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테 May 01. 2020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day 2

모든 화살표는 이미 내 안에 있었다.

# 사소한 것조차도 나의 영감이 되는 길


생장에서 오전 6시 반에 길을 나섰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두웠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전날에 비가 올 것을 대비해, 배낭을 동키(다음 숙소까지 순례자의 짐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로 보내 놓은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이 새벽에 프랑스의 어떤 마을길을 걷고 있음에 기분이 좋았고 설렜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금세 가라앉았고, 걱정과 두려움이 또다시 밀려들었다.


'내가 오늘 피레네 산맥을 넘어 27km를 걸을 수가 있을까?'

'아...,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아니 왜 이렇게 죄다 오르막이야?'


그렇게 2시간 동안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비가 점점 많이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도 너무나 차갑고 매서웠다. 하지만 힘겹게 걸은 지 2시간을 넘기자 몸이 마치 적응이라도 된 듯,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뭐든지 처음이 어렵고 낯선 것이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탄력이 생기는구나.'


물론 탄력이 생겨도 힘든 건 매한가지다. 다만, 두려움과 불안감이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2시간 내내 밀려드는 두려움을 마주하며 걷고 있었다. 최악의 상상도 해보고, 무엇이 어떻게 겁나고 두려운지 내면의 나에게 질문을 던지며 파고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주었다. 마주했기에 지나쳐 보낼 수 있었다. 그 무렵 서서히 해도 뜨고 주변의 경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삶 속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부터 스페인 아저씨, 그리고 왕언니(어제 친해졌던 한국인 아주머니)와 셋이서 동행하고 있었다. 걷다 보니 소떼들이 보였고 스페인 아저씨가 갑자기 ‘빠까’라고 했다.

     

"엥? 빠까?" 

"바까"

소를 가리키더니 ‘바까’라고 한번 더 알려준다.     


"오~~ 오케이~ 바까!"

'바까' '바까' 거리며 다 같이 웃었다. 

이렇게 알게 된 단어는 못 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오랫동안. 암기 주입식으로 학교에서, 학원에서 달달 외우던 것들은 시험이 끝나는 종소리와 함께 마치 제 임무를 다했다는 듯 기억에서 단칼에 삭제되곤 했다. 그런 공부들은 남는 것도, 유익함도, 즐거움도 별로 없었다. 이제 '바까'라는 단어에는 나만의 추억이 생겼다. 이걸 별거 아닌 단어라고, 사소한 단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모여서 나의 삶을 채우는 것인데?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도 큰 것만을 바라며 정작 나만의 작지만 소중한 것들은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자욱해서 그 아름답다는 피레네 산맥의 풍경들은 볼 수 없었다. 왕언니가 아쉽겠다고 물어왔는데, 글쎄.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각자의 감정도 추억도 다르게 쌓이는 거니까. 이렇게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피레네 산맥을 내디뎌가는 나와 그 속에서 최대한 통찰하고 탐구해보려는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니까. 나의 목적과 부합하는 길을 걷고 있기에, 그 자체로 나만의 추억과 정수가 쌓이는 거니 특별할 뿐이었다.

  

큰 배낭은 동키로 보내 놓은 상태였지만, 내 어깨에는 시장바구니가 하나 있었다. 여기에는 복대와 물, 고프로, 보조배터리, 간식 등이 들어있었다. 1~2시간이 지나자 어깨가 너무 아파서 다 버려버리고 싶은 지경에 이르렀다. 도대체 고프로는 왜 챙겨 온 걸까.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찍을 엄두조차 못 냈지만, 그것 말고도 양 손에 등산스틱을 잡고 있으니 걷는 내내 찍을 수도 없었다. '아, 이 애물단지들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고프로만 아니었다면 길에다가 애저녁에 도네이션(기부)을 했을 거라며 투덜거리다가 시장바구니를 양쪽 어깨에 나눠 메기 시작했다.


‘지져쓰!’

      

진즉에 이렇게 할 걸! 역시 사람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굴리게 되어있나 보다. 다만 코너에 몰리기 전에 스스로 어떻게 하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일지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내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아끼려면, 하루하루 매 순간 조금이라도 깨어있기.



