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원 국립공원 in the world
옐로우스톤은 세계 최초 국립공원이다. 19세기말 미국에서 산업화와 서부개척으로 자연훼손이 가속화되던 시기, 1872년 연방정부 주도로 세워졌다.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깨어있던 누군가는 전에는 없던 방식으로 자연을 보호하기로 하였다.
옐로우스톤은 약 220만 에이커(9천 제곱킬로미터) 땅을 차지하고 있는데 알래스카 제외한 미본토 안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이다. 서울 땅의 15배, 제주도의 1.5배 정도. 위치는 와이오밍, 몬태나, 아이다호 이렇게 무척이나 인적 드문 서부 내륙 3개 주에 걸쳐있는데 사실 와이오밍이 대부분(96%)이다.
옐로우스톤은 슈퍼화산이고 활화산이다. 슈퍼화산은 화산폭발지수 8 이상의(꽤 큰) 분출이 일어났던 산인데, 지구상에 20여 개 있고 옐로우스톤은 인도네시아 토바(Toba) 화산 다음으로 가장 큰 슈퍼화산이다. 옐로우스톤은 엄밀히 말하면 화산 그 자체라기보다, 화산 폭발 후 생겨난 커다란 분지를 뜻하는 칼데라(caldera)다.
지질학 용어가 나왔으니 말인데 몇 가지만 더 알아두는 것이 좋다. 관광지 이름이 다 이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먼저 베이신(Basin, 분지)은 지각 활동 등으로 주변보다 낮아진 지역을 뜻한다. 대구광역시도 베이신이다. 그리고 핫스프링(Hot spring, 온천)은 마그마 지열에 달궈진 지하수이고, 가이저(Geyser, 간헐천)는 땅 속 증기 압력 때문에 한 번씩 솟구치는 핫스프링이다. 칼데라, 베이신, 핫스프링, 가이저... 여기까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제는 사전 여행지 공부 스트레스는 훌훌 떨치고 여행을 떠나보자. 옐로우스톤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루 만에 재빨리 지나쳤다는 사람도 있고, 한 달여 캠핑을 했다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통 집에서 차로 10시간여 로드트립을 하고 일주일 정도 머물다 온다. 필자는 휴가를 금보다 귀하게 여기는 한국인 40대 직장인이다. 총 일정 3박으로 끊어보자.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공항은 공원 서쪽에 위치한 West Yellowstone Airport(WYS)다. 차로 단 7분이면 공원 서문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매우 작은 공항이라 비행 편이 거의 없다는 게 단점. 나의 행선지는 공원 북문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Bozeman Yellowstone Internationl Airport(BZN)다.
시애틀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보즈만 공항은 놀랍게도 아늑하고 아름답다. 기대가 없어서 더 그렇게 느꼈을 터. 작지만 깨끗하고 내부는 원목 구조에 커다란 통유리창이 있어 이미 어느 한적한 휴양지 리조트에 당도한 기분이 든다. 사실 한국에서 옐로우스톤 가기란 쉽지 않다. 미서부 대도시에서 최소 10시간 넘게 운전해서 가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공항을 경험하고 느낀 점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을 경유하여 보즈만 공항으로 오는 여정도 참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시애틀-보즈만 노선은 알래스카와 델타에서 하루에 각 두어 편씩, 하루 총 다섯 편 정도가 운항하고 있다. 행여나 시애틀 도착하여 당일 환승이 어렵다면, 시애틀에서 낭만의 하룻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도 멋진 선택이 될 것 같다.
렌터카 금방 빌려서 공항 근처 마트에 들러 3박 4일 먹을거리들을 산다. 일단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괜찮은 식당도 마트도 찾기 어렵다. 대자연으로 들어갈 채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은 무지 넓지만 주요 관광지들이 숫자 8 모양의 도로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생각보다 둘러보기 쉽다. 3박을 계획하고 왔기 때문에 이 8자 도로를 중심으로 3개의 숙소를 미리 예약했다. 일자별 동선을 고려하여 첫째 날 매머드 핫스프링, 둘째 날 캐년 빌리지, 셋째 날 올드 페이스풀 지역에서 묵기로 하였다. 국립공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해야 하고 저렴하지 않으니 최소 한두 달 전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고급 호텔이 아니라 대부분 랏지(lodge) 형태이다 보니 생각보다 덜 쾌적할 수도 있고 방의 종류에 따라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없기도 하다. 대자연으로 들어갈 채비를 단단히 하시라.
