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후회하는 단 하나의 순간
인생을 50년 가까이 살다 보니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없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후회스럽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를 삶의 모토로 삼아왔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고민했고, 그 결과로 내린 판단이라면 감내하는 것이 맞지, 후회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그런데 요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 이게 진짜 후회일 겁니다. 그 순간에 저는, 평소의 저답게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으니까요.
5-6년 전 일입니다. 막 임원이 된 시절이었습니다. 최연소 임원, 회사의 기대주. 그 말들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조심하려 했다고 기억하지만, 그 들뜬 기분은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기분은 기분이고, 고민은 고민이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 왔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두 가지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신규 반도체 기획안이 올라왔습니다. A 제품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으니 더 나은 B 제품을 만들자는, 연구소에서 나올 법한 자연스러운 기획이었습니다. 저는 시장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는 했습니다. 다만 그것을 설득할 데이터도, 확신도 없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제품 라인도 아니었고, 자동차 시장으로 넘어온 이후 매출이 줄기는 했어도 여전히 100억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때 회사의 핵심 엔지니어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 기획을 진행하지 않으면 관련 엔지니어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범용 기술이 아닌 특화 제품을 10년 넘게 개발해 온 사람들, 지금의 회사가 서 있는 초석을 놓은 사람들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매출도 늘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알아서 하세요.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결국 그 엔지니어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길을 찾아 모두 떠났습니다. 그 제품은 애물단지가 되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기획이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그분께 꺼냈더니, 돌아온 말은 이거였습니다. "너도 동의했잖아. 내 탓하는 거야?"
탓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반응이 지금도 마음에 걸리는 건, 제가 충분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들떠 있었던 그 시절의 저는, 왜 평소처럼 고민하지 않았을까요. 그 기분이 판단을 흐리게 한 걸까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나에게 직접 묻고 싶습니다.
선택이 인생을 만든다고 합니다. 과거의 선택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나를 만들겠지요. 하지만 그 선택이 치열한 고민 없이 내려진 것이라면, 그렇게 쌓여온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어딘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조금 더 고민하겠다는 다짐을, 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