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의 삶과 시간에 칠해져있던 색들이 하나 둘 벗겨지기 시작했고, 색들에 가려져있던 또 다른 나의 이면, 나의 민낯, 헐벗은 마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불이 꺼지듯 나의 소신은 점차 희미해져갔고, 살아내려 발버둥 치며 잡고 있던 ‘실 한 가닥’을 놓쳤다. 그 순간 누가 바라기라도 한 듯 시련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음에도 불청객은 문을 쾅쾅 두드리며 내가 나오길 바랐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큰 두려움에 휩싸여 나는 문을 열었다. 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한 것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밀치며 들어왔다. 어떠한 방어도 하지 못한 채로 나는 그 불청객이라는 시련에 둘려싸여 하루 이틀 매일을 보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 시련을 넘기면 또 다른 시련이 내 코앞에 닿을 정도로 와있었다. 그때마다 난 죽은 사람처럼 다 죽어가는 육체를 이끌고 악착같이 버텨냈다. 나의 육신은 죽어가면서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정말 나를 무수히 많은 사념 속에 갇혀 지내게 했다.
사람은 큰 어려움이나 위험한 일이 생기면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마 나 또한 그 시련들을 나 혼자는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주위를 살폈다. 나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는 사람,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 손을 건네주는 사람, 어깨를 내어주고 곁을 내어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많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나는 존재하고 살아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에너지를 사용하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에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한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산다. 살아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는 일, 곁을 내어주는 일, 손을 잡아주는 일과 같은 나의 온기를 나눠주는 일은 살아있을 때만이 할 수 있는 다정한 불빛과 같다. 나의 삶과 온도 온기를 지키며, 타인에게 건네는 선물. 어두운 방 불빛 하나 없는 곳에 환하게 불이 들어오듯 스위치 전원을 누르면 켜지는 조명처럼 서로가 서로의 스위치를 눌러주어 서로의 삶이라는 조명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내가 되고 삶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