# 괜찮아, 너의 중심은 단단해지고 있어.


왕언니는 날다람쥐처럼 빨랐다. 사실 속으로 '느리면 나중에 먼저 가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오산이었다. 어느새 왕언니는 사라지곤 했다. 그렇게 한두 시간 걷다 보면 저 앞에서 다른 일행들과 쉬고 계신다. 그럼 또 만나서 잠시 쉬며 얘기를 나누다 출발하고, 어느새 또 사라지고. 서로 맞추면서 걷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그녀도 나에게 맞추지 않았고 나도 무리해서 따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피레네 산맥을 올라가면서는 더 천천히 걷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사하며 지나갔다. 


“부엔 까미노” 

“올라” 

“하이” 

“챠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여 어떠한 결승점에 빨리 도착해야 하며 자신이 1등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니 남들을 의식하고,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살고 있구나. 사실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페이스대로 각자만의 테마를 가지고 이 지구를 여행하는 중인 건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들보다 보폭이 좁았고 느리게 걷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쉬는 시간을 짧게 가지거나 거의 쉬지 않았다. 그게 오늘 나만의 페이스임을 느꼈다. 누군가가 빨리 걷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간다고 조급해하지도 않았고, 열등감을 가지지도 않았고, 조바심이 나지도 않았다. 또 부럽거나 질투가 나지도 않았고, 나를 초라하게 여기거나 혐오하지도 않았다. 이건 내 여정길이고 나는 내 페이스대로 잘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그동안에는 수많은 타인들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경쟁의식에 빠져 조바심을 냈을까. 무엇보다 나를 왜 그토록이나 초라하게 여기며 혐오했을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인데 말이야. 이 여정 길에서 누가 얼마나 대단한 장비를 지녔는지, 얼마나 비싼 옷을 입었는지, 어쨌는지 저쨌는지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중요치도 않다. 애초에 남을 보지 않으니까. 


그 순간에 깨달았다. 앞으로의 모든 여정들은 오로지 그 길 위에 나만 있으면 되겠구나. 그리고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내가,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며 내가 걸어온 수많은 길들이 보여 참 기특했다. 한없이 격려해주고 싶었다. 이렇게 힘들지만 통찰하려는 나를 위해서. 안 그래도 한걸음조차 힘든 나에게 도무지 채찍질을 할 이유도, 그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왜 더 빨리 못 걷느냐고, 왜 힘들어하냐고.' 


타인들에게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수없이 들어왔던 저 말이 사실은 필요치 않은 말이었다 생각하니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동안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매 순간 채찍질을 했었구나. 이미 힘든 나의 내면을 알아주기는커녕 남들처럼 하라고, 잘하라고, 이게 뭐가 힘드냐고 수없이 짓눌렀구나. 나의 수많은 내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나는 살아온 자체로, 그것만으로도 열심히 살아온 거였다. '살아감' 자체로 힘을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는 채찍이 아니라 격려와 사랑이 필요했다.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그리 안아줬어야 했다.

안녕, 얘들아


외국인이 지나가면서 내가 엉금엉금 걷고 있으니, “아 유 오케이? 에브리띵 파인?” 하고 걱정하며 물어왔다. “아임 파인! 에브리띵 오케이!”하며 그를 보냈다.

그리고 왕언니에게도 잘 걷는 줄 알았는데 (느리게 걸어서 아니라서) 실망이라는 농담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에는 웃으면서 지나쳤던 말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계속 맴돌았다. 


‘나는 잘 걸었는데? 빨리 걸어가는 게 중요한가? 나는 내 페이스대로 이 제일 힘들다는 피레네 구간을 아주 아주 멋지게 소화하고 있고, 나만의 통찰도 했고, 반성도 했고, 나 자신과 화해도 했는걸.’


그들은 자신들의 페이스와 기준으로 나를 '느리다'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게 기분이 나빴구나. 하지만 나는 나대로 이미 완전했고 온전했고 특별했다. 그들에게 내가 잘 걷는다는 것을 증명하며 과시할 것도 아니고, 느리게 걷는다고 해서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말들이 마음에 남았던 건, 아직은 나도 모르게 내가 '이만큼이나 잘한다, 대단하다'라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타인들에게 내가 평가당하고 후려치기 당해왔던 상처와 트라우마들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투덜거리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느리다고 평가받은 것이 아니라, 잘한다고 평가받고 싶은 내가 있었음이. 