북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옐로우스톤 핫스프링이라는 이름의 작은 리조트가 있고 그 안에 작은 수영장 시설이 있다. 이곳을 들르는 이유는 유명하다는 이 지역 온천물에 인위적으로나마 몸을 담글 수 있기 때문이다. 진부하지만 뻔하지 않고 심심하지만 개성이 있는 곳이었다. 괜히 피부가 뽀송뽀송해지는 것 같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루스벨트 아치라고 불리는 꽤 큰 조형물을 지나치게 된다.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제 기공식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조형물 상단에 "For the benefit and enjoyment of the people"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 국립공원이 일부 계층이 아닌 모든 국민을 위한 자산이고 그래서 모두가 보호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뻥 뚫린 하늘에, 시원한 산세에 슬슬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 시작한다.
드디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으로 들어왔다. 처음으로 마주한 곳은 매머드 핫스프링. 온천수가 만든 석회암 계단 지형인데 테라스(Terrace)라고 부른다. 처음 이곳 테라스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 규모가 거대해서 매머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흰색 주황색 물든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움직이듯 흘러내리듯 자리 잡은 풍경이 사뭇 지구밖 어딘가로 온 듯하다. 지질학자가 아니어도 바라보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무 데크를 따라 한 두 시간 걷는 것만으로도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로비 앞 잔디밭에서 자주 보인다는 (사슴 비슷한) 엘크와 마주쳤다. 네놈이 그놈이구나.
첫째 날 밤은 매머드 핫스프링 근처 화장실 없는 랏지에서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동쪽으로 길을 나섰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한 번씩 차가 막히곤 하는데 여지없이 야생동물 때문이다. 곰, 사슴, 들소 등등. 동물이 길을 가로막고 있으면 차가 기다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길가 동물을 보려고 길옆에 차를 무작정 세워놓기도 하여 때아닌 교통체증이 생긴다. 아무리 애써도 나는 갖기 어려운 사람들의 여유가 부럽다. 시간이 그리 촉박한 것도 아닌데 잠시도 멈춰 있지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때쯤 어느새 다다른 곳은 라마벨리(Larmar Valley)라고 하는 초원 지대.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메리카 들소, 바이슨(Bison). 몸무게 최대 9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북미 최대 육상 동물이다. 사람들은 버펄로(Buffalo)와 혼동하곤 하는데, 바이슨은 북미에서 버펄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서식하고 생김새도 다른 엄연히 다른 종이다. 바이슨은 북미에서도 멸종위기종이며 가까스로 옐로우스톤에 5천여 마리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라마벨리에서 이들 개체군의 대부분을 목격할 수 있다. 드넓은 초원에 보이는 수많은 검은 점들은 마치 인간이 잠시 방목한 가축들인 것 마냥 한가로이 무리를 지어있다. 기괴해 보이지만 한없이 온순한 이 천연덕스러운 생명체가 눈앞에서 햇볕을 쫴며 풀을 뜯고 있다. 아프리카 어디 유명 초원을 가본 적은 없는데 만일에 가본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애리조나의 그랜드캐년 국립공원과는 전혀 무관하게 옐로우스톤에도 그랜드캐년이 있다. 강 근처의 바위가 노랗다고 하여 강 이름이 되어버린 옐로우스톤강. 이 강의 이름은 곧 국립공원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이 강을 따라 장엄한 협곡과 폭포가 있다. 협곡 벽면은 철분이 산화되어 노랑, 주황, 분홍 빛을 띤다. 전망대 이름도 Artist point. 수채화 그림들이 파노라마처럼 드넓게 펼쳐진다. 길을 나서 헤이든벨리(Hayden Valley)까지 내려가면 머드 볼케이노(Mud Volcano)를 볼 수 있다. 진흙이 지열 때문에 팔팔 끓고 있는데 유황 성분이 많아 계란 냄새가 난다. 머드 스팟 중 가장 유명하다는 드래건 마우스(Dragon mouth)에서는 유황가스 증기가 계속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오고 있어 진짜 용의 입을 연상케 한다. 둘째 날은 캐년 빌리지 지역의 랏지에서 묵었다. 오늘은 방에 샤워실이 있으니 몸도 마음도 녹아내렸다.
