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아주 가끔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 날 떠올려주시오

by girok

비가 세차게 내리던 여름밤이었던가요. 장마가 찾아올 거라는 예보를 보았음에도 여지없이 찾아오는 장마에 늘 흠뻑 적셔지곤 합니다. 몸을 말리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듯 마음에도 내려지는 비를 멈추지 않으면 젖은 마음을 말리지 않으면 아파지고 슬퍼집니다. 참으로 다양한 사연으로 인해 생기는 아픔과 슬픔이 많습니다. 대비도 대피도 못한 채로 저는 속수무책 아프고 슬퍼야 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사계절이라 합니다. 봄에 피는 꽃내음을 맡으며, 여름의 싱그러움을 한껏 먹고, 가을의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내 머리와 발 등으로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계절마다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 있는 차가움과 뜨거움 저는 뜨거움이 차가움을 덮어버린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차가운 바람 속 추운 겨울날에도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있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두 성질 중 어떠한 것이 반대를 잠식시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잠식이 아닌 서로의 고유한 성질을 서로가 알고 보완해 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자주 차가움에 잠식당하곤 합니다. 내 차가움이 따뜻하고 뜨겁게 바뀌기 전에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고, 말을 멈춰야 했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람과 사물 모든 것으로부터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사람들 많은 시간들 속에서 자주 잊히고 자주 사라지겠지만 나라는 점이 어느샌가 그 누구도 모르게 지워지겠지만 점이 있던 자리에 다른 존재가 자리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주 보고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지 못할지라도 그저 가끔 서로의 기억 속 작은 부분 짧은 순간 그리고 추억 어쩌면 이를 꿈과 환상이라 표현해야 맞는 것일까 싶기도 합니다.

이따끔 눈 내리는 밤길을 걷다 보면 내 세상은 고요가 됩니다. 작은 불안과 우울 외로움이 덮여지듯, 눈을 밟는 순간 온 세상은 고요해졌고, 불이 꺼졌고,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꿈속에 있는 걸까요? 꿈과 환상 속, 우리는 서로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여, 조용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다만 아주 가끔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날 떠올려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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