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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리 Aug 02. 2023

나의 취미는 쓰레기 줍기

환상적인 제주도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

제주도는 환상적인 곳이다. 오죽하면 인스타그램에서 제주도를 장소로 설정하면 '환상의 섬 Jeju Island'가 가장 먼저 추천되겠는가. 이 사진들만 봐도 그렇다. 탁 트인 시야의 끝엔 직선인 듯 직선이 아닌 파란 수평선, 제주 특유의 구멍 송송 현무암, 도시가 아님을 알려주는 푸르른 풀과 나무. 제주의 자연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차분한 편안함과 북받쳐 오르는 감동의 모순적인 하모니가 느껴진다. 제주에 3년째 살고 있는 지금도, 제주의 멋진 풍경을 볼 때마다 여전하다.


하지만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 제주에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실인데, 참 야속하다. 그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한숨을 짓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제주 바다는 사실 더럽다. 자세히 보면 보인다. 해변이 현무암으로 까무잡잡하면 더욱 잘 보인다. 자연의 색이 아닌 형형색색의 부자연스러운 옥에 티가 섞인 해변. 신경 써서 위에 사진을 다시 보면 눈치를 챌 수 있는가? 바로 쓰레기다.


나는 제주에 살면서 쓰레기를 보는 눈이 생겼다. 만약 내 눈이 애플리케이션이었다면, 개발자가 업그레이드를 잘못했다. 이건 버그다, 분명 사용자들이 앱 리뷰에 한 개짜리 별점을 던지며 함께 당장 되돌려 놓으라고 아우성 것이다.




아~ 제주도 사신다고요? 혼저옵서예 정말 써요?
제주 토박이는 아니시라고요 ㅋㅋ, 그럼 제주에 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2년이면 많이 지나셨네요. 부럽다, 주말마다 놀러 다니세요? 주말에 주로 뭐 하세요?
네? 쓰레기요?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쓰레기 줍기라고 한다. 요새는 플로깅(plocka upp + jogging)이란 말로 많이 알려져서, 상대방의 갸우뚱을 해소하는 추가 설명이 많이 줄었다. ESG와 기후위기 덕분에, 아니 때문에 제주에서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플로깅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나는 플로깅 중에서도 해양정화, 즉 바다쓰레기를 주로 수거한다.

플로깅이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기에, 나를 모르는 사람은 신기한 관심을 보인다. (그 눈빛이 마냥 싫지는 않은 관종, 주목을 즐기는 나는 아이스 브레이킹 요소로 많이 활용한다.) 이어 FAQ로 많이 나오는 얘기, "어쩌다 플로깅을 하게 됐나요?"


나는 어쩌다 쓰레기를 줍게 됐을까?

제주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플로깅은 전혀 몰랐던 나다. 환경단체와 연결고리는 하나도 없었고, 봉사활동도 관심 없던 건 마찬가지였다.

2년 전, 제주에 지인 하나 없이 이주 온 나는 아주 심심했다. 외향적인 성격인데 주 7일을 홀로 보내야 하니, 마음속 해소되지 않은 '사회적 욕구'가 답답해서 속이 뒤집어지기 직전이었다. 혼자 두 달 반 동안 해외여행을 간 적도 있었지만, 그땐 여행친구를 만들기라도 했지 지금은... 게다가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니 어떤 때는 홀로 방에 갇혀 7일 동안 '실제' 사람과 '현실'에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제주의 자연환경이 좋았지만, 사회적 환경도 간절했다.

그러다 성산 광치기해변에 갔을 때, 웅장한 성산일출봉을 뒤로 두고 모래사장을 걷는 아이들이 있었다. 한 손에는 집게를, 다른 손에는 마대를 들고 말이다. 아직도 풍경 잊히지 않는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는데, 나는 육지에서 놀러 온 친구들과 어느 카페 선베드에 누워 제주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주섬주섬 마대를 모아서 성인 인솔자와 함께 카페 앞을 지나갔다. 나는 말했다. "아, 저거다."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의외로 해양쓰레기 수거 단체가 많았다. 그중 하나를 골라 시작한 플로깅이 지금까지 이르렀다. 햇수로는 2년, 발을 담갔던 단체는 10여 군데, 하루에 많게는 3탕까지 뛰어봤다. 제주의 동서남북 가리지 않았고, 쓰레기를 주우려 바닷속까지 잠수했으며, 쓰레기 줍기 대회까지 나갔다. 뭐든 하다 보면 얻는 게 있는 법, 근력이 늘었고(은근히 운동된다), 아무나 못 가는 숨겨진 명소를 가봤고, 좋은 일 한다는 이미지도 얻었고(관심을 좋아하는 내겐 중요하다), 각종 친환경 제품을 후원받았으며, 친구도 생겼다(심지어 여자친구도!).

그리고 아름다운 제주 바다에서 쓰레기를 가장 먼저 찾는 눈마저도... (좋은 걸까?)




이제부터 내 취미를 본격적으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인생에 불쑥 찾아온 소중한 제주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쓰레기 줍기다. 어쩌면 이 활동을 통해 제주를 비로소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환상의 섬 제주에서 환장하는 환경 이야기, 기대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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