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 미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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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 하에 합의된 이 솔루션을 가지고 고객사 한 곳을 소위 잡았습니다. 고객사와 아직은 계약 전이기는 한데 계약을 전제로 미팅을 진행해오고 있고 1달 전 3자 미팅에 이어 당시 도출한 액션아이템들을 각각의 회사와의 미팅을 통해 업데이트하고 정리하는 출장이 며칠 전이었습니다.
A사는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이었고 미국 OEM(자동차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제품 판매보단 기술 성숙도를 높이는 쪽으로 Role이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일즈 조직이 굉장히 취약합니다. 그러다 보니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다고 보기 어렵기도 하죠. 협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협업을 하기로 한 것은 각 회사 Top level 들끼리의 결정이었고 그렇게 계약은 되었죠. 담당부터 책임자까지 협업을 해본 적이 많이 없으니 저희가 생각하기에는 '당연하다'라는 부분이 당연하지가 않은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원래 계약까지만 제가 담당하고 이후 제품화를 준비하는 쪽은 저희 회사 매니저들에게 할당을 했었습니다. 이미 개발 완료된 부분이 90% 이상인 상태에서 제품화를 하는 것이라 체크리스트 만들고 일정 관리하는 정도라고 생각했거든요..
1달 정도 지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저희 매니저들 사이에서 불만이 스멀스멀 나오더라고요. 그냥 매번 하는 푸념으로 치부했는데 어쩌다 확인한 메일을 보니 상황이 안드로메다 직행 버스 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겁니다. 이유는... 여러 산발적인 이슈들이 있었지만 결국 당연한 것에 대한 설명의 부재로 인해 조율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 된 거죠. '이건 기본 아니에요?' '얘들 할 생각이 없는 거 같아요'라는 말이 회사 내부 회의에서 튀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원점에서 다시 하는 것을 각오하고 일일이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양사 첫 실무 미팅에서 마일스톤을 만들고 합의를 했죠. 마일스톤 달성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조율해야 하는데 협력사 쪽에선 이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았더라고요. 고객을 설득하기 위해선 이런 자료가 필요하다라고 저희 쪽에서 이야기하면 고객이 그게 필요하대? 우리는 이해가 안 가는데? 가 가장 많은 패턴이었습니다. 즉 무엇을 하던 설명을 상당히 많이 해줘야 하는 상황 이라고 볼 수 있었죠. 저희 담당자들의 입장은 이미 고객은 저희가 소위 물어와서 여러 질문들을 하고 있고 우리는 개발 마일스톤에 맞춰 그 답을 해야 하는데 협력사 쪽에서는 그 질문은 지금 상황에선 적합하지 않다.. 순서가 아니다.. 왜 그게 중요하냐 등 급해죽겠는데 원론적인 질문들을 다시 해대니 조율이 될 리 만무했습니다.
그래서 원점.. 즉 우리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듯하다로 판단하고 일단 고객은 차치한 상태에서 우리는 이러저러하게 비즈니스를 하고 이러저러한 자료들이 이때 필요하며 이러저러한 부분들이 준비가 되어야 해라고 전체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들이 깜짝 놀라면서 그런 거냐 와 같은 소설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ㅋㅋ '이상하다..' '왜 너희 그렇게 하냐..' 등의 태클이 오히려 심했죠.. 그래서 컨퍼런스 콜로는 안 되겠다 싶어 우선 F2F 미팅을 통해 확실히 정리하자고 하며 협력사한테 '날아' 갔습니다. 전체 프로세스에 대해 다시 설명하면서 이게 어떤 부분은 "관용"적이고 어떤 부분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부분이고를 알려주었습니다. 너희와의 차이가 머니? 각각의 진행 과정이나 우리가 설정한 목표에 대해 너희의 생각은 어떠니? 너희 프로세스는 머냐 등을 이야기하며 일종의 통합 프로세스를 만들어냈습니다... 헉헉... 그러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이런 자율주행 스택을 판매하는 방식이 반도체 판매 혹은 그전에 저희가 해왔던 다른 솔루션 판매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자동차 제어가 들어가기 때문인데 에휴.. 설명이 어렵네요. 길어지니 언제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위의 통합 프로세스라는 거창한 이름과 다르게 실제는 서로서로 필요로 하고 진행하는 것에 대한 이해를 한 거다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무엇보다도 서로의 당연하다는 부분의 차이로 인해 감정이 상할 수 있는 부분이 크고 정형화되어 있는 비즈니스 방법론(특히 아시아라던지 지역에 특화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스스로 깨부수면서(어쩌면 자존심도 상할 지도..)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네요.
이번 미팅은 저희가 중간에서 고객사와 합의한 것, 그리고 협력사와 합의한 것을 조율해서 3자 합의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어요. 이렇게 적으면 3자 미팅을 통해 한방에 해결하자라고 하시는 분들이 존재하실 텐데... 필드를 모르는 분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싶습니다. 배경이 다른 업체들 즉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 소프트웨어 만드는 회사,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들의 각자 정형화되고 고정되어 있는 패턴이 있는데 이게 3자 미팅에서 섞이면 한 발도 못 나가고 이해관계마저 틀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니 이런 리스크를 짊어지고 오직 편이를 위해 3자 미팅으로 한방에 가자!! 를 할 수는 없어요. 고객사 쪽과 합의한 내용을 협력사에 설명하고 협력사에게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잘 정리해서 필요한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근거들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런 역할의 호스트가 알게 모르게 정해지는데 이걸 잘 수행해야 협력모델이 안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매번 이러는 것은 아니고 첫 비즈니스 케이스니까 이런 나름의 반복체크가 있는 거죠.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소프트웨어 회사, 시스템 벤더, 반도체 회사의 이해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이걸 일치시키는 것이 정말 정말 어려운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즐기는 편인데요...ㅎㅎ 결국 이 과정이란 것이... 협력사에는 고객사를 대변해서 이야기하고 고객사에는 협력사를 대변해서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도 있지만 전 재미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더 많이 배웠고요. 이런 기술 미팅들을 제가 큰 문제없이 호스트로서 진행시키고 각각의 기술들을 설명하고 마무리하는 것에 어마어마한 만족감, 도파민 폭발을 경험하기 때문에 제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진 다 왔습니다. 계약을 해내면 일단 목표로 했던 그 여정의 반을 지나가는 것이 됩니다.(금번에 다시 업데이트한 제 인생의 목표 중 하나기도 하고요) 협력사 역시 좋은 의미로 많이 흥분한 상태거든요. 올해 제가 대운이라고 하던데 제 인생 최악의 해가 2025년이었습니다. 그 대운, 음력기준으로 해서 연초에 즐거운 일이 있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