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이기에 한 끼도 허비할 수 없었다. 미식(美食)의 대국에서 호텔 조식은 사치일 뿐, 오늘은 현지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중국인들은 아침식사 문화가 발달해 있어 다양한 아침식사를 먹는다고 하지만, 역시나 우리가 먹고싶었던 것은 그 중 대표격인 ‘요우티아오(油条)’와 ‘또우장(豆浆)’이었다. 튀긴 빵을 따뜻한 콩물에 담가 먹는다는 중국 현지의 아침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국 특성상 아침에 일찍 여는 곳 중에 영어소통이 될만한 곳이 없다고 판단, 결국 우리는 글로벌 체인에 의지하기로 했다. 바로 McDonalds.
□ 글로벌 체인의 로컬화! 또우장 맥모닝!
- 주문 난이도: 하(영어 지원 키오스크)
맥도날드가 중국 현지에서는 맥모닝 메뉴로 요우티아오와 또우장을 판매한단 이야기는 많이 들었기에, 이번 기회에 방문해보기로 결정, 9시쯤 숙소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를 찾았다. 다행히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기에 ‘영어’를 선택해 맥모닝 메뉴를 살펴보았다. 요우티아오와 또우장이 세트로 제공되는 메뉴가 있기에 하나 담았고, 그 밑에는 보니까 ‘피단’이 들어간 죽을 판매하고 있기에 덩달아 하나 담았다. 사실 나는 피단이라고 불리는 송화단을 집에 몇 개씩 두고 먹을 정도로 좋아했기에, 죽 위에 피단이 얹어진 것은 사실상 나에게는 단일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주문 후 음식을 받기까지는 5분이 채 안 걸렸던 것 같다.
매장 2층에 자리를 잡고 먹은 중국의 아침은 한 마디로 ‘고소함’이었다. 깨끗한 기름에 튀겨낸 요우티아오는 빵 그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맛있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설탕 안 바른 꽈배기? 밀가루 빵을 기름에 튀겼으니 그 두 음식에서 유사한 맥락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콩물에도 담가먹어 보았는데 그 또한 따스하니 맛이 좋았다. 여름보다는 겨울에 먹으면 좋을 것 같은 메뉴랄까.... 이어서 시킨 죽은 흰쌀 죽에 피단이 올라간 것으로, 적당히 간이 되어 있어 그릇째 들고 훌훌 넘기기 좋았다. 바쁜 아침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 느낌이면서도 나름 속은 든든한 느낌? 그렇게 맥도날드에서 배를 채운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싼리툰(三里屯) 지역으로 이동했다.
싼리툰(三里屯) 지역은 베이징의 ‘소호’라고 불린단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이며, 밤 문화를 즐기기 좋다는데... 우리가 맥도날드에서 조식을 먹고 방문한 시각은 아침 아홉 시 반. 너무나도 이른 시각이었다. 상가에 도착해보니 출근하는 듯한 사람들만 뜨문뜨문 보였고, 대다수의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기도 전이었다. 당혹스러움을 감춘 채, 나름 관광객 느낌을 실컷 냈다. 텅빈 상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이럭저럭 놀다 보니 한 30분정도 지나가 있었다. 사실 싼리툰 지역에서도 우리의 목표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수건 케이크였다.
□ 유행따라 왔습니다! 베이징의 바로 그 디저트, 수건 케이크!
- 주문 난이도: 하(냉장코너에서 집어오기만 하면 됨)
Holiland(중국어 음차는 好利来라고 한다.)라는 베이커리(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인지 여러 후기를 찾아보니 한국의 ‘파리바게뜨’ 정도인 듯)에서 판매해서 한 차례 유행을 휩쓸었던 디저트였다. 말 그대로 수건을 개어 놓은 모양으로 얇은 크레페를 여러 겹으로 겹쳐 만든, 크레이프 케이크의 일종이었다. 이미 전날 마트에 다녀오며 들른 Holiland 지점에서는 ‘당일 품절’ 판정을 받았던 터라, 아예 싼리툰 지역에 있는 Holiland 지점에서는 오픈런을 하자고 각오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까. Holiland 자체도 아직 오픈 전이라 입장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근처 상점가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상점이야 둘러봐도 뭐가 없고, 결국 벤치에 앉아 30분정도 시간을 죽이다가 다시 Holiland 베이커리로 찾아갔다. 베이커리 앞에 도착해 보니 이미 한국인 관광객 분들이 한 차례 휩쓴 모양으로, 매장 입구 부근에서 큰 보냉백을 정리하고 있었다. ‘설마…’ 하며 문을 여니 다행히 한 3개정도 남아있는 수건 케이크. 나머지는 우리가 싹쓸이했다. 점원에게 한두 시간 밖에 있을거라고 보여주며 든든히 포장을 요청했더니 귀여운 모양의 보냉백에 빈틈없이 잘 포장해 주었다.
