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도 올렸던 내용인데 조금 정리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회사 생활 하면서 해볼 수 있는 큰 경험들은 거의 다 해 본 듯합니다. 회사 일을 하면서 값지다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여럿 있겠지만 크게만 보면 우선 신사업을 0에서부터 시작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 사업으로 투자를 받고 상장까지 이르는 과정을 최전선에서 경험했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네요. 아마도 2019년 말미였던 듯한데요 일종의 시리즈 A를 투자받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었습니다. 저희 회사가 그전까지 전혀 외부 자금을 유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 활동 자체가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연구소와 재무 파트에서 진행했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듯합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전 당연히 몰랐고 돌아보니 그래도 좋은 기업을 다니시고 좋은 대학을 다니셨던 분들의 인맥을 활용하거나 아니면 관련 일을 하시는 업체들을 파트너사로 선정하여 진행했던 듯합니다. 여하튼 저는 사업 담당이라 그때도 계속 해외로 돌고 있었고요. 그러다가 연구소장님의 땜빵(?)으로 투자 유치를 위해 모 대기업 쪽에 갔었는데 그냥 회사 및 기술 설명을 한다고 해서 고객한테 하듯이 열심히 설명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론 이 업체로부터의 투자 유치는 실패했지만 당시 주선을 담당했던 파트너사의 임원분과 저희 CFO님이 제 설명에 좋은 인상을 받으셨던 듯합니다. ㅎㅎ 그 후 제가 끌려(?) 다니게 되었네요.
투자유치는 업체 별로, 상황 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IR자료 등을 준비하고 투자자 접촉 및 미팅을 진행한다는 골자는 같을 겁니다. 그 후 관심이 있는 투자사가 투심(투자심사)을 진행하죠. 투심을 통과하면 투자를 위한 법률적 절차를 진행합니다. Term sheet 협상(투자 조건)을 하고 계약서 쓰고 납입까지의 과정이 됩니다.
제가 주로 담당했던 부분은 IR 미팅 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했습니다. 저희를 담당하시는 VC(벤처캐피털) 분들이 기술과 시장에 대해 많이 모르셨거든요. 저는 비즈니스를 담당했었으니 당연히 시장 내 같은 플레이어들을 설득하는 역할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저보다 많이 알면 아시지 아예 모르는 분들이 미팅에 나오는 경우는 없는 그런 분들을 대상으로 설명과 설득을 담당했었거든요. 제가 상정하는 저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의 업계 관련 지식수준이 "없음"은 정말 없는 경우의 수거든요. 어느 정도를 감안한다고 해도 "없음"이라니..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VC분들은 그래도 우리 회사의 미래 가치에 투자를 하시는 분들이라 기술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셨었네요. 상장 후 증자 쪽의 담당분들과는 성향 자체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고 구태여 따져보자면 전 오히려 VC 쪽 분들과 더 잘 맞는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잘 몰라서 속으로 그분들 비난도 했었지만 지금은 정말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실컷 설명하고 다 알아들었다고 하셔 놓고 선 밤에든 주말에든 제가 해외에 있든 아무 때나 전화하셔서 똑같은 거 물어보셔서 진짜 짜증도 많이 났었거든요. (하지만 전 프로페셔널.... 비즈니스맨이라 티는 내지 않았다고 자부.... 합니다.... 맞을 걸요? ㅠ_ㅠ) 나중에는 녹음하시는 것이 어떠냐고 먼저 말씀도 드리고 그분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친구가 되신 분들도 있고요...
당시에 뼈저리게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 제 생각에는 그전에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라 보지만 글쎄요 이 아, 어가 비즈니스와 바로 연계된다거나, 혹은 정량적으로 이걸 증명할 수 있나라고 물어본다면 연관은 있다 정도로 밖에는 이야기할 수 없는, 감안해야 하는 변수정도의 레벨로 인지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투자유치는 아, 어의 차이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전 무언가를 과장해서 이야기하거나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세상사 100%는 없거든요. 참모로서 오래 일해왔고 인생의 지향점이 참모 쪽이어서 제가 하는 가장 높은 레벨의 일은 기회를 발굴하고 기회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최종 결정권자가 선택할 때의 정확한 근거자료를 제시하는 것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하면 투자는 못 받을 겁니다. 조금의 과장정도는 있어야 할껄요? ㅎㅎ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아니요 유사한 기술은 많고 어차피 점유율/금전 싸움입니다라고의 답변보다는 우리는 우리 기술이 최고 수준이라 확신하고 개발을 하고 있으니 그걸 시장에 증명하려고 하는 겁니다라고 답변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가 투자를 받을까요? 후자 쪽이 조금 더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투자하시는 개인의 성향별 차이는 있습니다. 투자하시는 분들은 투자의 책임을 받는 분들과 나눠 갖는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니 투자자 본인이 설득이 되거나 혹은 투자자 위의 진짜 돈을 가지고 계시는 LP를 설득할 당위성이 그분들에게는 필요하거든요.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마케팅에서 많이들 언급하잖아요. 그러니 우리 투자를 담당하시는 그분들이 우리 기술과 미래에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면 그분들을 반드시 설득, 이해시키고 그분들이 회사에 돌아가 투심 진행할 때 우리에 대해 충분히 소명, 소구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니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구의 사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들이 달라졌으니 전략적 수정은 필요한 거죠. 결국 우리를 알든 모르든 상대방을 설득시킨다는 작업은 같다고 이해했고 그 경험이 여전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우리 기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더 쉽게 설명하는 법을 배웠다고나 할까요?
당시를 떠올리면 그렇게 짜증을 냈었지만(제 일도 아니고요...) 즐거웠음이 확실하네요. 일기장을 봐도 짜증 + 즐거움이 혼재합니다. 시리즈 A만 투자받고 바로 상장으로 직행해서 PreIPO를 조금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Pre IPO 빼고 400억 이상을 받았으니 즐거울 수 밖에는 없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