였다.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을 처음 보아서 신기했고, 한편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 또한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에 공감이 간다고 했다. 그런 대답을 하는 그녀를 보면서, 또 그녀의 그동안의 행보에 대해 들으며 나 또한 굉장히 매료되었고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뜻밖의 즐거운 인연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 각자 다음을 기약하며 서로의 숙소로 헤어졌다. 


처음으로 이 곳에서 SNS 아이디를 주고받은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왠지 이 순례길에서 그녀와 또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종착지가 별로인 듯 보여 다운된 기분으로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선물이 있었을 줄이야. 역시나 깊이 다가가 보지도 않고서 대충 '이럴 거야.'라며 먼저 결말을 내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모르잖아. 문이 열려있을지도.


내일은 또 어떤 여정이 펼쳐질까 궁금해하며, 잠을 청했다.

오늘도 수고했어. 

부엔 까미노-



[2019. 10. 03.]

론세스바예스 → 쑤비리 

(난이도 ★★★★, 총 23km)   


ᵀᴿᴬⱽᴱᴸᴴᴱ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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