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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새롭게 Feb 19. 2023

이민자의 투병생활

호주에서 암환자로 살아남기

요즘은 인터넷과 각종 SNS로 세상의 거리가 정말 좁아졌다.

때로는 내가 사는 곳이 호주인데도 이곳이 호주라는 걸 실감을 하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거리가 현실에서는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 호주 활을 시작하고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겠노라 미친 듯이 영어공부에 빠져본 적도 있었고 그러다 사람이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있구나 하면서 슬며시 포기라는 단어를 내밀어 보기도 했었다.

40이 넘을 때까지  한국에서만 살다가 처음 경험하는 이민생활은 결코 쉽지 않고 그 문화의 다름과 언어의 다름을 극복해내는 건 나에게는 인생을 다시 배우는 듯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시간은 참 신기하게 사람을 그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게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장벽들로 높게만 느껴지던 호주라는 낯선 나라가 나에게 친숙해지고 일상이 되어가게 되었을 때 나는 3센티의 암이 내 몸에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가슴에 암이 있다는 말을 의사에게 전해 들었지만 그 작은 3센티짜리가 금세 나의 척추에까지 새끼를 치듯이 옮아갔고 나는 순식간에 암 4기 진단을 연달아 받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젤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호주에서 출국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땐 전 세계가 다 문을 걸어 잠그던 시기이기도 했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가더라도 나는 의료보험이 없는 상태이니 한국행에 대한 생각은 바로 포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느린 호주 의료 시스템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는  호주는 의료비가 무료여서 참 좋지만 병원에 접수를 하고 나면 기다리는 시간만 몇 개월에서 몇 년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때론 환자가 죽은 후에서야 병원에서 연락이 온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난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일단 내 서류는 종합병원으로 접수가 들어갔지만 그런 풍문으로 인해 또한 암환자가 되었다는 현실로 해 나는 이런저런 생각이 참 많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호주의 의료시스템에도 나름 체계와 순서라는 게 있었다.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는 호주시스템이 아주 빨리 움직인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접수 후 10일 정도 지나자 바로 병원에서 전문의를 만나는 날짜가 잡혔고 나는 종합병원의 시스템에 등록이 되었다. 한번 시스템에 등록이 되면 모든 건 너무나 체계적이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 전문의를 만나면 상담부터 앞으로의 치료와 수술 등에 대한 전문의 의견을 듣고 또 환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작은 예를 들자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암의 종류와 앞으로 어떤 치료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이야기를 해주면서 환자의 동의를 구한다. 의학지식에 전무해도 아주 쉽게 설명을 해주고 더구나 통역사까지 함께 있으니 언어의 장벽은 거의 못 느낀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선 환자의 결정을 많이 존중해 준다. 그리고 상담 내내 환자의 심리상태, 경제상황까지 고려해서  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정신적 그리고 경제적인 서포트를 받을 수 있도록 산하기간에 연결까지 해준다.

상담은 거의 1시간 정도 걸렸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대로 모든 것은 연동되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항암치료부서, 초음파나 각종 CT촬영부서, 방사선부서 그리고 수술부서까지 한꺼번에 연동이 되어서 내가 받아야 할 치료에 따라 순차적으로 알아서 연락이 오고 예약이 잡히고 수술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특히 항암치료기간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이다. 그걸 병원에서 너무나 잘 알기에 특히 아주 세밀하게 신경을 써준다. 예를 들면 담당 간호사분께서 정기적으로 환자에게 상태확인을 위해 전화를 주시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역할을 하신다. 치료도중 몸에 열이 거나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응급실로 연결을 해주셔서 환자는 응급실로 바로 가면 된다. 나의 경우 항암치료 중에 열이 나고 몸이 좋지 않아서  입원을 몇 번 했었다. 입원수속부터 모든 것이 정말 잘 처리되었고 환자가 따로 액션을 취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몸에 면역력 저하로 입원을 해서인지 병실은 1인실로 배정되었고 하루에서 몇 번씩 간호사와 의사가 와서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이어 나갔다.

호주는 환자가 입원 시에 간병인이 필수가 아니다. 보호자도 밤에는 병실에 머물 수가 없다. 그러나 간호사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환자를 확인하기에 아무 문제 없이 입원과 퇴원을 몇 번 할 수 있었다.

수술과 방사선치료 또한 처음 잡은 스케줄대로 잘 진행이 되었고 수술 후 회복기를 거치면 물리치료사까지 연결되어서 수술부위와 몸상태에 따라 운동이나 스트레칭하는 법 등을 따로 교육받게 된다.

이모 든 것은 내가 지난 1년간 받은 케어이고 아직도 그 케어의 마지막에 놓여있다. 호주병원 시스템이 무섭게 다가왔던 첫 경험 때문인지 모르지만 너무나 태산 같았던 나의 병상일기는 무리 없이 그리고 모든 비용이 정부가 부담해서 환자에게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부담이 지워지지 않는 정말 복지천국임을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아직도 나는 치료가 완전히 끝난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빠졌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변화되어서 감당하기 힘들던 내 육체도 이젠 거의 정상에 가깝게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오늘 만약 누군가 호주의 이민 생활 중에 나처럼 암진단으로 앞이 캄캄한 상태라면 나는 토닥거리며 위로를 보내고 싶다.

"비록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도 걱정 마세요. 겁먹지도 마세요. 호주병원은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마지막까지 그 친절을 잃지 않고 당신에게 맞춰 줄 겁니다. 그저 당신은  비록 어려운 시간이고 생각이 많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본인 건강만 생각하고 지금 이 시간은 자신에게 온전히 초점을 맞추는 그저 인생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하시고 힘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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