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진심이야?”
내 앞에 있는 것은 나의 연인.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곧 가족이 될 사람이었다.
“응, 나는 그래.”
내 대답을 끝으로 이어진 침묵은 10분. 나는 창밖만 바라보고 연인은 말없이 앞에 내려진 루이보스 티로 목을 축이기를 몇 번. 긴 침묵을 깬 건 연인 쪽이었다.
“생각해보고 연락할게.”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연인은 먼저 자리를 떴다. 나 같아도 그렇겠지. 약 2년 반 동안의 교제를 바탕으로 이제 함께할 미래를 그려간다고 생각했던 관계에서 브레이크를 건 것은 내 쪽이었다. 문제는 ‘2세’ 계획. 정말 진지하게 자녀를 낳을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할 미래를 확정짓기 전에 논의를 해 보려고 꺼냈던 말이 둘 사이의 침묵을 만들어냈다.
요즘 같은 경우 출산율이 0.8%이네, 대한민국 인구절벽이네 하는 말도 쉽게 들을 수 있고,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내 주위에서만 보이는 것이 3쌍 정도. 10쌍의 부부를 기준으로 삼는다 치면 게 중 1~2부부 정도는 자녀계획이 없다고 대답한다.
물론 기혼자들의 혼인 전 ‘비(非)출산’ 다짐의 경우, 어느 한 쪽이 상대의 막연한 변화를 기대로 시작해서 결국은 끝내 다른 한 쪽에게 본인의 입장을 관철(貫徹)시키고 마는 그런 경우도 왕왕 봐 왔긴 했지만, 적어도 내 미래에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앞의 연인의 생각은 어떤지 사전에 반드시 점검해야 할 요소였다.
막연히 이별 핑계로 흠을 잡듯 갑작스럽게 통보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수없이 해당 주제로 화두(話頭)가 향할 때면 2세 계획이 없음을 공언(公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점잖게 자세를 고쳐 앉아 진지하게 말하는 태도에는 내 연인도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동안의 내 말에는 그저 ‘저러다 변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앞으로 산더미 같은 빚이 있다거나, 우리 집안에 유전적 결함(缺陷)이 있다거나 해서 몇 대 째 이어온 자손의 번영을 내 대에서 끊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탄탄한(?) 직장도 가지고 있고, 나이를 먹어 가며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점차 갖추어 감에도 불구하고 내 후손에 대한 욕구는 진작 증발되어 내 안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태어나서 경험한 모든 일 중에 가슴을 벅차게 했던 행복감이라는 게 있었을까 싶어. 그저 피곤하기만 하고 스트레스만 받아온 삶인데, 나 이후에도 또 나와 같은 사람을 낳아서 사회의 구성품이자 기성품처럼 쓰이게 되는 그 사실이 나는 싫다.” 내 입장은 단호했다. 이는 내가 현재 사회에서 갖는 가치를 스스로 체감하는 수준이었고, 그래서 경멸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내 자신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레디메이드(ready-made)인생.’
내 삶은 이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궤도에 올라타 있다. 향후 벌어들일 기대소득은 정해져 있었고 점차 약해져가는 육체와 정신은 하루가 다르게 느껴지고 있다. 내 삶의 변곡점이 생길 가능성은 더군다나 희박하며, 과연 있었는지도 모를 행복이라는 것은 더 이상 증식을 멈추고 작아지기만 해 자꾸만 옛날에 가졌던 그것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내가 미래를 그릴 때면 이런 것들이 먼저 머릿속에 떠올라 매번 맥이 탁 풀리게 하는 것이었다. 노쇠(老衰)해가는 육신을 바라보며, 보다 어렸던 시절의 영광만 좇아 의미 없는 몸짓으로 허우적댈 뿐인 내가 나와 같은 누군가를 생산(生産)해 같은 길을 걷게 한다?
흔히 사회는 하나의 기계로 비유되고, 개개인은 기계를 이루는 부품 또는 톱니바퀴로 빗대어진다. 작은 톱니바퀴가 없다면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하지만, 톱니바퀴는 갈아 끼우면 그만이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라는 문장은 내 생각을 명쾌히 대변(代辯)한다. 톱니바퀴는 노력해봤자 그저 톱니바퀴일 뿐이다.
대학교 전공수업 시절, 철학에 조예가 깊던 한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자투리 시간을 내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종종 해 주셨다. 그 중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문구는 바로 ‘내던져진 삶.’ 누구 하나 선택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주제로 하여, 이후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교수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주셨다. 철학자 하이데거로부터 비롯된 단어를 통해 교수님은 가볍게나마 이제 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본인의 삶에 대한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셨다(물론 지식적인 측면에서 해당 개념을 더 깊게 설명하셨더라도 아마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 내 선택에 따라 결정될 수 있고, 어떤 미래든 내가 그리는 대로 그려나갈 수 있다는 의미가 새겨진 훈화 말씀(?)은, 이후 내가 사회에 진출해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며 단지 철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삶은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에서부터 영향을 받아 변화한다. 게다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인생의 기로는 급변할 수도 있다. 그런 요소들이 줄 수 있는 영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그릇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인지, 나의 경우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꿈을 가지고 싶다가도 자꾸만 현실에 안주해야 하는 목표로 수준을 떨어뜨리고, 원대한 포부를 품으면 오히려 누가 알고 비웃을까 불안해하며 내 마음 속 깊이 꿈을 감춰야만 했다.
결국 내 삶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계속해서 감축해나가기를 몇 번, 지금은 내 선택대로, 내 그릇에 맞게, 내 자의(自意)대로정말 평범하면서도 완벽히 사회라는 기계에 맞아떨어지는 ‘그저 그런’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 톱니가 되기로 결정한 것은 나였다. 그래서 더욱 더 밉고 원망스러운 내 자신이었고.
‘내던져진’ 나의 삶이야 결국 이렇게 되었더라도, 최소한 나에게는 ‘내던짐’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 생명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가장 밀접한 관계자로서의 결정권은 나와 나의 배우자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향후 사회의 기성품이 될 내 자녀가 살아가면서 느껴야 할 피로감에서부터 해방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그 결과가 바로 번식 포기를 통한 기회의 원천 봉쇄. 나는 나의 2세가 겪을 사회의 위험과 스트레스에서 그를 보호하기 위해 기회의 ‘소거’를 택했다. 내던져진 삶을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자 몸부림. 그렇게 나는 2세 계획을 내 삶에서 지웠다.
내 연인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다. 연락이 아직도 오지 않은 지가 벌써 나흘이 넘었다. 딴에는 생각이 많을 것이다. 이는 나에 대한 사랑일수도 있고 나와의 관계에 투자한 시간에 대한 고민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내 나이는 지금 그럴 나이 즈음이 되었다.
원초적인 인간의 욕구를 일방적으로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너무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나는 내 연인에게 ‘지금의 나’와 ‘미래의 자녀’ 사이에서 둘 중 하나만 고르라고, 둘 다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 거냐는 등의 유치하고 지나친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 긴 단절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결말은 보이는 것만 같아 나는 쓴 입맛만 다시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