아직 점심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 스타벅스로 들어가 음료를 시키고 커피와 함께 수건 케이크를 먹었다. 초코 크레페, 그 사이 쿠키 앤 크림 필링. 겉면은 수건 모양대로 접은 후 초코 파우더를 잔뜩 뿌렸다. 맛은 예상했던 그대로, 크레이프 케이크 맛. 수건 모양이 인상깊었을 뿐 그렇게 특이한 맛까진 아니었다. 그래도 유행하는 디저트를 먹어봤으니 나름 만족스럽달까. 남은 케이크가 잔뜩 든 보냉백을 들고 우리는 다시 택시를 불렀다. 목적지는 798 예술구. 젊은 예술가들이 상업지구를 재생한 곳에 모여 갤러리도 열고 하는 모양인데, 우리의 목적지는 사실 베이징 여행의 마지막 식사를 마무리 할 곳. 점심 식당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겸사겸사 가는...
□ 정갈하고 아름다운 베이징 전통의 맛집. 나가소관(那家小管)
- 차이니즈봉봉클럽 북경편 후기: 아빠 사랑해요~ (차이니즈 봉봉클럽 북경편 - 후기 | 카카오웹툰)
- 주문 난이도: 하(사진포함, 영어 표기 메뉴판 제공)
이 식당은 의외로 후기가 많았다. 심지어 베이징 여행을 나보다 먼저 다녀온 가족은 이 식당을 추천해 줬을 정도. 대체 어떻게 유명한지는 모르겠으나 심심치않게 보이는 후기에서는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은 사람은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먹고자 했던 것은 여러가지 재료가 섞여들어가는 노란색 탕. 차이니즈 봉봉클럽에서 나오는 설명으로는 노란색 육수는 온갖 재료를 넣고 고아낸 육수라는데, 아무리 봐도 슈크림 색깔인 육수는 ‘저게 밥이 되나?’ 하는 의문을 자아내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마침 798 예술구 또한 베이징 관광에서 추천하는 곳이었는데, 식당도 798 예술구 초입에 위치해 있기에 우리는 대망의 마지막 식사를 이 곳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일부는 LG사옥 뒤편이라고는 하는데, 정작 갔을 때는 LG 사옥이 어디있는지 못 봤다,).
나가소관(那家小管)이라는 식당은 옛날 사합원을 개조해 만든 식당이란다. 그래서인지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깔끔히 차려입은 종업원이 인원 수를 물어보고 테이블로 안내를 해 줬다. 서비스만으로 이미 ‘가격이 조금 세겠구나(?)’ 예상하게 하는 곳.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메뉴판은 사진과 영어가 같이 제공되니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영어 소통은 기대하지 말 것. 어찌되었든 우리는 메뉴판을 펼쳐 요리를 주문했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총 4개였다. 입맛을 돋울 전채인 천엽 냉채, 소스에 볶아낸 새우튀김 요리, 그리고 간장으로 볶아낸 볶음밥, 마지막으로 그토록 기대하던 노란색 탕. 탕은 가격대에 따라 안에 들어간 재료가 다르다고 했는데, 지나치게 비싼 건 시키기가 그랬고, 적당히 2~300위안 선에서 타협해서 주문했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땅콩소스 같은 장과 함꼐 제공된 천엽 냉채였다(독사진 못 찍음.). 냉채는 배추를 밑에 깔고 그 위엔 데친 천엽을 올렸는데 뭔가 마늘을 넣고 버무린 듯한 느낌이 났다. 천엽 자체야 사실 별다른 맛이랄게 없지만 같이 나온 땅콩소스를 찍어 먹으니 구수하고 오독오독한 것이 입맛을 돋우기 좋았다.
그 다음 나온 것은 바로 새우튀김. 이 새우튀김은 사실 보이는 그대로의 맛이다. 달콤한 소스에 볶아낸 듯한 새우튀김. 그러나 아는 맛이 무섭다고 했던가? 보이는 그대로 맛이 날 뿐인데, ’정말‘ 맛있다. 하나 집어먹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며 뒤이어 진실의 미간을 보이게 하는 요리로, 반쯤 발라낸 새우껍데기를 떼고 먹어도 되고 아니면 그냥 한 입에 다 넣고 먹어도 된다. 감탄을 자아내는 맛이었다. 안 시켰으면 정말 후회할 뻔! 꼭 하나를 먹어야 한다면 이 요리를 먹는 게 좋겠다. 여기까지 와서 이 새우요리를 안 먹는 것은 중범죄로 간주.
