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인 기획자가 푼 독

by 기로

[한때,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작업물]


에스엠에서 발매한 음반들 중 S.E.S.의 앨범을 제외하면 구매한 앨범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작업물일 것이다. 에프엑스의 앨범들이 그렇고, 레드벨벳이나 샤이니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갖고 싶은 것이 되었다. (개인적으론 에프엑스의 레드라이트 앨범과 레드벨벳의 피카부 앨범을 최고로 꼽고 싶다) 에스엠 시절엔 아주 전면에 드러난 적은 없지만 에프엑스나 샤이니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그의 이름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동안의 정공법을 탈피한 새로운 문법으로 보여준 기획자]


뉴진스는 사실 이 이야기에 쓰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뉴진스를 통해 보여준 기획의 능력, 곡을 만들지는 않지만 좋은 곡을 선택하고, 거기에 어떤 옷이나 어떤 것들을 담아낼지에 대한 모든 디렉팅 능력만큼은 가히 뛰어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보통의 아이돌판의 문법이라면 하지 않을 만한, 예를 들면 버블검의 경우 뮤직비디오가 먼저 공개되고 노래는 2주 정도 후에 공개가 되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뮤직비디오로 먼저 보이는 어떤 이미지와 음악이 주는 것을 먼저 느끼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의도라고 했다. 같은 앨범의 하우스윗은 또 노래가 먼저 공개되고 뮤직비디오는 나중에 공개를 했다. 이건 노래를 먼저 귀로 느끼고, 이후에 그에 얹힌 이미지의 집약체인 뮤직비디오로 버블검과는 다르게 느끼라는 의도였다고.


이런 식으로 아마 모든 앨범과 모든 곡, 그리고 스타일링, 안무 모든 디렉팅을 세심하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그동안 돌판에서 해온 공식들을 과감히 버리고 그 음악이나 음악을 위한 것들을 좀 더 대중들이 재밌게 즐기기 위한 기획을 해왔다고 보여진다.


[새로움이 결국엔 독으로]


하지만, 지금 그 ‘새로운 문법’이 가장 기괴한 방법으로 변주되는 현장을 대중 모두와 함께 보았다. 그는 뉴진스를 기획하며 보여준 새로움을 자신의 법정공방과 여론전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듯 보였다. 과거에도 기획사와 가수 간의 법정공방들은 있어 왔지만 대부분 뉴스의 헤드라인 혹은 텍스트에만 머물렀고, 타격은 있었지만 피로하진 않았다.

이번 사태는 일종의 ‘새로운 선례’처럼 느껴진다.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모두가 지켜보고 메신저 대화나 지극히 사적인 것들까지 보여지는 폭로전이 되었다. 굳이 대중들이 알 필요가 없는 정보들까지 까발려지고 이는 순식간에 가십이 되어 이리저리 떠돌고, 새롭게 가공되기도 전시되기도 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아이돌의 음악과 무대는 한순간에 진흙탕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


[지키고 싶었던 건 뉴진스였을까 자신이었을까]


그는 늘 엄마처럼 그들을 지키고 싶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초반의 기자회견과 다르게 어느 순간 멤버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자신은 그들의 이야기에서 사라졌다. 마치 뉴진스가 대형 기획사에 맞서는 혁명가처럼 그의 가면을 고대로 물려받게 된 듯한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특히, 최근 탬퍼링 의혹의 배후로 ‘멤버의 가족’이 언급되며 공론화한 지점에서는 더 이상 뉴진스의 엄마로서의 서사가 읽히지 않았다. 사실관계의 진위여부를 떠나 본인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은 멤버의 가족마저 이 싸움에 끌어들인 것은 지키고 싶다고 했던 게 뉴진스였는지 자신이었는지 혼란스러워지는 대목이다.


[대중이 잃어버린 즐거움]


우리가 아이돌의 음악과 무대를 즐기는 이유는 잠시나마 삶의 버거움을 잊고 온전히 그들이 주는 것들에 빠져 즐겁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그랬다. 하지만 새로운 혁명가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기획의 새로움마저 가져다 자신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가져다 쓰고 말았다. 결국 남은 건 대중의 피로도와 의심, 그리고 사라진 관심일 것이다. 그리고 1년이 넘게 이어져온 지리한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해서 남는 건 과연 무엇일까. 여전히 우린 뉴진스의 음악을 듣고 있고 그의 작업들은 건재하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너무나 파괴적이 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싸움을 옹호할 수 없다. 자기가 살기 위해 너무 많은 이들을 이 진흙탕에 끌어들여놓고 그에 대한 책임은 끝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한때 그의 작업을 사랑했던 한 명의 팬으로 느끼는 가장 큰 씁쓸함이자 이 글의 결론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훗날 내놓을 또 다른 새로운 아이돌이 궁금해지는 것만큼은 어쩔수가 없다. 아마 그들이 나오면 나는 또다시 그들의 음악을 소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지독한 피로감 속에서도 그의 미감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가장 잔인한 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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