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마비 일지 (한 달간의 기록)

by 바카리

안면마비에 걸리고, 자세한 경험담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짧은 기록을 모아 글로 엮어봤다.




-3일차

감기가 나은 지 2주가 지났지만, 가래나 목이 붓는 증상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가정의학과 방문.

"잠 제대로 못 자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봄.

혈액검사를 권유 받아 시행.

혈압이 약간 높았고, 살 좀 빼는 게 내 체형이 맞다고 함.


-2일차

혀의 오른쪽 뒤쪽 부근이 마치 사랑니 뽑을 때 마취한 것처럼 얼얼함을 느낌.

맛이 이상함. 못 느끼는 것은 아닌데 뭔가 다른 맛이 나는 것 같음.

그냥 피곤해서 입 안이 허는 것 같은 증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함.


-1일차

말을 많이 했던 날이지만, 혀가 얼얼한 것 빼고는 불편한 것이 없었음.

양치질을 했는데 우글우글할 때 입술 사이로 물이 뾱 튀어나옴. 그냥 입술에 힘이 빠진 줄.


1일차

아침에 면도를 하는데 입모양이 제대로 안됨. 여기서 심각함을 처음 느낌.

입 근육을 여기저기 써보면서 어디가 문제인지 확인하기 시작함. 이를 가리면서 '오'하며 입을 벌리는 게 매우 어색하게 안되는 것 확인. 그러다 윙크가 한쪽만 되는 것을 확인. 아, 한쪽 근육이 맛이 갔구나.

챗지피티로 진료 시작. 안면마비 증상. 당장 병원 가길 권유. 신경과는 없어서 이비인후과 중 신경과를 할 것 같은 곳으로 달려감.

혹시 몰라서 3일 전 혈액검사 결과를 비대면으로 문의. 염증 수치는 따로 이상 없음을 확인. 중성지방 높아서 살 빼라고 함.

월요일 아침이라 사람이 바글바글. 대기시간 최소 3시간. 인근 평점 최하 이비인후과로 이동. 바로 진료 가능. 스테로이드 처방. 하루 이틀 뒤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악화된다면 큰 병원 가보길 권유.

각종 안면마비 관련 컨텐츠 소비. 안면마비 전문가에 가까워짐. 말초성 안면마비라는 확신에 안도.

스테로이드 복용 후 증상이 약간 좋아지는 것 확인. 근육을 조금 더 움직일 수 있었음.


2일차

아침에 일어나니 상태 악화. 아침 먹고 약 먹으니 1~2시간 뒤 증상 호전. 하지만 4시간이 지나니 말짱 도루묵. 상태 더욱 악화.

저녁이 되니 볼에 거의 힘이 안 들어감. 상급병원 갈 것을 결심.

저녁 먹고 약을 먹어도 볼에 힘이 잘 안 들어감.


3일차

오전에 상급병원(2차 병원) 신경과 방문. 벨 마비 확정.

집 인근 한의원에서 침 치료.


4일차

스테로이드를 먹으면 볼에 미약한 힘을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느낌. 하지만 약효 끝나면 움직이지 않음

한의원 침 치료. 침이 자극을 하도 가하다보니, 끝나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음. 착각인지 진짜인지는 모르겠음. 일단 뭐라도 해서 빨리 낫고 싶어서 하게 됨. 급여라서 만원도 안 함. 탐나는전 만세.

어젯밤에 반창고 눈에 붙이고 잤더니 눈 주변 피부가 시뻘개짐.


5일차

한의원 대신 재활의학과 방문하여 마사지와 전기자극 치료. 마사지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 들음. 유튜브도 잘 나와있다고 추천하심. 마사지 원리는 매우 간단한데, 웃으려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자연스럽게 웃음지을 수 있도록 마비된 볼을 끌어올려 도와주면 됨. 웃음이나 이마주름도 마찬가지

인공눈물이 없어서 재활의학과 선생님한테 부탁드렸더니, 처음 하신다고 당황. 방부제 있는 걸로(다회용) 주셨다가 나중에 일회용으로 바꿈.

볼 근육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움직일 수 있음.

밥을 천천히, 조금 먹어야 하니 식사가 자연스럽게 느려짐. 몸무게 일주일 만에 1kg 가까이 감소.

잘 때 눈에 반창고 대신 밴드를 붙이니 피부 자극 감소. 만족.


6일차

주말에 운영하는 한의원 방문해서 침 + 약침에 부항(습부항 + 건부항)도 함. 습부항은 사혈하는데, 으악. 어혈이 잔뜩 나왔다고, 목 뒤가 엄청 뭉쳐있었는데 시원할 것 같다고 함. 이거 시원한 거 맞나? 등에 페퍼로니 잔뜩 올라감.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해서 인공눈물 아주 많이 씀.

눈썹 위 이마, 입술 위 볼 부근에 간혹 떨림 현상 발생. ChatGPT가 근육 회복의 긍정적인 증상이라고 함.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눈이 부시니까 마비된 쪽 눈을 잘 못 감아서 힘듬. 썬글라스 필요할 듯.

스테로이드 감량 (일 메틸프레드니솔론 48mg -> 일 32mg)


7일차

광대나 볼에 약간의 근육을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으나, 하루에도 편차가 있음. 어떤 때는 더 못 움직이는 것 같고, 어떨 때는 가능한 것 같기도함. 증상이 전반적으로 아주아주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서, 사실상 안 좋은 상태가 악화보단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

세 번째 새로운 한의원 방문. 한의원마다 침과 부항을 다른 곳에 뜸. 의사 취향이 있어 보이는 게 재밌음. 새로운 곳 한 군데 더 갈 예정.