다음으로 나온 것은 바로 기대하고 기대하던 ‘노란색 탕.‘ 도대체 무슨 맛일까. 차이니즈봉봉클럽 내 설명은 곰탕 같다고도 했는데…. 음식을 받고 뚝배기를 보니 탕 안에 들어간 부재료는 전복과… 제비집? 그리고 무슨 도가니 같은 것이 보였다. 과연 이것은 그러면 작품에 나온 것처럼 사슴 힘줄이겠거니… 호강하는 기분을 만끽하며 한 수저 국물을 맛보았다. 그런데... 정말... 음... 충격적인 맛.... 도저히 내 입에 맞지 않았다. 이게 만약 곰탕에 가깝다면 ‘조리 중 잘못 우려내서 누린내가 심하게 올라오는 곰탕’에 가까운 편. 한 수저 떠 먹을 때마다 훅 치고 올라오는 그 누린내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걸쭉한 국물은 탕도 아니고 수프도 아닌 것이… 밥을 말아먹으라고 같이 내 오긴 했는데 이걸 꼭 밥하고 먹어야 하나 싶고... 여하튼 여러모로... 묘한 음식이었다. 그날 시킨 것 중 가장 비싼 음식이었고, 안에 들은 귀한 부재료가 아까워 먹긴 다 먹었다만, 아직도 저 탕을 생각하면 속이 좋지 않다. 입맛을 길들여서 즐기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 맛이었다. 만약 시켜서 꼭 맛을 봐야겠다면 그냥 저렴한 것으로 시켜도 무방할듯. 베이징에서 먹었던 음식 중 가장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을 꼽으라면 이 탕을 꼽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재미있긴 했지....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
뒤이어 나온 볶음밥은 무난한 맛. 간장에 이런저런 채소를 넣고 가볍게 볶았다. 문제는 양이 정말 많다. 50위안정도였는데 막상 나온 양을 보니 3~4인분은 족히 넘어 보였다. 결국 먹다못해 남겨 포장을 요청했다. 포장은 종이 케이스에 잘 담아 주었는데 한국으로 가져와서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이렇게 우리는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무리했다.
10년도 더 된 웹툰을 따라 미식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찾아가는 방법이나 음식점의 가격 등에 대한 용기가 아니다. 바로 상상속에서만 존재했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였다. 내가 그토록 궁금해하고 바랐던 것들이 과연 실제로 봤을 때도 내 기대에 부응하는 것일까? 실망스러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당연히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호기심이 더 컸기에, 웹툰을 따라 미식로드를 계획했고, 마침내 그 여행을 완수했다. 10년도 넘는 시간은 식당 측에게도,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정말 긴 기다림이었지만, 내가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그때의 감격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기다려도 좋았을 법하다.
차이니즈봉봉클럽을 보며 지내온 그 10여 년의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다.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하는동안 베이징은 수도 없이 변했을 테고, 화면 속의 식당도 세월의 흔적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내가 그 자리에서 마주한 한 그릇의 음식은 변함없이, 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 즐겨봐 왔던 작품처럼 진심을 품고 있었다. 음식에 깊게 스민 향신료의 맛은, 나의 기다림이라는 양념이 더해져 더욱 짙고 따뜻한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여행지에서 끼니를 때운 것이었다면 다가오는 의미가 그렇게 깊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오랜 시간 품어온 바람이 현실이 되는 찰나를 혀끝에서 느낄 수 있어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느덧 10여년 전 고시원을 전전하며 이른 나이에 고생하고 있던 나는 지금의 내가 되어 베이징 한복판에 와 있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마침내 내가 이 곳에 왔구나'라는 감격의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베이징에서 돌아오는 길 또한 쉽지많은 않았다. 터뷸런스를 만나 기내식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나 귀국길의 내 마음속은 오래된 꿈을 이루었다는 온기로 가득했고, 그 온기는 아직까지도 남아 헛헛한 내 가슴을 달래주고 있다. 추억과 상상이 더해진 정말 맛있는 미식(美食) 여행이었다. 아마도 베이징은 또 방문하게 될 것만 같다. 再见! 北京!, 안녕! 차이니즈봉봉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