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악의 화산 폭발 사건

워싱턴주 세인트 헬렌스산 답사기

by 아일랜드림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 광주에서 계엄군 탱크가 굉음을 내던 그날,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는 아주 다른 성격의 폭발이 발생할 참이었다. 서북미 워싱턴주에 자리한 세인트 헬렌스산(Mount St. Helens)은 123년의 침묵을 깨고 대재앙과도 같았던 화산 폭발로 서울시만 한 면적의 숲을 집어삼켰고, 그 결과 57명이 목숨을 잃고 7천여 마리의 큰 동물들, 수백 수천만 마리의 물고기 떼 그리고 수많은 새와 작은 동물들이 흙 속에 묻혔다.


미국 안팎으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적지 않았지만 유독 1980년 세인트 헬렌스를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화산 폭발이라 부르는 이유는 위성, 지진계 등 현대 과학으로 측정이 가능해진 시대에 일어난 첫 번째 미대륙 화산 폭발 사건이었던 데다 연이어 발생한 산사태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였기 때문이다. 폭발 직후 풍경은 지구밖 어느 행성 회색빛 지표면과 같았다. 더 이상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진공 상태에 놓인 듯했다.




세인트 헬렌스 험목 트레일을 거닐며 마주친 새생명들


험목 트레일(Hummocks Trail)의 숲 속 오솔길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45년 전 화산재로 뒤덮여 생명의 숨소리가 꺼져가던 곳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모습이다. 진공 상태가 얼마나 지났을까. 80년대에는 흙속에서 살아남은 씨앗과 뿌리에서 새싹이 돋았고 굴 속에 숨어있던 작은 동물, 곤충들이 다시 번식하기 시작하였다. 90년대는 나무류가 자라나고 곰과 사슴이 돌아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녹지가 확장되고 포유류, 조류, 곤충 할 것 없이 동물 다양성이 증가하였다. 폭발 전의 원시림으로 돌아가려면 앞으로 수백 년이 더 필요할 테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이만치 다시 자라줬다는 것이. 제로 투 원-


트레일에서 머지않은 곳에 존스턴 릿지 관측소(Johnston Ridge Observatory)가 있지만 지난해 발생한 산사태 때문에 관측소로 이어지는 유일한 도로가 끊겨버렸다. 1980년 5월 18일 아침, 화산 폭발 직전까지 그곳에 남아있던 30대 초반의 젊은 과학자 데이비드 존스턴은 다른 동료들이 대피하는 동안에도 관측소에 남기를 자처하였다. 화산이 어떻게 폭발하는지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록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에 가볼 수 없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발신했던 무전기 속 음성이 들리는 듯하였다. “밴쿠버! 밴쿠버! 바로 지금이야! (Vancouver! Vancouver! This is it!)”


콜드워터 릿지 비지터 센터에서 바라본 풍경



차를 돌려 올라간 곳은 콜드워터 릿지 비지터 센터(Coldwater Ridge Visitor Center). 세인트 헬렌스의 정상이 또다시 보여 마음이 먹먹해졌다. 뾰족했던 산정상은 사라지고 한쪽 경사면이 무참히도 흘러내렸다. 산의 높이는 화산 폭발 전 2,950미터에서 2,550미터로 400미터나 줄었다. 아래로 보이는 콜드워터 호수는 원래는 없었으나 당시 화산 폭발이 만들어 낸 슬프지만 아름다운 작품이다. 호수로 내려가 근처 야외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야무지게 먹고 돗자리를 펴고 누웠다. 호숫가에 널려있는 커다란 사목들은 그때 그 폭발을 겪었을까.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유독 해맑아 보였다.


콜드워터 호숫가 눈 녹은 물 그리고 사목들




1982년 미의회는 세인트 헬렌스를 국립 화산 기념지(National Volcanic Monument)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회복의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세인트 헬렌스산은 존스턴 릿지 관측소나 콜드워터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긴 용암 동굴인 에이프 케이브(Ape Cave), 근처에서 가장 큰 호수 스피릿 레이크(Spirit Lake), 용암이 만든 협곡 라바 캐년(Lava Canyon) 등 가볼 곳이 많고 하나 같이 이곳 자연만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10년 뒤 다시 와서 더 울창하게 자란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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