피레네 중턱에서 만난 푸드트럭

왕언니가 사라지고 난 후로 스페인 아저씨가 계속해서 나에게 맞춰주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굉장히 크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었다. 누가 봐도 힘들어 보였지만, 내가 조금 쳐지면 뒤돌아보며 기다려 주는 게 느껴졌다. 사실 그가 기다려주는 것에 대해서 고마움보다는 나중에 본인이 더 힘들어할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그냥 가도 되는데.. 뭐, 저것도 본인 마음이니까. 저걸 통해 무언가 그도 나름대로 깨닫는 게 있겠지.' 


반대로 그가 멈춰 설 때 나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가 기다려주었으니 힘들어도 당연히 나도 그를 배려하고 기다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습관적인 배려와 착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잠시 뒤로한 채 그저 묵묵히 내 페이스대로 길을 걸었다. 그를 지나치면서 문득 과거의 연애가 떠올랐다. 상대에게 항상 맞춰주고 배려하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그 연애의 끝은 처절하게 갑과 을의 느낌으로 끝나버렸다. 

     

하지만 상대방을 1도 탓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건 나의 선택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모든 행동들은 결국 상대에게 더 사랑받고 예쁨 받기 위해 나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이기심이었던 거다. 그래서 내 기대치와 다른 그를 마주하면 몹시 서운해하고 실망하면서 상대를 탓하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너무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볼모로 상대로부터 나의 애정결핍과 공허함을 채우려고 들었다. 내 안의 결핍을 그가 대신 채워주기를 바라고 갈구한 셈이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렇게 그와의 마지막은 정말 나의 처절함으로 끝이 났다. 


내 삶은 나의 것이듯 당연하게도 나의 행복과 결핍도 내 몫이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것들을 내어주는 순간, 사랑은 사랑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정말 길고 긴 시간들이었다. 이별 후에도 오랫동안 아파했지만, 이제 나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 많이도 단단해졌다. 그 모든 시간들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어느 날의 내가 아파하고 있음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괜찮아. 아픔은 단단해져 가는 과정이지, 엔딩이 아니야.


목적지까지 거의 2~3시간을 남겨두고서 스페인 아저씨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가기 시작했다.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만약 걷는 내내 힘들다는 이유로 나를 기다려주는 그에게 의지했다면, 그가 사라졌을 때 굉장히 서운하거나 두려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가 이별을 맞이하고 난 뒤 긴 시간 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괴로워했던 건, 그만큼 나의 중심을 그에게 내어주었기 때문이란 게 느껴졌다. 그가 떠나고 나서 내가 없어진 것처럼 굴었던 것은, 관계 속에서 상대에게 기대고 의존하며 정작 나 자신은 소중히 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그런 그는 내가 얼마나 무겁고 버거웠을까. 그 누구를 만나든, 그 어떤 인연의 만남이든, 나의 중심은 오로지 나로서 있어야 한다. 


스페인 아저씨가 더 이상 나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나아간 것이 너무 반가웠다. 시야에서는 사라졌지만, 그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라 마음으로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에 가면 어차피 그를 다시 만날 것 같았다. 그럼 또 너무나 반갑겠지!  나도 힘을 내야지. 파이팅!



# 아, 피레네! 


5시간을 넘게 비를 쫄딱 맞으며 피레네를 넘고 있었고, 거의 피레네의 꼭대기쯤인 기분이 들었다. 비록 아름답다는 피레네의 풍경은 구경조차 못했지만 사방이 안개에 자욱하게 깔려있던 모습은 가히 매력적이었다. 어디선가 딸랑딸랑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가고 있는 '바까'들

"우와아~~~ 대박!"


자연스럽게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이 높은 지대에서 소들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길을 걸어가던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고 즐거운 추억이었다. 내 눈에는 그게 꽤나 멋졌던 것 같다. 폭우가 쏟아지든, 안개에 갇혀 사방이 보이질 않든 태연하고도 초연한 모습으로 그저 제 갈길 가는 모습인지라.


