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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Apr 15. 2023

여름에 찾아온 천사에게


우리는 작년 초여름 즈음 우연히 만났다.


그날 오후 담배도 살 겸 땡볕아래로 산책을 나갔다. 여느날처럼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살짝씩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며 걸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눈을 감고, 또 그렇게 한여름 이비자에서 파티를 즐기는 쓸데없는 생각에 젖었다.


갑자기 누가 내 팔을 붙잡는게 느껴졌고, 눈을 뜨니 당신이 나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이어폰을 빼고 되물었다.


"네?...."

"혹시 병원이 어디예요?"


그때서야 알아챘다.


눈앞에 한 여름에도 두꺼운 비니를 둘러쓴 사람이 서있었다. 빨간색 줄무늬 셔츠를 입었음에도 피로 얼룩진 부분들이 선명했다. 이 사람이 내 눈에만 보이는 걸까? 횡단보도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왜 아무도 힐끔거리지도 않는 걸까.



"어디서 다치셨어요?"

"그냥 좀 넘어졌어요. 주말에 여는 병원이 어디 있어요? 미안해요."


오히려 민폐일까 걱정하는 당신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잠시나마 신종사기일까, 몰래카메라일까 하며 들었던 별별 생각들이 부끄러웠다.


나는 단번에 당신을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다. 당신을 병원에 데려가는 것도 참 어려웠다.  흔한 나이 든 어르신들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민폐를 끼칠까봐, 내 시간을 뺐을까봐 수십 번 동행을 거절했다. 사실 나도 병원 가는 길이라고 대충 둘러대니, 당신은 그제야 알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당신의 보호자가 되었다.



"왜 어제 퇴원한 사람을 못 쉬게 해요?"

의사 선생님은 조용히 한숨을 쉬면서 나를 나무랐다. 그제야 당신이 왜 그렇게 앙상했는지, 한여름에 옷을 두세겹씩 입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 뒤 자초지종을 들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어제 퇴원했다고...그리고 멀쩡한 아들들이 둘씩이나 있는데도 당신 스스로 자전거타고 계란 사러 가는 길이었다고. 당신 아들 전화를 받고 이런 불효자식들이 어딨냐고 정신차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죄송하다는 대답에 허탈한 웃음만 났다.


다친 곳은 상태가 심각해서 큰 병원에 가야했고, 그렇게 하루종일 나는 당신을 지키면서, 오지 않는 아들들을 기다렸다. 아니 사실 기다리지 않았다. 내내 아들들을 기다리는 당신도 갑자기 아들들 얘기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별별 얘기를 다 나눴다.


우리의 공통점은 냉담자였던 것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중 당신은 다시 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신을 저버린지 꽤 오래되었지만, 다시 믿는다고 말했다. 당신이 귀에 닳도록 내가 천국에 갈 거라고 얘기를 하는 바람에 천국이 없단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웃으면서 천국에 가게 기도해 달라고 고맙다고 대답했다.





의사에게 경과를 지켜보자는 얘기를 듣고,

밤이 되어 우리는 집으로 나섰다.


데려다주는 길에 당신은 갑자기 기다려보란 소릴한다. 나는 너무 뻔하게도 당신이 나에게 뭘 주고 싶어 하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카드도, 통장도 없는 당신은 미안했는지 가방에서 5만원짜리를 하나 꺼내더랬다.


여느 얘기들처럼, 우리는 길에서 한참을 실랑이했다.

"여사님, 요즘 하루종일 일해도 5만원 못 벌어요. 이걸 왜 줘요?"

"제발 받아줘요. 미안해서 그래요. 받아줘요."


이름이라도 알려달라는 소리에 나는 세례명을 알려줬다. 참 웃기게도 길에서 한 노인과 나는 서로 세례명을 주고받았다.





그 뒤로 내 마음이 당신을 지켰다.

글을 쓴다는 내 말에 당신은 흥미로워했고, 당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에 바로 흔쾌히 승낙했다. 보잘것없는 당신 얘기가 뭐 있겠냐더니, 좋은 회사에 가려고, 돈 벌고 싶어서,이런저런 이유로 나 좋자고 여사님 얘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상에 담고 싶다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니 그때도 당신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했다.


나는 당신을 돕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당신 이때까지 내가 찾을 수 없었던 휴머니즘 가득한 주인공으로 제격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참 많은 인생에 관한 얘기를 했다. 당신은 내가 너무나 잘되고 멋진 아가씨라며 아낌없이 칭찬했다. 내심 싫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는 계속 당신의 말에 반박했다.


"아니에요. 여사님. 사람은 입체적이란 말 아세요?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는 거예요. 저도 적이 있고, 누군가는 저를 죽도록 미워해요. 저는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여사님처럼 조건 없이 아들들을 사랑해주지도 못할 것 같아요. 물론 결혼도 안 하고, 아이는 안 낳을 거지만."


그렇게 어른들이 싫어하는 말을 줄줄 뱉어대도 당신은 내 칭찬을 마치는 법이 없었다.


"아휴 천사님...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을 때도 신은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어요. 우리가 덜 간절했어서 일까요? 그때는 우리가 신을 저버렸지만, 이제 우리는 알잖아요.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천사님은 무조건 좋은 사람이에요 내 눈에. 무조건 천국에 갈 거고, 좋은 사람 만날 거고, 오래 살 거고, 너무 행복해질 거예요."







.

.

.

그렇게 어느 날 당신으로부터 답장이 오지 않았다. 우리가 10번도 만나지 않아서일까? 눈물도 나지 않았다. 끝내지  못한 글도, 작업물들도 더이상 들여다보기도 싫었다. 사실이 되어버릴까봐 나는 덮어둬버렸다. 난 그냥 평소의 나처럼 너무나 바쁜 하루를 보냈다. 정신없이.










'사람은 천국에 갈까? 죽어서 어디에 갈까?'


문득 미친 듯이 궁금했다. 나는 웃기게도 법륜스님에게서 그 대답을 찾았다. 불교에서는 극락이 있단다. 나는 불교신자 아닌데? 그러니 법륜스님이 그러신다. 불교신자가 아니면 믿고 싶은 거 믿으라고.






믿고 싶었다. 천국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 천국을 믿는다. 당신을 위해서.









여사님, 나중에 천국에서 만나요. 우리 그때도 꼭 좋은 친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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