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시는 분과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하게 된 이야기를 좀 적어볼까 합니다. 그분이 저에게,
"형님, 형님 매번 술자리에서 해주시는 그런 이야기가 요새 김 부장 드라마와 비슷한 거 같아요?"
PTSD올까봐의 이유도 있고 드라마는 왜인지 모르나 유행이 한참 지난 담에 보는 경우가 많아서(나의 아저씨를 5년 지난 시점에 봤던)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재미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좀 오래된 이야기라서 이렇게 많이 변한 지금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공감을 얻는 건 어렵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더니 여전히 그런 상사들이 있다고는 하길래 몇 자 적습니다. 김 부장 드라마 짤로 몇개 봤는데 제 이야기는 당연히 그런 재미는 없습니다. ㅎㅎ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제 직급은 대리였고 특정 반도체에 대한 기술 및 시장분석 자료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제가 이전 회사에서 주력으로 하던 제품이어서 어렵지는 않았네요. 며칠 고민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했고 결재를 올렸죠. 헌데 올리자마자 반려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부장님의 호출이 있었습니다.
"다시 올려.. 이거 밖에 안되는 거야?"
2009년이니까 당시에는 대리가 부장에게 무언가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쳇.. 멀 잘못한 거지?라고 하면서 다시 뜯어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다시 결재를 올렸습니다. 역시나 반려... 그 후 다시 올렸는데 또 반려... 이유는 계속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술자리에서 쟤 똑똑하다고 데려왔는데 아직 멀었어 등의 이야기를 하신다고 동료들이 알려주기는 했지요. 한 5번인가 반려를 받고 답답함에 찾아갔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제가 역량이 부족합니다. 어떤 부분을 고치면 될런지 가이드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찾아간 것이 나름 회사 내에선 큰 일이었나 봅니다. 그 부장님이 좀 권위적이셔서 대노할 것이다 머다 그런 이야기였던 듯하네요. 헌데 자네의 기개를 높이 사네 라던지 친절히 알려주셨다와 같은 반전은 없었습니다. ㅎㅎ
"내가 이걸 너한테 알려주면 머 하러 널 고용했겠냐? 능력을 보여봐라... 글구 모르면 배워서 하세요..." (순화버전...)
헐... 도대체 누구에게 배우란건지... 당시 제 보스이자 Direct 상사가 본인인데... 여하튼 동료들의 기대보단 덜 욕먹었지만 다시 자리로 돌아와 또 고쳐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퇴근도 늦어지면서 더 어디를 고쳐야 되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욕하다가 데드라인 하루 전에 다시 결재를 올렸습니다.
담날 아침... 두둥...
"그래.. 이렇게 만들어와야지.. 무슨 말인지 알겠지?"
라고 하시면서 결재를 해주셨습니다.
기뻤습니다.
기쁜 마음에 제가 전자결재로 올린 보고서를 다시 봤습니다. 엥? 이건 제가 처음에 올린 보고서였던 겁니다. 어제 좀 멍한 상태로 눈 비비면서 있었더니 파일을 잘못 올린 거죠... ㅋㅋㅋ
'근데 이 쉐리... 왜 결재한 거지?'
시간이 좀 지나서 그 부장님이 하시는 일들을 주욱 지켜본 결과 그는 제 보고서를 처음부터 읽지도 않았습니다. 당시엔 소위 빡쳤기 때문에 왜 반려했냐 궁금하지도 않았고 지금도 안 궁금합니다. 이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