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함과 모호함 그 가운데

시집 '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 감상평

by 기로

시는 어렵고 내가 파악할 수 없게 간결하다. 너무 간결해서 불친절한 이 장르를 나는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의 단순한 뇌를 이해시키려 들지 않고 특별한 사건이나 눈에 보이는 기승전결이 있지 않다 보니 두루뭉술하고 모호하다. 그래서 시는 잘 읽지 않는다. 음악은 들어도


민음사에서 발매한 여러 시인의 시 모음집 '우리는 사랑하기 좋은 팔을 가졌구나'의 첫 감상평은 그랬다. 기획자와 편집자를 탓하기도 한 게 너무 작은 책이 13,000원이나 하는 데다 잘 보이지도 않는 글씨를 이리저리 자체 확대해서 보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주는 힘과 짧은 한 편의 시가 주는 빠른 속도감과 간결함이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계속 박민규의 카스테라와 무라카미하루키의 불확실한 벽이 떠올랐는데 그 두 책이 주는 현실세계에서의 일어나는 일이 아닌 것 같은 점과 막연한 희망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점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는 황인찬의 '오수', 김연덕의 '사랑의 미래', 임경섭의 '기념일'이었다.


특히 좋았던 구절은 ‘사랑의 미래’에서 아래의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밤에만 자라나는 감정들처럼
겨울엔 수치심도 하얗게 보여
창에 이마를 가까이 댄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가까이
다 꺼진 촛대를 든 채
지겹게 솟아오르는 어깨를 본다


약간 에로틱하게 해석할 수도 있으면서 밤에만 살아나는 감정과 수치심, 그리고 반복되는 지겨움 같은 감정들이 크게 다가왔다. 내밀하고 은밀한 밤의 정서, 저 구절에서 느낄 수 있는 화자와 상대의 상황이나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져 그 순간만큼은 시 안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우리는 이미 사랑하기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시간에 이 많은 것들을 사랑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특히, 사랑의 달달함만이 아닌 공허함과 무기력함, 사랑하기 위한 대상을 다시 한번 정의하고 싶다면 이 시집을 한번 읽어 보길 추천한다.


IMG_5699.jpeg


작가의 이전글퇴사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