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의 함몰
요근래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신사업을 기존 멤버로 진행하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그리고 신사업과 기존 사업의 유사성이 클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신사업의 성공률은 오히려 낮아진다는 겁니다.
신사업을 기존 조직 안에서 띄우면 정치적, 심리적 저항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든 설득하고 대승적인 합의를 만들어 런칭까지 시켜도, 그다음부터가 더 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에서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신사업팀에서 일하게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
신사업에 배정된 사람은 기존 업무와 병행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기존 사업에서 높은 실적을 냈던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신사업이 흔들리거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익숙한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신사업 자체가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쪽에 서게 됩니다.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조직의 판단으로 포장하는 거죠.
신사업은 시간이 걸립니다. 투자란 결국 그 시간을 사는 것이고, 티핑포인트를 넘어 매출이 폭발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목표지만, 현실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시간을 못 견디고 되돌아가려는 마음입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매출이 아직 부족하니 기존 사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비즈니스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발씩 걸치는 순간, 신사업은 이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겁니다.
신사업은 스타트업과 같습니다. 죽기살기로 매달려야 합니다. 오히려 중소기업의 신사업부서는 스타트업보다 열악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실적이 있는 회사라도 재무적 체력에는 한계가 있고, 신사업은 언제든 접힐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조건에서 한 발을 다른 곳에 두고 하는 일이 성공할 리 없습니다.
기술기업이라면 이 문제가 한 겹 더 있습니다.
기존에 검증된 기술로 인접 시장에 수평 확장을 시도할 때, 정작 그 기술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가능성을 가장 좁게 봅니다. "이 기술은 이 시장에서만 유효해. 나는 이 시장 전문가니까 다른 시장은 몰라도 돼." 그렇게 말하면서 기존 시장 안으로, 기존 고객 안으로, 기존 방식 안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 들어갑니다. 기술로의 함몰입니다.
새로운 시장에서 이 기술이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사람이 신사업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신사업의 타당성이 증명되면, 그다음은 기세 싸움이다." 기세라는 단어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논리가 아니라 의지. 분석이 아니라 몰입. 그게 없으면 신사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