몸무게가 계속 줄어들고 있음.

짜파게티 먹었는데 내내 소화가 잘 안 되는 듯한 느낌. 밥이 제일 좋아보임.


8일차

주변에서 매일 괜찮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변화가 체감이 거의 안되니까 해줄 말이 없다. 이제 무안하니까 그만 물어보라고 하고 싶다. 몇 주 걸린다는데.

마비된 쪽 광대 부근 근육이 아주 조금 더 움직이는 것 같다. 볼 근육도 조금 더 움직이는 것 같긴 한데 밥 먹을 때 불편한 거나 눈이 감기지 않는 것은 여전하다.

마비된 쪽의 입 주변, 눈 주변 경련이 조금 더 늘었다.


9일차

의사선생님이 운동하지 말랬는데, 일주일 지났으니 가볍게 요가하러 갔다. 어려운 동작이나 힘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안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마비된 신경/혈관이 꿀렁이는 느낌? 피가 통하는 느낌? 그런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셀프로 전기치료 한달까. 하지만 혈류가 뚫리는 건지, 아니면 뒤지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경고인지 몰라서 그만 두었다. 요가 끝나고 광대 부분 근육이 더 많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난 거 아니죠?"라는 말을 들었다. (비대칭이 가장 없는 얼굴이 모든 힘을 뺀 무표정 얼굴인데, 인상이 좋지 않았나보다)


10일차

출장으로 육지 갔다. 공항 가기 전에 추천 받은 한의원에 갔는데 아파 죽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맞았던 침 중에 가장 아팠다. 관자놀이 쪽에 침을 맞았는데 치아가 얼얼했다. 침도 다른 한의원과 달리 손가락 2마디 짜리가 아니라 3마디 짜리 큰 침을 맞았다. 이걸 매일 해야 한다면 한의원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의원 치료가 끝나니 "좀 시원하시죠?"라고 내 의견을 물었으나, 나는 마치 처음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다는 표현을 들은 듯, "얼얼한데요?"하고 답했다.

육지에서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15일차

마비된 쪽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기 시작함.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입꼬리를 최대로 올렸을 때 앞니를 너머 송곳니가 살짝 보임.

가장 불편한 것은 여전히 면도와 양치질. 면도할 때는 한 손으로 마비된 쪽 볼을 열심히 끌어 올리거나 밀어 내리며 모양을 만들어야 함. 양치질에서 입을 헹굴 때, 엄지와 검지로 입술을 집게처럼 잡아야 함.

음식물이나 물을 마실 때 조심하지만, 잠시라도 긴장을 풀면 튀어나오거나 흘러나옴. 빨대는 사용하기 힘든데, 마비된 쪽 입 끝으로 빨면 조금 나음. 하지만 마비되지 않은 쪽 입 끝으로 빠는 게 가장 편함.

껌이나 젤리를 마비된 쪽 치아로 씹으면서 근육 운동 가능. 기존에는 아예 볼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서 음식물의 같은 부분만 씹었는데, 이제 조금씩 움직이며 씹는 게 가능. 하지만 아직도 한 쪽으로만 씹는 게 편함. 왜냐면 볼과 치아 사이에 끼면 난감해짐.

눈을 가볍게 감으면 여전히 눈이 떠져있는 상태. 하지만 아주 질끈 감는다고 생각하면 거의 다 감김. 덕분에 머리 감을 때 눈에 거품이 들어가지는 않음. 하지만 아직 세수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상태에서 해야 눈이 아파 눈물이 찔끔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음.

그동안 친구들을 만나보니, 이미 알던 친구들은 "(생각보다) 괜찮은데, 평소에 짓지 않은 표정이라서 웃기다"라고 함. 안면마비라고 말하니까 좀 어색해보인다고 함. 기존에 나를 모르던 사람은 이상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함.

무표정으로 해야 가장 균형이 잘 맞아보이기 때문에, 얼굴에 힘을 풀고 무표정으로 다니고, 감정표현을 얼굴에 하지 않으려고 힘을 좀 쓰게 됨. 근데 요새는 그러다 무표정이 습관이 될까봐, 입꼬리를 최대한 올리면서 살짝 웃는 것처럼 입꼬리 운동함.


20일차

드디어 윙크가 됨. 하지만 바로 하긴 힘들고, 한 단계씩 천천히 해야함. 마비되지 않은 쪽은 바로 되지만, 마비된 쪽을 감을 땐, 반대쪽이 살짝 감기게 됨. 어쨌든 몇 단계를 거쳐도 윙크가 되긴 함.

아직 'ㅇ'모양으로 입을 오무리면, 한 쪽이 완벽하게 되진 않음.

이제는 말할 때도 입이 많이 자연스러워 져서, 처음 본 사람들도 이상하다고 잘 느끼지 않음. 다만 아직 웃으면 내가 어색하다는 게 느껴짐. 그래서 되도록 얼굴에 표정이 과하지 않게 되도록 노력하게 됨.


30일차

이제는 아무도 내가 안면마비인 것을 모름. 다양한 표정을 짓다 보면 약간 내 스스로 알아챌 수 있지만, 이제는 거의 다 괜찮아진 것 같음.

양치질도 완벽하게 함. 다만 너무 강하게 하면 안면마비에 걸린 쪽에서 살짝 물이 흐름.

어느덧 내 근육이 돌아온 것처럼, 내가 안면마비에 걸렸다는 기억도 조금씩 잊히고 있음.



수고 많았다. 앞으로 다시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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