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3번에 걸쳐 적게 되다니...
각설하고 기평이 끝나고 이제 상장 예비 심사를 준비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상장예비심사 Kick-off 자료들을 찾아봤는데 안타까운 프로젝트들이 적혀 있더라고요. 언젠가 이 프로젝트들 진행했던 이야기를 좀 풀어보고 싶네요. ADAS로 그 수준까지 그런 업체들과 일한 기업이 국내에선 많지 않을 것이고 반도체 기업으로는 저희밖에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비심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발표도 해야 하고 IR도 해야 하고 그래서 겸사겸사 Full-set 자료를 만들고 상황에 맞춰서 조금씩 수정한 버전으로 대응하자가 골자였지요. 그러니 Full-set은 원대하고 장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평에서 사용한 자료는 기술 쪽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하되 기술과 사업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어느 정도의 매출을 창출하는가, 시장의 흐름에서 어떤 포지션을 가지고 있고 이 포지션을 통한 강점과 기술로드맵의 지향점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머 이런 거를 정리해야 하는 겁니다. 기평(기술평가)할 때도 이미 담당자들 나름의 기준으로 고생이란 고생을 다했으니 이번에는 명확하게 하자!!라고 생각을 했지만(여전히 저는 아웃사이더에 속했습니다) 역시나 같은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사업부가 비즈니스 방향성과 시장상황을 정리하고 연구소는 장황한 기평 자료를 좀 더 쉽고 간결하게 정리하고 사장님 휘하 간택된(?) 에이스들이 이를 취합해서 정리하는, 기평과 전혀 다르지 않은 방법을 선택하죠.
결과를 먼저 알려드리면 이거 안됩니다. 다른 방법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누군가 한 명이 Index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논조를 정해서 Index를 만들고 이 Index가 보편타당한지 주관사와 상의한 후에 내용을 채워야 합니다. 주관사가 가지고 있는, 심사원들이 좋아하고 선호하는 기준들을 반영해야 하거든요. Index가 충분히 자세하고 효과적이라면 내용 메우는 것은 아무나(?) 해도 됩니다. 하지만 저희처럼 각각의 부서가 만든 자료를 다시 취합해야 한다면 에구에구.. 안드로메다로 가기 십상입니다. 제가 예전에 번역 알바를 했는데요, 번역 알바할 때는 알바생들을 모아서, 고유명사의 통일, 어떤 문체로 번역할 것인가 등의 일관된 룰을 정하고 번역할 서적의 각각의 부분을 나눠서 할당받습니다. 그래야 합칠 때 큰 문제가 없거든요. 이런 게 없으면 ADAS라고 적는 사람, 운전자 보조시스템이라고 적는 사람, 운전자 첨단 보조시스템이라고 적는 사람, 혹은 Data라고 적거나 데이타, 데이터 등의 변조들이 발생하고 어떤 곳에선 영어가, 어떤 곳에선 외래어가, 어떤 곳에선 한국어가 같은 기술이나 시장을 설명하는데 다 다르게 쓰이곤 합니다.
심지어 저런 오타나 문구의 비일관성을 다 정리하면 어떤 임팩트도 없는 또다시 장황한 문서가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수정하자!!라고 하는데 무오타 버전이지만 의미가 묘하게 다를 수 있어서 특정 문장의 어미 하나 가지고 1시간 동안 싸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매일 보고 받고는 있었습니다만 저의 투입은 없을 것이다라고 통보를 받은 상태였지요. 하지만 제가 결국 투입은 되었는데요 언제 투입이 되었느냐.... 이런 지난한 과정을 다 거치고 주관사와 일종의 리허설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하하하하 자료를 열어보니 양사 모두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었죠. 여하튼 주관사의 피드백을 듣고 고치기는 고쳐야 하는데 이게 좀 어려웠습니다. 기술의 연관성이 없는데 각각의 기술의 연관성을 넣어달라, 왜 이런 기술이 자율주행에 필요하냐, 자율주행이란 무엇이냐와 같은 원론적인 질문들도 있었고 시스템의 구조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 시스템을 설명하면 장황해져서 설명이 뜬금없다라는 류의 지적도 있었습니다. 위에 잠깐 설명했던 세상 트렌드는 이렇고, 거기에 넥스트칩이 어떤 포지션이고 이 포지션을 유지, 확대시킬 수 있는 기술의 장점은 무엇이고를 포함해서 논조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시장의 선단에서 일을 하는 저희 사업 조직이 다시 자료를 고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죠... 어떻게 고쳤냐? 고민 끝에 고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예 다시 만들었고 저희가 만든 자료에 기존 자료들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해서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아니었음도 챙길 수 있는 그런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논조를 아니 뼈대를 다시 만든 거죠. 그럼 이 자료가 최종버전이냐? 안타깝지만 저보다 높은 분들의 손에서 또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쳇... 오랜만에 자료를 찾아보니 주관사셨던 대신증권의 피드백, 중간 결과물, 최종 버전 모두 지금 보니 즐거운 기억이네요. 어떤 기억들이 산출물로 남아있는 것은 확실히 좋은 듯합니다.
기평 이후 6개월 내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해야 하고 청구서 제출이 되면 저희는 소부장특례여서 30일 이내에 결과가 나와야 합니다만 순조로운 일 따위는 당시의 저에겐 사치였나 봅니다. 동 시기에 LG에너지솔루션의 물적분할 이슈가 터졌고 저희도 물적분할이었던 상황에서 무언가 거래소의 조직 개편도 겹치니 생각보다 지연이 발생하게 됐거든요. 2021년 11월 23일에 청구서를 냈는데... 결국에는 2022년 5월 9일에 승인이 나게 되죠. 돌아보면 2021년 10월에 기평에서 A를 받은 후 바로 11월 23일에 청구서를 냈고 2022년 5월에 승인, 그 해 7월 1일에 상장을 하게 됩니다.. 상장할 때의 기분은 머 별거 없었습니다.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었네요. 제가 좀 무덤덤해서 오히려 회사에선 머라 하기도 했습니다.. ㅎㅎ 언젠가 다시 할 기회가 있다면 잘할 수는 있을 거 같은데... ㅋㅋㅋ 기회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