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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항공사가 불친절한 이유

이방인 회사원 입장에서 바라본 지극히 주관적 견해

by 아일랜드림


주위에서 미국 항공사 서비스가 별로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여기저기서 겪은 본인의 생생한 경험담들 (기내에서 물을 가져다 달랬더니 3열 앞에서 물병을 던졌다는 이야기 등), 그리고 뉴스에서 보도되는 심각한 차별적 조치들을 접해 들을 때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정말 이래도 되나 싶다. 다만 우리가 그냥 그렇게 알고 있듯 단순히 인종이나 성차별 등을 이유로 치부해 버리고 넘어갈 문제인가. 문제 해결적 관점에서 나름 그들을 좀 더 이해해 보기로 하였다.




미국은 비행기 항공 산업이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곳이다. 따라서 항공사의 대고객 서비스 매뉴얼 역시 미국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서비스 매뉴얼이라는 것이 우리가 기업의 서비스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듯 고객을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고, 더 친절하게 모실 수 있을 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 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안전에 위해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발전되지 않았을까 한다. 서비스 품질의 방점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미국 항공사의 서비스가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오게 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 나라의 사회가 우리보다 더욱 ‘험상궂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총기, 마약을 이토록 자유로이 허용하는 국가는 흔치 않다. 매일 같이 발생하는 폭행, 살인, 강력 범죄 뉴스에 교민들은 너나없이 당황한다. 역사적으로 이곳 땅에 다양한 민족, 국가, 종교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들며 생존과 확장을 위한 다툼이 벌어졌다. 여러 식민지 사회들을 연방이라는 느슨한 틀에 묶어 놓기로 하였고, 사회적 질서를 지키는 주체는 불확실하였다. 결국 이러한 질서 불안정이 공권력 강화와 규정 준수라는 ‘미덕’을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게 한건 아닐까.


따라서 미국은 상대적으로 공권력을 실제 발휘해야 하는 일선 인력 즉, 에이전트의 권한이 강하다. 지역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은행을 가든, 운전면허증 발급 사무실을 가든 창구 너머 직원에게 잘 보여야 ‘화’를 면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해 보인다거나 규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 보이면 단칼에 불합격이다. 고객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간에 에이전트의 권한은 강하고 이에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우리는 상대적으로 딱딱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두 번째로 ‘원래부터’ 딱딱한 서비스 문화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느 나라든 시골을 가면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한편으로는 따뜻한 환대감이 상존하기 마련이고 필자가 느끼기에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도시끼리 비교하자면 미국의 불친절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미국 대도시에서 웃고 있는 스타벅스 직원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항, 대도시에 익숙한 거대 항공사 직원들이야 오죽할까.


서비스가 원래부터 ‘불친절한’ 이유에 대해선 여러 이유를 헤아려 볼 수 있겠으나 우리와 가장 큰 차이는 유독 ‘나’의 권리를 심히 존중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태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잘못을 했든지 간에 일단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예의라고 느껴지고 특히 고객을 대하는 기업의 직원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 직원 역시 인간으로서 손님과 동일한 ‘존엄성’을 지닌다. 고객에게 잘못을 따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들을 웃게 하는 건 고객의 팁이 20%를 넘어섰을 때뿐이다.


이 역시 과거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로서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각 유럽 이민자들은 저마다 구구절절한 이유로 이 땅을 찾았고, 살아남아야 했으며, 개척하기 위해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 신념이 됐든 돈이 됐든 저마다 다른 목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해관계가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서는 싸워 이기거나, 아니면 서로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1776년 독립선언문과 1791년 권리장전에는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맨 윗편에 적어놓았다. 내부의 적들은 매일 같이 싸우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긴 호흡으로 돌이켜보면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공존해 왔다. 지금도 이토록 여기저기서 다툼이 자유로운 건 그만큼 다들 ‘너’만큼이나 ‘나’의 권리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손님, 지금 나의 기분도 중요합니다’


셋째, 미국 항공사가 불친절한 이유 중 하나로 강력한 노조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항공사 노조에는 조종사 노조(ALPA), 객실승무원 노조(AFA), 정비사 노조(AMFA), 지상직 노조(TWU) 등이 있다. 이들 노조 대부분 미국의 항공사와 같이 상대적으로 역사가 길고 조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노조가 단순히 사측과 대립하는 역할만을 하기보다는 연방 정부 및 규제 기관과 협상력을 갖추고 실제 근로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 항공사 현장 일선 직원 입장에서 고객과의 마찰은 어찌 보면 응당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고 이 마찰의 과정에서 미국 항공사의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외롭지 않다.



지난 ‘21년 7월 미국 프론티어항공의 한 탑승객이 승무원 3명을 성추행하고 폭행한 적이 있다. 당시 승무원들은 승객들과 협력하여 해당 승객을 좌석에 테이프로 묶어 제압하였다. 그러나 항공사 측에서는 제압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승무원들을 조사하고 정직 처분하였다. 이에 미국 최대 승무원 노조인 AFA는 당사자 승무원들을 대신하여 항공사의 조치에 강력 반발하고 승무원 지지 및 복직을 요구하는 성명을 즉각 발표하였다. 이에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고 항공사는 입장을 수정하여 승무원들을 단순 유급 휴가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가 강력해서 반드시 바람직한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직원의 기본권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다 보니 항공사 측에 직원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전체적인 연공서열을 중시하게 하는 입김을 넣기도 한다. 실제 경력이 많은 승무원들은 근무 강도 대비 수당이 높은 장거리 국제선을 선호하고 실제 선택권이 부여가 된다고 한다. 그 결과 장거리 국제선일수록 기내 서비스가 좋지 않다는 자조 섞인 농담들이 들린다.




지난 ‘21년 설문조사에서 미국 항공사 승무원의 85%가 기내난동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앞서 지목한 미국 항공사가 불친절한 이유 세 가지(질서 불안정, 소중한 나, 내 뒤에 노조)에서도 밝혔듯 어찌 보면 미국 항공사 직원들은 우리의 고객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빡센 손님들을 상대하기 위해 빡센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다수 우리처럼 ‘빡세지 않은’ 고객에게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공항은 이 세상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가장 금기시하는 곳이다. 승객이 카운터에서 휠체어를 신청하면 (그 승객이 거침없이 걸어 다닐 수 있을지라도) 항공사에서는 감히 묻지도 못하고 최대한 서비스에 응해야 한다. 미국은 이에 대한 고객의 악용 가능성 보다 혹시라도 차별로 고통 받을 장애인 고객의 손을 잡아주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항공사가 한걸음 더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다른 서비스 현장에서 좀 더 케어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 지를. 그것이 안전이나 효율성과 비교적 무관할지라도.


결국 돈이다. 고객들의 ‘좋지 않은 기분’을 돈으로 환산해야 한다. 서비스가 경직화되고 ‘선의의 피해자’가 누적될수록 여론은 조용히 악화될 것이고 임계점에 다다르면 영업적 리스크는 급증할 것이다. 주위에 항공사로부터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난 후 내 평생 다시는 해당 항공사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든 항공 산업은 독과점이기 때문에 항공사는 다른 서비스 기업에 비해 고객 개개인의 변심에 둔감하고 대응에 취약하다. ‘결국엔 어쩔 수 없이 우리 비행기 또 타겠지’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억울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든 회사든 ‘선의의 피해자’로부터 발생되는 손실을 정량화해서 회사의 금전적 손실을 가늠해 볼 수만 있다면 미국 항공사의 서비스도 보다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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