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독서에 가깝습니다. 독서에 가깝다의 의미는 독서도 하고 다른 것들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글자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거나 관심이 있어야 하는 부분에 모르는 것이 있는 것을 비선호하니 책을 항상 읽으려고 노력하고 읽는다 정도입니다. 그런 성향이 업무에도 나타났었나 봅니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혼자 공부하고 없어지지 않도록(?) 보고서도 써보고 했었거든요. 이전 회사에서도 신사업을 담당했습니다. 말이 좋아 신사업이지 중소기업에선 신사업은 무얼 해야 하는데 무얼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저렴한 인력을 배치하는 일이 태반이라고 봅니다. 요새는 다를지 모르지만요. 현재의 회사에 와서도 Automotive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제가 자동차 쪽 1호 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신사업에 배치되면 실질적인 의미에서 보스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보스나 저나 다 같이 첨하는 일이거든요.
여하튼 신사업에 배치되어 이러저러한 시간이 흘렀고 저희 회사는 어찌어찌하다 보니(실제 전략적인 머 그런 것이 있었지만 귀찮아서 생략) 패턴 인식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문용어로 Machine Learning 머 이런 거죠. 이 쪽을 전공한 엔지니어도 뽑아 보고 로드맵에 일단 올려놓고 고객사나 협력사의 피드백도 받아보면서 첫 번째 반도체가 막 출시된 시점이었는데 힘들게 제품으로 구현한 이 ML알고리즘이 인공지능으로 변경되는 그 변곡점에 저희 회사가 서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제품 출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갑자기 인공지능인 거냐!!라는 절규는 하는 사람이나 하는 거고요 일단 방향성을 정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머신러닝 쪽 첫 제품을 냈으니 저희의 역량을 인정하는 회사들도 있었고 이걸 어떻게 반도체에 넣는지도 이해는 하고 있었거든요. 어차피 저희는 반도체 회사니까 이런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구동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게 어떤 것인지 모르면 넣을 수 조차 없다는 부분입니다. 즉 국그릇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국이 먼지 모르고 양도 모르니 사이즈조차 결정할 수가 없는 거죠...
머신러닝 쪽 제품은 길게 쓰면 한도 끝도 없으니 간단히 표현한다면 S/W로 구동되는 부분을 H/W로 만들었다.. 정도로 이번에는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H/W로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이게 도통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어서요. 다년간의 맨땅의 헤딩 이론을 몸으로 습득했었으니 그걸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보면 치기 어리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똑같이 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론 전문용어로 연습다마를 칠 업체를 하나 만나고 거기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분석하고 그 분석한 것을 정리해서 제2의 연습다마를 칠 업체를 만나고 그래서 진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업체와의 미팅에 임하자라는 상당히 전문적인(??? ㅋㅋㅋ) 전략을 만듭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2가지입니다. 업체 Sorting은 메일이나 전시회 발품을 조금만 팔면 가능하기 때문에 요건 쉬운 부분이지만 아는 만큼만 정보 취득이 가능하니 멀 알아야 하는 게 핵심입니다. 즉 상대 업체 쪽에서 우리가 알고 싶은 만큼의 정보를 주도록 하려면 우리가 멀 알아야 하는 것이 1번. 두 번째는 그분들이 말한 것을 알아먹어야 한다는 것이 2번이죠. 1번 2번 모두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겁니다. 헌데 알기 위해 만나는 거거든요. 이런 모순이... 그래서 회사 내부에 학구열에 불타는 엔지니어 한 분을 소위 꼬십니다. 나랑 같이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이걸 하자, 그래서 공부를 좀 해라, 난 엔지니어가 아니니 용어에 주력하고 당신은 기술적인 아이디어에 용어 매칭정도만 해라였습니다. 전부 영어로 해야 하니 복잡도도 더 올라갔죠. 일단 인공지능 초기 시장이라.. 자율주행이네 머네 먼 이런 책까지 서점에서 전부 긁어서 대략 10권 넘는 책을 읽죠. 그 엔지니어 분도 책으로 공부합니다(당시에 인공지능이 있었다면 삽시간이었을 텐데...)
