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그 자리에 나의 아쉬움대신 춘식이 인형을 놓고 왔다. 제주에디션인 그 인형을.
8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퇴사했다. 12월 중순에 결정이 났고, 그때부터 12월 말까지는 혼란기를 거쳐 1월 초부터는 혼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인수인계와 맡았던 사업의 결과보고 및 정리에 힘을 썼다. 퇴사가 결정되고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 마음이 가장 컸지만 그래도 조금 지나니 한편으론 후련했다. 그동안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고 막혀있던 체증이 뚫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또 한편으론 불안했다.
‘다음 달부터 당장 누군가가 이 일을 해아 할 텐데’ 하는 조급함이 나를 압박했다. 조금 일정이 타이트하긴 했지만 어쨌든 남은 직원들의 손에 내가 작성한 문서를 모두 넘겨주었다. 실무자선에서 편히 따라 할 수 있게 내방식으로 업데이트를 하고 직접 각 담당자들에게 인계를 완료했다. 공용폴더에 파일을 옮기고 내 컴퓨터에선 모두 삭제했다.
모든 정리가 끝난, 그날도 여전히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 컴퓨터 전원버튼을 눌렀다. 돌이켜보면 특별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없을 정도로 여느 날과 같았다.
공교롭게도 그날 지원했던 한 곳의 서류전형 발표가 있었는데 떨어졌다. 분한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커피를 샀다. 어디선가 운이 좋아지려면 의미 없이 누군가에게 커피를 쏘라는 말이 순간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하고 정들었던 자리와도 이별을 고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한번 바라봐주고 올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신 그 자리에 나의 아쉬움대신 춘식이 인형을 놓고 왔다. 제주에디션인 그 인형을.
새로 입사한 직원들과는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술자리를 마지막날이라고 특별히 몇 안되는 직원이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 일할 때는 잘 드러내지 않는 속내를 마지막날이라 모두 분출해 버렸다. 서로의 장점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직원들이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받았다.
내 손에는 이제 회사의 그 어떤 서류도 남지 않았다. 오직 그걸 증명할 선물과 편지만 남았다.
내 인생은 이제 어디로 흘러가려나, 막연한 두려움과 설렘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