셋째 날 아침은 캐년 빌리지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 시설을 이용하였다. 비교적 깔끔하고 음식 종류도 다양해서 오랜만에 든든히 배를 채웠다. 물론 햇반, 라면은 필수로 곁들인다. 내려가는 길에는 넓디넓은 옐로우스톤 호수가 보인다. 쾌적한 호수뷰 드라이브 끝에는 West Thumb 가이저가 있다. 이름들이 슬슬 헷갈리기 시작할 무렵 다시금 가이저가 무엇인지 되짚어본다. 지열 지대는 지하의 열이 지표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지대를 말한다. 대표적인 지열 지대 현상으로 핫스프링(온천)은 뜨거운 지하수가 지표로 올라오는 것, 가이저(간헐천)는 핫스프링의 일종이며 가끔씩 뜨거운 물과 증기를 분출하는 것이다. 호수를 바라보고 평화롭게 자리 잡은 가이저들은 붉으락 푸르락 황홀한 빛을 발산하지만, 한 때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했던 이곳의 무참히도 뜨거웠던 과거를 상상케 한다.
셋째 날 저녁은 이곳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Old faithful Geyser) 지역에서 묵는다. 올드 페이스풀은 이름만큼이나 오랜 기간 사람들의 신뢰를 지켜 온 곳이다. 무엇에 대한 신뢰일까. 가이저는 땅구멍에서 50미터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내곤 하는데, 1870년대 발견 후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주기적으로 (약 100분에 한 번씩) ‘우리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물을 뿜어주었다. 이 지역 세 개 숙소 로비 그리고 바로 옆 visit center에서는 매번 이 분출시간을 써붙여 놓고 있으므로 그 시간에 맞춰 가이저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는 고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기둥 마냥 쉼 없이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곳 옐로우스톤의 상징이다. 아울러 세 개의 숙소 중 가장 오래된 올드 페이스풀 인(Inn)은 겉모습부터 범상치가 않은데 무려 120년이나 된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호텔 중 하나라고 한다. 가이저든 호텔이든 오랜 기간 세월과 싸워오기보다는 시간과 함께 성숙해져서 점점 그에 걸맞은 품위와 위용을 자랑하는 듯 보인다. 앞서 루스벨트 아치에 쓰인 말처럼 이 모든 게 모두를 위한 자산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힘을 모아 잘 지켜낸 결과일 것이다.
올드 페이스풀을 시작으로 이제는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면 유명한 수많은 가이저와 핫스프링, 특히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Grand Prismatic Spring)과 노리스 가이저 베이신(Norris Geyser Basin) 등 그야말로 옐로우스톤의 핫스팟들을 둘러볼 수 있다. 그랜드 프리스매틱 스프링은 지름 100미터가 넘는 미국에서 가장 큰 온천인데 위에서 바라보면 파랑, 주황, 초록 빛깔이 화려하여 이곳의 명물이 되었다. 이보다 북쪽에 위치한 노리스 가이저 베이신은 옐로우스톤에서 가장 뜨겁고 불안정한 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이까지 물을 뿜는다는 스팀보트 가이저(Steamboat Geyser) 등 옐로우스톤 칼데라의 거칠고 역동적인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만일 오늘날 옐로우스톤에서 64만 년 전 어느 날처럼 초대형 화산 폭발이 일어나 온 세상에 겨울이 찾아온다면 그 폭발의 중심은 노리스 가이저 베이신이지 않을까.
옐로우스톤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관광지라는 것을 실감한다. 좋은 여행지는 단순히 크고 멋진 곳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곳이라 생각하는데 옐로우스톤만큼 묵직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곳이 또 있기는 할까.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리스트에 남들 모두가 좋다 하는 곳보다 나만 아는 멋진 곳들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 제아무리 간절하여도 이곳만큼은 양보를 해야 할 것 같다. 노란 바위…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