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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Sep 16. 2022

280만원짜리 97% 확률 게임

스마일라식 수술 후기

그냥 라식이나 라섹 수술하세요


뭐야, 남의 인생이라고 저렇게 쉽게 말하는 건가?

만약에 수술하다가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안구건조증 생기고, 빛번짐 심하고, 수술 부작용 생기면? 그럼 어떡해요!


의사 선생님의 수술하라는 말에 반감이 생길 때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남의 인생이든 내 인생이든, 같은 인생이네...?




다이빙에 관심이 생긴 후로, 시력교정용 렌즈 사용량이 확 늘었다. 다이빙 마스크를 착용하면, 안경을 벗어야 하기 때문이다요새는 주말마다 플로빙(플로카업 + 다이빙. 바닷속에 들어가서 쓰레기 줍기)을 다녀서, 남은 일회용 렌즈는 고작 열흘 치 정도다.

'다시 렌즈 사러 가기 귀찮은데'

렌즈를 구입하려면 시내 안경원으로 나가야 한다. 시내로 나가야 하는 것도 시골에 사는 내게 귀찮은 일이지만,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꽤 큰 돈이 빠져나갈 일을 상상하니 미루고 싶었다. 미뤄도 피할 순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돈 쓰기 싫어


안경 낀 사람이라면 아주 좋아서 까무러칠 사진


그러던 즈음, 오랫동안 드림렌즈를 사용 중인 사촌 동생한테 드림렌즈 만족도를 물을 기회가 있었다.

드림렌즈는 시력 교정 수술과 달리, 각막을 눌러 일시적으로 효과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 한창 스포츠를 즐기던 20대 초반, 수술은 무서우니 드림렌즈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당시 100만 원이라는 금액이 부담스러웠을 뿐.

직장생활로 월급이 쌓였으니 백만 원 정도야, 아주 못 넘볼 금액은 아니다. 통장에 두둑이 챙기고 '나 돈 있어!' 의기양양해져서 드림렌즈 어땠냐고 물어봤다. 사촌 동생은 뭐가 그리 의미심장하게 물어보는지 모를 것이다.


"드림렌즈 별로 불편하고, 나는 굉장히 만족해." 사촌 동생의 뒷광고 없는 후기를 듣고, 깊이 감명받아 안과로 달려갔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드림렌즈 후기가 좋은 안과를 찾았다.

나도 안경을 벗는 꿈(드림)과 같은 삶을 살아볼래!


시력교정수술을 권유받은 건 바로 그 드림렌즈 후기 좋은 안과였다. 시력교정수술도 하지 않는 작은 안과에서 무덤덤하게 조언해주시니 수술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냥 무서웠던 수술에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다.


아니 그나저나, 이 안과는 손님을 다른 병원으로 보내네? 돈을 빌고 싶지 않으신가? 그럼 여긴 찐이다. 다음에 눈 아프면 여기 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차만 안 가져왔다면 당일수술을 했을 정도로 순식간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일회용 렌즈 살 땐 아꼈던 돈을, 시력교정술엔 아끼지 않았다. 시력교정술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이다. 가장 부작용이 적다고 알려진 스마일라식을 일시불로 긁어버렸다. 덜덜, 몇백만 원짜리 내적 손 떨림을 꾹 삼키며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옷을 갈아입고 수술실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진지하게 수술을 고민했을 때였다.

'이거 해도 괜찮을까?'

되돌릴 용기는 없었기에, 그저 의사 선생님 컨디션만 좋으시길 바랐다.


어제야 비로소 라식수술에 대해 검색해봤을 때, 수술의 실패 확률은 3% 정도 됐다. 그렇다면 성공확률은 97%. 난 97%에 속할 수 있을까? 종교는 없지만, 신실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빨간 점을 바라봤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수고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수술을 마치는 인사말을 따라 외쳤다. 내겐 감사이자 안도의 인사였으리라.


"안약은 이거, 이거, 이거 순서로 하루 3번 넣으시고요, 이건 눈이 건조하면 수시로 넣어주세요."

선명하지 않은 시야 사이로 약사 선생님의 말씀을 되뇌며 외웠다.

수술이 끝나니 시야가 뿌옇다. 마치 안경이 부서져서, 번지는 빛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상황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카카오톡 글씨 크기를 최대로 설정한다.


수술 후 일주일 동안은 글씨를 읽기 힘들었다. 눈에 힘을 주기도 해보고, 여러 번 깜박이고, 안약도 넣어봐도 글씨는 흐려 보였다. 다시 안경을 쓰고 싶은 정도였다. 세상에서 제일 수전증이 심한 사람이 쓴 손글씨처럼, 모든 글씨가 읽기 힘들었다.

모아뒀던 연차를 모두 사용했다. 코딩해야 하는데 문자를 못 알아보니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연차를 열심히 모아온 과거의 나, 칭찬해!


수술 전(왼쪽)과 후(오른쪽). 수술하고 나서 멀리 있는 글씨가 또렷해졌지만 빛 번짐 때문에 눈이 부시다.

수술 후 4달이 지났다.

이제는 옷을 벗을 때 안경을 빼지 않아도 된다. 다이빙할 때 렌즈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뜨거운 걸 먹을 때 시야를 잃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전동킥보드를 탈 때 눈으로 달려드는 날벌레가 무서워 실눈캐가 되고, 손이 민망할 때 들어 올릴 안경이 없어서 어색하며, 예비군 훈련에서 사격을 못해도 핑계 댈 수 있는 안경의 존재가 없어서 아쉽다.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하면, 눈이 건조해질 때 상이 또렷하지 않은 것과 야간 운전이 조금 더 무서워진 것을 빼면 다 좋다.


나는, 다행히, 97% 게임에서 이긴 것 같다.



덧붙임)

아직 나는 습관처럼 가방에 안경닦이를 가지고 다니며, 과거의 내 사진과 추억엔 안경이 함께한다. 나와 15년은 함께 해온 안경의 존재가 한순간에 사라진 게 놀랍다. 그리고 한 달 만에 15년의 생활이 무색하게 습관이 바뀐 것도 놀랍다. 반년 전엔 상상도 못 한 삶을 사는 것도.

역시 인생은 변하는 맛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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