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칠흑이 뒤덮인 밤이 찾아올 때면, 나는 무서움에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그 떨림은 오랜 시간 나를 괴롭고 외롭게 했다. 오랫동안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는 그 말을 꺼내야 할 때,
잘 지내니?
사람들은 내게 자주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그 물음이 세상 따뜻하면서도 세상 지겹고 세상 무기력했다.
지난날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하고 생각하고 편지를 써 내려가며 나를 내 마음을 달래 왔다. 그렇게 한 번 또 살아냈다.
살아있는 육체의 온기는 따뜻하다. 몸에 열이 많아서 사람들은 손잡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나는 내 온기를 그 손으로 넣어주곤 했다.
이렇게나 열이 많고, 따뜻한 온기를 가졌는데,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번 죽고 여러 번 살았다. 힘겹게 살아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서른에 죽어야지 다짐했다. 미성숙했던 나의 어린 시절 그냥 내뱉었던 소리라고 시간 지나가 사라질 소리로 인식하며 무수히 많은 날을 지나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나는 서른이 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 살아있다. 누군가 내게 그때 바랐던 것들이 그 바람이 현재진행형이고, 아직도 그 꿈을 꾸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써 준 편지, 선물해 준 책들, 추천해 준 음악과 노래, 들려준 이야기들을 다 읽고 듣기도 전에 나는 단명을 꿈꾸고 있다.
삶이란 무엇일까, 무수히 많은 밤을 지나왔으면서도 많은 생각과 글을 남기고 전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름대로 풀어내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나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지나온 시간과 장면들이 생생하다. 작게 피어나던 지옥이 어느샌가 내 일상 한가운데 서서 나를 찔렀다. 매일 나는 찔림과 동시에 피를 흘리고 피를 토해야 했다. 이제 더 흘리고 토해낼 것도 없는지 투명한 액체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 더 힘을 내고 나아갈수록, 나의 지옥이 현실로 바뀌는 과정을 생생히 온몸으로 느끼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 죽어가는 표정을 하며 일을 하고, 어느 날은 이 한 몸 바쳐 잘해내야겠다는 갑작스러운 다짐을 하고 열심히 몇 주를 살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늘 무기력했다. 무기력과 무력함에 잠식당한 채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렇게 지냈다.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없다고 한다. 그들의 언어는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정신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고 있기에 언어라고 할 것이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느끼지 않기에 사랑하는 이들을 가까이 때론 멀리서 지켜보며 사랑을 나만의 언어로 기록한다.
사랑이란 무한하기도 하지만 유한하기도 하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저마다 다르다.
지나가는 소리로 친구에게 “사실 나 지난번에 내 삶을 정리하려고 했어.”라고 말했더니 친구의 두 눈이 커지며 나를 걱정하는 말투로 내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뒤로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나 괜찮아진 것 같아.”라고 말하자 친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늘 사람들에게 긍정이 담긴 말들을 건네려고 한다. 있어주어서 존재해 주어서 오늘도 그대로 존재해 주어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실 편안하면서도 두렵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 모습이 선명하기에 그 삶이 무너질까 봐 사라질까 봐 무서웠다.
사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지고 싶다. 정해지지 않은 태어남은 정말이지 나를.. 나를.. 지금까지도 아프게 한다. 안다. 이 말이 얼마나 불효의 말인지, 얼마나 아픈 말인지.
살아야지, 살아내야지, 살아내야만 해라고 나를 치고 또 치고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사라질 내가 그 시기가 곧이기를, 아무도 내 이름 한 글자 기억하지 못하고, 내 얼굴 이름 목소리 기억하지 못하고 묻힌다고 해도 괜찮을 만큼 애초에 나의 쓸모는 그들이 존재해야만이 생기는 것이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나는 채워지지 못한다. 모든 것에 구멍이 있고, 빈틈이 있고, 뚫려있다.
시간과 계절에는 큰 힘이 있다. 그 힘이 때로 내게 위로와 온기를 주고 때로 내게 절망과 지옥을 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숨을 헉헉대며 겨우겨우 벅찬 삶을 살아낸다.
지난날 내가 써내려온 것은 예술이 아니라 그저 배출하지 못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쓰레기라도 붙들고 쓰레기라도 안고 살아야지 숨이 쉬어진다.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자격이 주어진다.
언젠가 행복이 담긴 글을 쓸 수 있을까? 그 대상이 생길까 생이 마감하기 전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오빠의 결혼식을 보는 것, 직접 내가 축가를 해주는 것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날 행복을 바라는 것. 그리고 부모님의 건강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과 건강 이걸로 됐다. 이대로 생을 마감해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혹은 자주 매일 단명을 꿈꾸고 무기력과 무력함에 빠져 그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언어로만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지금 삶이 지옥이라면 그다음은 천국일 테니까,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런 나를 지켜봐 주길.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말아 주길. 나의 삶을 존중해 주길.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을 대비하여 오늘도 나는 쓰레기를 껴안은 채로 하루를 살아낸다.
끝은 향기롭기를,
찬란히 빛나기를,
천천히 고요히,
그렇게 침묵 속에 잠기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