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일요일 아침부터 우리는 급하게 준비하고 나와 택시를 불러야만 했다. 중국의 상징이자 심장과도 같은 천안문과 자금성 투어가 예약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9시에 시작되는 투어는 2시가 넘어 끝날 예정이었다.
투어 팀은 천안문 역 근처에서 만나 우리가 첫날 갔던 전문대가(前门大街) 초입을 거쳐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인상깊은 것은 관광객 수였다. 우리는 투어를 예약했기에 단체 관광객이 드나드는 통로를 통해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람이... 말도 못하게 많았다. 투어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아침 9시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개인 관광객 줄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 오후 1시에나 입장할 수 있다더라. 그도 그럴 것이 입장하는 데까지 정말 짐 검사부터 시작해서 안면인식에 여권 검사까지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더군다나 볼펜, 종이 등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며 특수한 팻말도 가져갈 수 없는 곳. 삼엄한 경비 속에 그 많은 관광객이 통제되고 있으니 입장까지 오래 걸릴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모인 많은 인파는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이 중국 전역의 국민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관광지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30도가 넘는 땡볕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치기 등의 불쾌한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 오랜 시간 기다려 입장한 천안문 광장은 정말 광활했다. 앞서 대기하며 본 그 많은 사람들을 한번에 다 풀어 놓아도 절대 채울 수 없을 정도의 너비. 광장과 자금성을 이어주는 문에 걸린 모택동의 초상화는 매년 새로 그리는 덕에 조금씩 늙어간다나. 사진도 몇 장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후 자금성으로 이동했다.
자금성 또한 대단한 스케일이었다. 느끼기엔 경복궁 단청을 주황색으로 칠한 후 100배 확대해 놓은 느낌? 궁 내에 사용된 돌이 모두 '옥'이라는 점이 인상깊었지만, 그런 인상깊은 점과 입이 벌어지는 광경에도 불구하고 입장 대기에 너무 많은 체력을 소진했다. 결국 우리는 투어 중도 하차를 선언했고, 자금성 중간 문으로 퇴장했다. 그러면? 역시 점심이겠지. 택시를 타고 이전에 봐 두었던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거리는 10분정도였으나, 자금성 근처 교통이 혼잡해 택시를 기다리는 데에만 15분을 소모했다.
□ 역사와 전통이 깊은 돼지고기뚝배기집 - 사궈쥐 시쓰 점(砂锅居 西四店)
- 차이니즈봉봉클럽 제4화: 너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별로였어(차이니즈 봉봉클럽 북경편 - 4화 너의 첫인상은.. | 카카오웹툰)
- 주문 난이도: 하(사진, 영어포함 메뉴판 제공)
사궈쥐(砂锅居)는 애시당초 꼭 가 보겠다고 꼽은 식당 중 하나였으나, 동선이 마땅치 않아 포기하려던 찰나 해당 점포명을 중국어로 바이두 지도에 검색해 보니 자금성 근처(근처라지만 차로 10분 이상은 걸리는 대륙…)에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고민할 것도 없이 투어 당일 점심으로 계획에 넣었다. 12시 반에 자금성 투어를 중도 포기하고 이동까지 30분이 걸렸으니,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약 1시쯤. 이미 점심손님은 다 빠져나가고 어느정도 드문드문 빈 테이블이 보였다. 앉아서 주문하려고 하니 이 곳도 다행히 메뉴판에 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간단한 영어와 몸짓으로 주문한 것은 하얗게 볶아낸 야채볶음과 고기완자 튀김,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한 번쯤 먹겠다고 벼르던 북경식 자장면과 이 집의 메인 메뉴인 ‘돼지고기배추뚝배기’였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야채볶음. 감자, 가지, 피망을 볶아내는 지삼선(地三鲜)과 비슷하겠거니 하고 시킨 야채볶음은 생각보다 간이 셌다. 그러면서도 감칠맛이 좋아 입에서 자꾸만 당기는…. 문제는 야채볶음에 있는 저 초록색 채소. 피망인 줄 알고 집어먹은 저 채소는 정말... 말 그대로 ‘쓴맛’이 났다. 잘못 먹었나 싶어 하나 더 집어먹어보니 여전히 입안을 뒤집어놓는 쓴 맛. 결국 다른 것만 쏙쏙 골라먹고 초록색 채소는 다 남겼다.