피레네 산맥은 꽤나 높았다. '역시 피레네는 피레네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땅에서부터 단단하게 위로 솟아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런 산을 닮은 것이 나무라 그런가. 나무 또한 뿌리와 기둥은 땅에 단단히 박혀있지만 위로 올리갈 수록 줄기와 나뭇잎, 피는 꽃들은 살랑살랑 가볍고 유연해 보인다. 갈색에서 초록빛으로 물들어가는. 단단함 위에 피어난 순수함과 싱그러움. 모든 자연과 우주는 그렇게 이루어져 있는 걸까? 중심은 단단하고도 강인하게, 그렇지만 그걸 채우는 나의 모든 삶의 요소와 열매들은 가볍고도 유연하며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빗물을 맞아서 그런가 핸드폰 배터리 수명이 급격히 닳았다. 출발한 지 5시간 반 만에 핸드폰이 꺼졌다. 핸드폰이 꺼진 이후에 비바람도 더욱 거세져서 너무 추웠다. 판초우의를 입었지만 속에 바람막이도 긴팔도 레깅스도 다 젖었다. 등산화 안에서는 물이 질퍽질퍽거렸다. 고어텍스 방수 등산화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발이 무거워지니 작은 조약돌에도 발이 치인다. 이렇게 작은 것들에도 힘이 든다. 그렇지만 결국 다 지나쳐서 걷는 나에게 고마웠다. 살면서 이렇게 수없이 작은 것에도 상처 받고 생채기가 났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거 아닐까. 왜 이런 거에 힘들어하냐고 구박하고 자책하고 외면하고 부정하기보다는, 작은 것에도 힘들 수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비우는 습관을 들여야 함을 느꼈다. 상처를 받고 안 받고는 내 의지가 아니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건 내 의지로 가능하니까.


양쪽 어깨에 시장바구니 끈이 쪼인 채로 벌써 몇 시간을 걸어오니 어깨도 빠질 것 같이 아팠다. 게다가 20km를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너무 허기졌다. 아침에 숭늉 한잔과 바나나 두 개를 먹은 게 전부였고 간식으로 유기농 크리스피 롤 4개, 그리고 점심 겸 먹은 아메리카노랑 바나나 칩, 땅콩 몇 개가 전부였다. 허기짐을 인지하고부터는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배고파서 기절하는 거 아닌가. 여기서 기절하면 거의 죽겠는데.' 


걸어오면서 중간중간 순례길 여정 중에 죽은 사람의 무덤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의아스러웠지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갑자기 혼자 쓰러지면 누군가 발견하더라도 어쩔 거야. 저 세상 가는 각이겠지. 그래서 나는 두려운가? 죽음이? 그것보다는 그냥 빨리 가서 뭐라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었다. 먹고 싶은 것들을 잔뜩 생각했다. 들깨 수제비. 들깨 수제비가 너무 먹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들깨 수제비부터 먹으러 가야지. 밥도 먹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고, 감자랑 바나나도 생각나고, 라면도 생각났다. 


핸드폰이 꺼져서 도대체 몇 시간을 걷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왔다. 진짜 지친다.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 게다가 마지막 구간은 진짜 내리막길이었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 너무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 나는 시점이었다. 마음속에서 '제발...'이라는 말이 맴돌 무렵, 3.6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앞으로 2시간 10분 정도 남았다고.


‘와,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 싶었는데 마지막은 정말 엉금엉금이었다. 신발 안이 질퍽질퍽거려서 더 힘들었다. 안 그래도 느렸던 나의 걸음은 정말 걸음마 수준이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괜찮냐고 물어왔다. 

"Are you Okay?" 

"Yes, I'm Fine."

힘들긴 했지만 막상 순례자분들이 괜찮냐고 물어오면 정말 괜찮았다. 그리고 다들 힘들지만 괜찮아 보였다. 


온종일 비가 계속 내려서 이미 춥고 배고프고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는데, 3~4번 잠시 햇살이 비치는 곳이 있었다. 그것마저도 몇 초의 순간이었지만, 그 마저도 너무 따뜻했고 행복했다. 이렇게 비바람을 몇 시간이나 맞아봤기에 이 한순간의 햇살이 얼마나 따뜻하고 소중한지, 그 순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삶의 힘든 시기와 시련이 있기에, 행복한 순간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구나. 그동안 내가 겪은 트라우마나 상처들, 그리고 나 스스로 치부라 여겼던 사건들이 나열되고 있었다.


5년 간의 수험생활과 실패.