그렇게 업체들을 만나러 갑니다. 첫 업체가 인도의 초기 NPU를 개발하는 곳이었는데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NPU IP 도입하겠다고 하면서 미팅을 했습니다. 실제로는 저희가 위에 설명했듯이 (S/W를 H/W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ML Accelarator를 만들었으니 AI 가속기(이게 NPU죠)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자의 Hidden 미션도 있었습니다. 이게 히든 미션인 것은 우리가 직접 만든다고 하면 IP 도입을 하겠다는 것과 모순되거든요. 솔직히 저희가 만들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서 이게 정말 미션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여하튼 미팅은 잘 안다 모른다 이러면서 최대한 이 기술이 어떤 건지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미팅한 후에 함께 이 일을 했는 우리 쪽 엔지니어와 머리를 맞대고 들은 것을 분석하고 이건 이런 의민가보다 이건 이런 건가보다 하면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었네요. 그래도 저희는 즐거웠습니다. 아니 최소한 저는 즐거웠습니다.
이런 미팅을 한 두 곳 정도의 업체들과 2-3번 하고 난 다음에는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이 업체 저 업체를 만나죠. ㅋㅋ 전문가행세라고 적었지만 어쩌면 당시 기준으로 정말 많이 아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희와 일하고 있는 운명의 그 업체와의 미팅에 임합니다. 저희 쪽에선 설계, S/W, 알고리즘을 담당하는 소위 Super Set이 나가고 그 업체에서도 5명의 엔지니어가 나옵니다. 그간과 다르게 전문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해야 되니 긴장이 되었죠. 언제나 그렇듯이 모르는 단어가 나올까.. 제대로 통역을 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납니다. 그 업체의 엔지니어들이 이야기하면 제가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통역을 합니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면 뉘앙스를 설명합니다. 우리 엔지니어들도 들은 단어들이 있으니 조합해서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고요. 마찬가지로 우리 엔지니어가 설명하면(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간략하게 이야기하라고 다그치죠..ㅋㅋㅋ) 그걸 다시 상대 엔지니어들에게 설명합니다. 어쩌다가는 양쪽 다 못 알아먹으니 저희 엔지니어 분들이 나가서 블록도라는 구조도를 그리고 저쪽도 유사한 것을 그리고 머 그러면서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우리 쪽 엔지니어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들이었고 상대 엔지니어들은 각광받는 스타트업의 분들이었으나 경험은 좀 부족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아키텍처(구조)라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치대로라면 100이라는 것이 담보된다고 했을 때 실제 구동해 보면 여러 사정으로 60밖에 되지 않는데 그들의 상정범위는 80이었으니 요런 부분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우리가 왜 80으로 했느냐?라고 물어보면 다른 반도체에선 그렇게 한 듯하다고 하길래 우리가 설계하고자 하는 것은 사이즈도 다르고 용도도 다르기 때문에 구동 방식의 차이로 인해 상기와 같은 갭이 더 발생하는 것이라 설명해야 했죠. 에휴.. 이런 경험에 의한 수치들을 설득하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우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거든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했으니 점심식사 빼면 8시간의 강행군이었죠. 다음날도 2-3시간 더 한 듯합니다. 그래도 그 미팅을 기해 우리 회사가 인공지능 관련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당시에는 힘들었을 테지만 전 즐거웠습니다. 하하 아직도 그 업체랑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 미팅 전에도 조금씩 협업은 하고 있었는데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젊었던 그들도 업계의 베테랑이 되었네요. 어쩌다가 술이라도 같이 한 잔 하면 서로서로 위로해 주고 칭찬해 주고 우리끼리 놀아왔습니다. 얼마 전에 상당히 복잡한 이슈가 있어서 당시 초기 인원이었던 3명이서(다들 최상위 결정권자들이 되어 있네요) 커피를 들이부으면서 미팅을 했는데 문제 해결은 둘째치고 문득 즐거워졌습니다. 미팅 이후에 나 즐거웠어.. 왠지 행복해한 거 같아라고 했더니 그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결국 일도 사람이 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