함께 시킨 북경식 짜장면은 여러 후기에서 찾아본 대로 친숙하면서도 별난 맛이었다. 그러니까, 향은 우리나라 중국집 짜장면과 유사한데, 맛은 전혀 다르다. 단 맛이 아예 없고, 우리나라 짜장면처럼 질척한 느낌도 아니다. 오히려 장으로 따지면 된장에 더 가까운 느낌? 익힌 면과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 그리고 한데 어우러지는 장의 향긋함이 좋았다. 간은 약간 센 편.
뒤이어 나온 고기완자와 배추뚝배기. 고기완자는 그러니까, 미트볼. 미트볼인데 안에 무엇을 넣었는지 중국식 향이 강렬하다. 아마 산초 비슷한 향료를 완자 반죽에 같이 섞어 튀긴 모양이다. 하나 두개 집어먹기 좋은 사이즈로 고기도 맛있었으나 한 알 한 알마다 뒤따라오는 오묘한 향이 조금 낯설었다. 오히려 배추뚝배기의 경우 만화에서 묘사된 맛으로 어느정도 알고 먹었기에 예상한 대로의 맛이었다.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것은 전혀 아니었고, 정말 백김치로 끓인 김치찌개 맛? 국물이 참 오묘했고 오동통하게 익은 당면이 건져먹을수록 맛있었다. 같이 나오는 소스는 사실 없어도 무방할 듯(찍어먹기엔 좀 짰고 내 스타일도 아니었다. 요상한 장 맛.). 뚝배기 안에 들은 배추랑 당면은 지금도 생각나는 별미 중 하나로, 어째서 사궈쥐(砂锅居)가 오랜 시간 성업하며 베이징 내에 자리할 수 있는지 알게 해 주는 맛이었다. 오전 일정은 점심식사로 끝! 아침부터 더위에 너무 고생한 나머지, 숙소 근처 마트에 가서 기념품과 장을 조금 본 후 오후에는 퍼져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던 이유는 저녁이 있기에….
□ 사천시에서 베이징으로 파견(?)온 정통 사천요리! - 촨징반 찬팅(川办餐厅) 사천요리 레스토랑
- 차이니즈봉봉클럽 북경편 제10화: 최종점수 몇대~ 몇!?(차이니즈 봉봉클럽 북경편 - 10화 최종점수 몇대~몇?! | 카카오웹툰)
- 주문 난이도: 중(QR코드 사용하면 편함, 매장에서 주는 메뉴판과 다소 상이)
휴식을 마치고 숙소에서 나온 시간은 여섯시 반. 베이징 여행을 마무리하는 저녁 만찬의 시간이었다. 모든 일정을 고려해 마지막날 저녁으로 배치한 것은 바로 사천(四川)요리. 사천 베이징주재소에 위치한 식당으로 정통 사천요리를 맛볼 수 있다기에 이번 여행 시작부터 반드시 가야하는 곳으로 체크해 둔 곳이었다. 매운 요리를 좋아하는 우리 둘 다 사천 본토의 맛을 꼭 한번 보고싶었기에 맨 처음 방문해야 할 곳으로 꼽은 곳. 다행히 숙소에서 걸어서 한 40분 정도 되기에, 앞서 먹은 음식들(마트에서 두리안도 사 먹음.)을 소화시킬 겸 슬슬 걸었다.
베이징 도심의 주말 저녁은 의외로 공허했다. 어쩌면 우리가 가는 곳이 오피스 상권이었는지도 모르겠다만, 식당으로 향하는 길, 특히 인도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고덕지도에 경로를 찍고 따라간 길 끝에 민가 한복판으로 접어드는 골목이 있었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어?’ 싶었지만 의심해서 무엇하리. 교행(交行)도 되지 않는 좁은 인도를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모퉁이를 돌자 그 곳에 식당이 있었다. 해가 다 넘어가서 푸르스름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밝은 조명이 가게 간판을 비춰주고 있었다.