5년 간의 연애와 이별. 

그 기간 동안 겪었던 마음 아팠던 일들.

3년 간의 히키코모리 생활.

부모와의 트러블과 죄책감.

기타 등등의 사건들.


그건 그냥 나만의 스토리였을 뿐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처럼, 이 또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다. 그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치부라 여기며 움츠러들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긴 건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지금의 내가 더 소중한 것이고, 나의 이 모든 경험들이 특별한 것이구나. 그걸 어떻게 소화해서 나만의 것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그 안에서 나만의 깨달음과 정수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는데, 나의 20대를 암흑기라고 여기기만 하고선 외면하고 덮어두려고만 했다. 마치 지금의 나 자신과 단절시키려는 듯이.     

     

'아, 진짜 한계다.' 싶을 무렵 0.5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와, 씨! 드디어 끝났다!"


갑자기 설레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남아있는 체력이 있었다니! 신기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 거봐, 해냈잖아.


오후 4시가 다 되어간다. 9시간을 내리 비를 맞으며 피레네 산맥을 넘어왔건만, 알베르게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었다. 끝났다는 설렘도 잠시 비에 쫄딱 젖은 채로 덜덜 떨면서 기다려야 했다. 마지막 고비였다. 그래도 반가운 이들도 다시 만났다. 왕언니와 스페인 아저씨가 있었다. 서로 고생했다며 엄지를 척 들었고, 정말 무척이나 반가웠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채식주의자인 나는 식사가 관건이었는데, 마트는 여기서 1km 밖에 있다고 했다. 왕복 2km.. 오... 절대 못가. 둘러보니 자판기에도 온통 내가 먹을 수 없는 것들만 있었다. 그래서 저녁과 아침을 신청했다. 제발 고기만 아니기를 빌면서.     


초스피드로 샤워실부터 갔다.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기쁨의 곡소리. 발이 온통 따가웠다. '물집이 잔뜩 생겼다 벗겨진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통증보다는 이 개운함과 희열이 온몸을 감싸는 기쁨에 몸서리가 쳐졌다. 집에서 하는 샤워였다면 이 발에서 오는 통증에 기겁하며 샤워를 바로 중단했을 테야. 너무 황홀한 샤워였다. 황홀해서 나가고 싶지 않았으나, 다른 이들이 기다릴 테니 아쉬운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이 맛에 오는구나. 너무 개운했다.


그렇게 허기져서 죽을 것 같더니, 숙소에 도착하니 참을만해졌다. 따뜻한 물을 한잔 끓여먹었더니 이 마저도 행복했다. 그리고 핸드폰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서 그런지 충전기를 꽂자마자 물기가 감지된다며 분리하라는 알림이 뜨길래, 충전도 못 시키는 상황이 되었다. 혹시나 계속 먹통인 핸드폰으로 다녀야 할까 봐 두려움이 올라왔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또 무언가의 깨달음을 주기 위한 과정이겠지. 핸드폰이 먹통이라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이 또한 마음을 비웠다. 


7시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레스토랑이 세 군데가 있었고 각자 받은 종이에 적혀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각각의 레스토랑에 어떤 메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갔던 곳은 파스타/수프, 치킨/생선의 선택지가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가. 수프랑 생선을 택했다. 수프는 정말 맛이 없어서.. 남겼다. 허기가 느껴지는데도 음식을 남기게 되다니.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참고 먹는 거지 의아스러웠다. 그나마 생선은 맛있게 먹었다. 와인도 몇 모금 마셨다. 완벽했다. 이제 그만 이 기분을 안고서 깊은 잠에 빠지고 싶었다.


숙소에 돌아와 감기약을 하나 먹은 뒤에 일기를 쓰고선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전 6시 반에 출발하여 오후 4시가 좀 안되어 도착했고, 대략 27KM 정도를 걸었다. 솔직히 '이렇게 힘들 줄 미리 알았다면 왔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 이미 시물레이션을 다 돌려보고서도 이 곳에 기꺼이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의 모든 존재들이 참으로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례길이 모두에게 멋진 모험이 되기를. 부엔 까미노!



[2019. 10. 02.]

생장 → 론세스바예스 

(난이도 ★★★★★, 총 27km)   


ᵀᴿᴬⱽᴱᴸᴴᴱᴱ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day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