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소회 1

by 뽀야아빠

여러 철학 책을 읽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우리 집안의 가훈이 필요한 사람이 되자였습니다. 나는 필요한 사람인가를 항상 고민하면서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읽은 철학책과 인문학 책들입니다. 문제는 기억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거죠. 읽으면서 감탄하고 반성하고 희망으로 가득 차지만 읽고 나서 하루 이틀이면 완전히 까맣게 까묵고 맙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느낌을 짧게나마 적어놓기 시작했고 요새는 하이라이트 한 부분들을 필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모자라죠. 조용한 아침에, 비가 와서 10시가 넘었는데도 어둑어둑한 새벽과도 같은 느낌의 오늘 그간 정리한 내용들을 좀 적어볼까 해서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1. 시야의 중요성이라고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본인이 속한 집단 안으로 시야를 좁히면 쉽게 불행해집니다. 학교와 사회의 다른 점은 혼자 똑똑한 사람보단 소통과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그래서 지금 괜찮은가?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자꾸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되거든요. (흠... 생각해 보니 관성에 따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ㅎㅎ)


2. 창조적인 인재인가 라는 부분은 대부분의 회사 인사평가에 항상 포함되어 있지만 별 의미 없는 상투적인 평가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창조라고 하면 일반적인 경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을 생각하지만 이미 있는 물건이나 기술의 새로운 쓸모를 발견하는 것도 창조가 아닐까 하네요. 여러 번 고민한 부분이긴 한데 이상하게 인사평가의 저 섹션, 창조적인 인재인가에 대해 전 스스로를 박하게 평가하고 저를 평가해 주시는 분들은 후한 점수를 주시곤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전 무에서 유라는 측면을 고려했던 것이고 다른 분들은 "새로운 쓰임이나 개선"의 측면을 보셨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시의 저는 "창의"로 인정하지 않던 부분이죠. "그저 좀 나아진 것에 불과하잖아"라고 종종 말하곤 했죠. 여하튼 제가 주로 하던 일들이 있는 것들의 새로운 조합을 만들거나 있는 정보로 도출하는 새로운 방향성 쪽이었거든요.(전 새로운 쓰임이라는 말은 써본 적이 없고 가지고 있는 것의 연결이라는 말을 사용했었습니다)


3. 지식의 독점은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장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면 기존 세상이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으니 기득권은 안전하고 편안한 그들의 삶이 지속되길 바라기 때문에 지식을 공유하는 것에 인색할 수밖에 없었을 듯합니다. 여전히 기득권은 사라지지 않고 있고 형태만 변하고 있으나 인간 삶에 있어서 사회생활은 필수가 되어버렸고 이 사회 내에서 나를 지탱하는 것이 생각보다 더 힘들어졌어요. 기득권이고 머고 나부터 챙기자, 한동안 대한민국에 유행했던 각자도생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오지 않았나 합니다. 사회 발전이고 머고 나부터 살아야죠. 하지만 미래 세대, 나의 딸들에게 이런 사회와 행태를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 내에서 나를 지탱하는 것, 거기에 머물지 않고 주변도 돌아보면서 연대할 것은 연대하고 타인에 대해 친절한 배려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 있는 사회를 물려주고 싶거든요. 그래도 나부터 챙기기는 해야 합니다. ㅎㅎ 나, 그리고 삶의 가능성이라고 하면 거대한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연약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과 비교하면 상처 입기가 쉽기 때문이죠. 나에게는 없는데 그에게는 있네가 되면 삶은 초라해지고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제가 SNS, 특히 인스타그램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죠. 제 딸들이 이런 거 안 봤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할 테니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설사 상처를 받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가지도록 노력은 하는데 딸들은 매번 잔소리라고...ㅠ_ㅠ

잠깐 말이 샜습니다만 타인과 비교하면 어떤 수준에서든 내가 초라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나와 비교해야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 지금의 나보다 나은 미래의 나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제 큰 딸과 이야기하던 중 의아스러운 경험을 좀 했습니다. 제 딸은 명사로 불리는 것이 "한정적"인 듯해서 싫다고 합니다.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싫다고 하네요. 아직 6학년 아가인데... 왜 싫은 지는 설명을 못합니다. 한정적이라... 아마도 본인이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데요 꿈과 희망이라고는 부분을 이야기하다 나온 말이니 틀리지는 않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무엇을 위해 용기를 내서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고 돌려서 이야기했습니다. 박진영 씨가 이야기했듯이 꿈을 동사로 꾸는 것이 명사의 꿈보단 나을 듯합니다. 나를 챙기고 다시 주변을 돌아봐주었으면 합니다.(당장 저도 엉망이죠. 주변은커녕 제 앞가림도 못하는...) 나에서 머물면(혹시 꿈이 기득권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사회 발전이 멈추고 결국 모두 불행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네요.


길게 적었지만 비트겐슈타인과 같은 철학자도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나를 바로 세워야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떻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꿈이 동사여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봅니다. 철학적 고민인 동시에 실재적 가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주변에 휘둘리게 된다고... 나의 감정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한정된 단어로만 표현한다면 나의 세계가 좁아지는 것이고 사고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 그러면 선동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나에게 머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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