이 식당은 다양한 사천요리로 유명한 모양이다만, 오기 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바로 푸치페이피엔.부처폐편(夫妻肺片)이었다. 차이니즈봉봉클럽 에피소드에도 나오듯 소의 각종 내장을 매콤한 소스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라는데, 애초에 내장류 음식에 사족을 못쓰는 나에게는 정말 너무너무 먹어보고 싶은 요리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메뉴판을 달라고 했더니 영어가 병기되어있고 그림이 같이 주어지는 메뉴판을 주긴 줬는데. 푸치페이피엔은 없었다. 결국 Cold dishes중에 비슷하게 생긴 녀석으로 골랐다. 냉채이긴 했는데 아마 돼지머리 고기라고 하는 걸 보니 매콤하게 버무린 편육 정도가 아닐까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냉채와 함께 먹을 마파두부(麻婆豆腐), 이젠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궁보계정(宫保鸡丁), 그리고 밥 한 공기를 주문했다.
주문 후 주위를 둘러보자 어딜 봐도 현지인 테이블 뿐이었다. 다들 연신 냄비에서 뭘 떠서 먹는 것을 보니, 차이니즈봉봉클럽 만화에서 보았던 생선요리인 것 같았다. 일부러 집중해서 본 건 아니지만, 새로 온 테이블이 주문하는 모습이 보이기에 눈여겨본 결과,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테이블 위에 있는 QR을 스캔하는 것이 아닌가! 아, 저기서 메뉴를 볼 수 있나본데? 하고 따라 스캔해 본 QR에는 앞서 종이로 본 메뉴판보다 훨씬 더 많은 메뉴가 존재하는 모바일 메뉴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 Cold dishes에 보인 ‘Ox Tongue’. 아, 이게 어쩌면 내가 찾던 푸치페이피엔이 아닐까? 호기심이 동해 비록 냉채가 2개가 될 수 있었다만 추가 주문을 감행했다. 내가 언제 여길 또 오겠어?
이윽고, 주문한 요리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애피타이저로 먹기에 좋은 냉채요리 두 개가 제공되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당혹스러웠다. 두 명이 먹기엔 냉채 하나도 많은 양이었는데, 두 개를 시켰으니… 두 냉채요리는 비슷한 소스를 기반으로 해서인지 맛이 비슷했다. 돼지머리 냉채는 우리가 흔히 먹는 돼지 머릿고기를 기름지고 매콤한 소스에 버무려 먹는 느낌이었다. 자칫 느끼할 수 있는 머릿고기를 산뜻하게 먹을 수 있게 한 요리였다. 그리고 대망의 Ox tongue. 그 요리는 내가 찾던 푸치페이피엔이 맞았다. 정말 내가 차이니즈봉봉클럽 만화 통틀어 가장 먹어보고싶었던 요리로, 천엽과 기타 내장을 매콤하게 버무려 낸 이 요리는 '내장요리의 재해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우리는 내장이 재료로 들어가는 음식들이 따뜻한 편이면서도 주로 식사를 수반하게 되는 메인 디쉬가 되는 반면, 여기는 전채요리로 내장을 매콤하고 고소한 소스에 담가주는 것이 퍽 새로우면서도 너무나도 조화로운 맛이었다. 국내에 제발 파는 곳이 있기를 바랄 정도. 함께 시킨 돼지고기냉채는 푸치페이피엔을 먹는 순간 뒷전이 되어 결국은 남아버렸다.
이어서 주문한 사천요리는 중국인들의 소울푸드라고도 볼 수 있는 궁보계정(宫保鸡丁)과 마파두부(麻婆豆腐). 두 요리는 사실 이제 국내에서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고 나와 내 옆지기도 이미 먹어봤을 정도로 흔해지긴 했다만, 사천 본토 식이라면 또 얘기가 다르지? 그 기대는 적중했다. 궁보계정은 부드러운 닭고기를 깍둑썰기해 땅콩, 대파, 고추와 볶아냈는데 그렇게 달지 않고 매콤한 맛이 무난한 밥반찬으로 잘 어울렸다. 물건은 그 뒤에 이어서 먹은 마파두부였다. 국내에서 먹은 마파두부보다는 농도가 두세 배는 진한 맛으로, 톡 쏘는 향신료 덕에 혀가 얼얼하면서도 구수한 장 맛이 매콤한 고추기름과 한데 어우러져 두부를 완벽히 받쳐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밥도둑. 결국 한 공기 시켰던 밥을 하나 더 추가해 그 자리에서 마파두부를 올려 흡입해 버렸다. 다 먹고 나니 시간은 벌써 8시가 넘었기에, 천단 공원을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