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그리고 곱슬머리가 된 나의 삶
암투병 후유증 1.
매일매일 눈에 보이지도 않게, 내가 실감하지도 못하게 우리 몸에서 자라는 게 있다면 그건 머리카락일 것이다. 전혀 못 느끼고 살고 있는데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어느새 확(?) 자라난 것을 인지하는.
하지만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마치 우리의 인생을 꼭 닮아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항암치료로 모두 빠져버린 머리카락은 항암치료로 받게 된 고통만큼이나 나에게 큰 고통이 되었다.
일자로 뻗은 생머리로 머리숱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늘 찰랑거리는 짧은 단발은 내 평생의 헤어스타일이 되어 마치 나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 있었는데 그게 사라지니 마치 나 자신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어색한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도 써보고 비니부터 각종 모자를 써보기도 했던 지난 1년이었다.
항암이 끝나고 새싹이 자라듯이 머리카락이 다시 삐죽하고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는 엄청난 감동이 밀려왔다.
다시는 머리카락이 자랄 것 같지 않은 휑한 대머리의 나 자신에게 불쌍한 맘이 들 때였으니 머리카락이 올라오는 모습은 마치 희망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몇 개월간 정말 정말 더디게 올라오던 머리카락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알 수 없는 낯섦 때문이었다. 머리숱이 적었던 나에게 새로운 머리카락은 짙어지고 굵어진 것 같았다. 덕분에 더 풍성한 헤어를 갖게 되었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새로운 머리카락에 감히 컴플레인한다는 건 정말 배부른 소리지만 내 머리카락이 내 머리카락이 아닌 걸 어쩌랴.
나의 이미지를 완전히 상실한 낯섦.
내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얼굴.
항암과 수술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 남아있는 육체는 둘째치고 나 자신조차도 낯선 내 모습을 어쩌란 말인가?
54년을 가지고 살았던 찰랑거리던 생머리의 단발은 더 이상 나에게 없다. 그 대신 곱슬거리고 굵어진 거기다 푸석한 머리카락이 나를 채웠다. 어찌 손질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아 미용실을 찾아갔다.
아침마다 머리에 새집이 하나씩 지어지는 느낌이었으니 전문가의 손길은 뭔가를 창조해 낼 수도 있으리라 기대하며. 하지만 미용실에서는 현재는 너무 짧아서 머리카락을 자를 수가 없단다. 더 길면 그때 방법을 찾자고 한다.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을 만큼 자라려면 나는 최소한 1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거울 속엔 예전에 알던 내가 아닌 낯선 나 자신이 있다.
혹시 암은 나를 육체적 정신적 모든 면에서 바꿔 버린 걸까? 그저 내 몸 안에서 커져버린 악성이라 불리는 혹 하나를 제거했는데 그 암이라는 녀석은 내 54년을 동거동락했던 나 자신의 일부분도 같이 가져가 버린 걸까?
도대체 이건 누구에게 따져야 하고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암을 극복한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그 사슬이 끊긴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할 상황에 내가 전혀 상황 판단을 못하는 걸까?
나는 항상 현실과 잘 타협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살아있음에 기뻐하고 새로 변화된 것들도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낯선 거울 속의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