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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주 Jan 13. 2024

내 소원을 알아듣는 내가 되자.

나답게 살기 2024.01.13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올린다.

다시 발행을 멈추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

오늘부터 꾸준히 발행해 볼까 한다.


내 뮤즈인 둘째가 올해 1학년이 된다.

중증장애인의 가족이 되기 위해 3년은 뭔가와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억울했다.

난 노력밖에 한 게 없고 어떤 결과도 쥔 게 없는데 사회로부터 퇴사해서 얘나 키우라는 걸로 느껴졌다.

두 아이를 갖는 건 우리 부부의 꿈이었다.

그러므로 아이 키우는 게 하찮고 사회적 지위가 더 중요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난 꿈이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가씨 때부터 엄마가 솔선해서 독서하고, 공부하고, 그림 그리고, 책도 내고, 강의도 하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는지 보여주면 아이는 엄마의 등을 보고 잘 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장애아이라니.  

없던 시나리오에 난감했다.

그래도 마음 추슬러서 치료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겨우 얘를 안아 들고 찾은 병원에서 의사들은 내게 기대를 훨씬 낮추라고 조언했다.

기억이 엉성하다는 것, 특히 나 같은 창작자이며 감성적인 아티스트는 기억을 조작하는 게 직업이니 내 기억은 충분히 조작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의사가 그렇게 말한 게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 지성인들에게 돌을 던지고 싶었다.

손바닥만 한 희망도 안주는 의사와 치료사들이 미웠다. 


그러다 내 운명에 화가 났다.

나 같은 게 앉을 의자와 책상은 물론 프로젝트를 줄 생각도 없었으면서 내 열정 페이만 꿀떡 삼킨 내 구질 구질한 운명이 저주스러웠다.


결코 내 딸이 실망스럽거나 미운적은 없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지만 너무 사랑하기에 나는 지금도 수시로 아프다.


둘째가 4살 되면서부터 나는 운명, 사주, 미래, 영혼, 우주, 양자역학, 에너지, 부자, 가난, 저주, 카르마, 종교, 토템, 심리 등등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직접 발로 뛰고 엄청난 돈을 써가며 공부했다.

내가 공부를 다 마친 건 아니다.

다 이해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구잡이로  뛰어다니자 어느 날부터 나 스스로 내 질문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미약하지만 하나씩 답을 주었다.


인생은 질문과 답이다.

질문이 정확해야 답이 있다.

질문은 방향과 적나라한 소원이다.

그래서 지금은 확실하게 말한다.

소원부터 가지라고.

소원은 반사회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때 나를 혐오하지 말고 좀 더 끌어안고 침몰해 보라고 얘기한다.

미움도 필요한 감정이다.

내가 살려면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줘야 해서 무당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런데 아직 죽지 않은 내게 나는 너무 인색했다.

선량하고 죄 없는 내가 그렇게 끔찍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인정되지 않았다.

소원이라는 말은 너무 예쁜데, 내 바람은 흉측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과정에 직면했을 때 힘겨워도 좀 더 파고 들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건 과정이지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영혼의 개념에소원에 추악하고, 좋은 건 없다.

모든 소원을 평등하게 보라.

그리고 좀 더 원인에 다가가 봐라.

당신 마음에 드는 당신의 목적지가 보일 것이다. 

아직도 부정하는 마음이 드는 답은 답이 아니다.

기이해도 그게 나라는 깔끔한 인정이 드는 답.

거부할 수 없는 내 답.

그게 나다운 소원이다.


지금은 내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걸 안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 억울함에 공감하고, 이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는 나를 칭찬하고, 안쓰럽다고 안아주면서 함께 우는 건 필요한 시간이다.

그러나 남 앞에서 그러는 건 주의하는 게 좋다.

자기 연민이 과잉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하루나 1년은 이해 비슷한 걸 해도, 수년간 그러면 누구나  피한다.

사람은 사회적 네트워크가 꼭 필요하다.

넓을 필요는 없지만,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피하는 존재가 될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될지, 필요한 사람이 될지 결정해라.

이 결정은 아무리 정신적으로 아파도 스스로 해야 한다.

내 연민을 들어줄 대상이 필요하다면 가장 안전한 건 거울이다.

그러나 대답을 해 주는 존재가 필요하다면 비슷한 처지와 이야기 나누는 걸 권한다.

사실 비슷한 처지의 그룹을 더 추천하지만 거울이 최선이다.

팁 하나 더.

당연히 혼자 해라.

처음엔 어색해도 여러 번 시도하고 한바탕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경험을  번 하고 나면  잘 써먹을 수 있다.

그리고 남과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까닭은 나답게 사는 방법은 나만 다.

대화가 답으로 가는 시간은 늦출 수 있고 혼탁하게 만들어서 나다워질 때까지 에너지를 더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정 장애는 미움받을 용기가 없고 주도적인 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생긴다.

대부분의 심리적 병은 스스로 갈무리해야 완치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이 문제도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적겠다.


그리고 힘겨운 시절일수록 가족을 손님처럼 대하는 게 좋다.

남편을 아무리 사랑해도 아이들이 정말 중요한 존재라 해도 남이다.

나는 그들을 단 1%도 바꿀 수 없다.

가족은 약간씩 영향을 주며 함께 난국을 이겨내는 공동체다.

세상에 하나뿐인 그룹이다.

그러니 이왕 주고받는 영향.

좋은 영향만 주려고 해 보자.

나부터 시작하면 모든 가족이 그렇게 될 것이다.

단 지금 내가 서술하는 가족은 내가 선택한 반려자와 내가 낳은 자식을 말한다.

선택권 없이 맺어진 가족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루겠다.


이제 오늘의 글을 마치면서 행운이 오는 징조에 대해 적으려 한다.

행운은 네트워크를 타고 신호를 보낸다.

어리석은 사람은 옆집이 잘 될 때 배가 아프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내 인맥이 잘 되면 진심으로 기쁜 법이다.

지인이 잘 되면 곧 내 차례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가족에게 내 넋두리를 너무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 불편한 우울감이 오려던 행운을 막거나 작게 줄일 수 있다.

 

이제 오늘의 글을 마치겠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쓰는 모든 글은 작가 본인의 개인적 사견이니 맞지 않는다면 구독을 취소하고 읽지 말길 바란다.

서로 이득이 없다면 시간낭비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짧은 게 인생이다.

나도 구독자님들도 시간낭비 없는 알찬 인생 신명 나게 살다 가셨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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