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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냄비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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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태형 Dec 29. 2019

보폭

먼저 가세요.

보폭이 짧다.


분명 같이 걷기 시작했는데, 저만치서 걸어가는 동행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갑시다” 외치는 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냥 느지막이 걷는다. “먼저 가세요”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약속이 있으면 예상 소요시간보다 한 시간은 일찍 출발한다. 조선시대 선비인 양 뒷짐을 지고 터벅터벅 걷는다. 햇살과 바람을 느낀다. 나무와 풀을 바라본다. 아름답다. 즐겁다. 그렇게 걷다 보면 약속 장소에 도착하게 되는데, 늦는 일은 없다. 길을 잘못 들어도 되돌아 가기에 시간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국토대장정의 기억이 떠오른다. 함께 걷는 것은 참 고된 일이다. 빨리 걸으면 앞사람의 발을 차게 되고, 느리게 걸으면 뒤 사람의 발에 차이게 된다. 내 보폭은 완벽한 무리의 속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내 앞사람도, 앞의 앞사람에게도 같다.


문제는 평소의 내 보폭과 무리의 보폭이 같지 않다는 점이다. 원래의 보폭으로 걸었을 때면 금세 뒤쳐져 버리고, 힘을 내어 빠르게 걸으면 무리에서 튀어나와 앞사람을 추월해버린다. 걷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바로 이 보폭을 맞추는 것이 죽을 맛이었다.


사흘이 채 되지 않아 발바닥이 너덜너덜해졌다. 크고 작은 물집이 양 발에 5개씩. 나의 보폭과 다른 걸음걸이가 평소에 딛지 않았던 부분을 자극한 것이다. 연약한 부위가 자꾸만 쓸리니 화상을 입고 물집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2주일이 지나서야 굳은살이 배기고 물집의 고통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뒤로 5년이 지났다. 100일간의 컨설팅 업무를 마치고 시간이 붕 떴다. 다음 계약까지 한 달이 남았는데, 계획이 없어 거의 일주일을 방탕하게 보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맞이한 느지막한 아침. 갑자기 이런 의문점이 생겼다. “동쪽으로 걸으면 바다가 나올까?” 현대의 삶에 비해 참 맥락 없는 의문이었지만 ‘아는 것’을 ‘도달함’으로 증명한 마젤란과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동쪽으로 가면 바다가 나온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도달함으로써 스스로의 인생에 증명하고 싶었다. 낡은 배낭에 옷가지 한 벌, 생수 한 병을 챙겨 5년 만에 집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 오른손에는 나침반을 쥐고.


1시간가량 걸었을까. 깊은 속에서부터 토해 나오는 해방감에 소리를 질렀다. 어딘가로 급히 내달리는 차들을 보며 묘한 우월감을 느꼈다. 아무도 나를 쫓아오지 않는다. 도달해야 하는 목표치도 없다. 방향만이 존재했고, 나는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걸었다. 멈췄다. 걷고 싶은 만큼 걸었고 멈추고 싶을 때 멈췄다. 오로지 나의 보폭으로. 벌리고 싶은 만큼 다리를 벌렸다. 희열! 나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만큼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이것이 반복되었을 때 온전한 나를 느꼈다. 완전한 나를 보았다. 비로소 나를 깨닫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물집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 날 밤을 걸어도 물집이 잡히지 않는 발바닥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지. 이렇게 쉬운 것을. 그저 내 보폭 대로만 걸으면 되는 것을. 뒤처지지 않으려고, 조금 빨리 걸으려고. 지난날 수많은 물집을 터트리며 쓰라림에 아파했던 것이다.


인생에도 물집이 생긴다. 보폭이 달라서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느리고 누군가에게는 빠르기 때문에. 쓸리고, 터지고, 붓고, 갈라지는 것이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물집은 다 아프다. 혼자서 갈 수 없다면, 가끔은 멈춰 서서 약이라도 바르자. 보이지 않는 곳은 서로 발라주자. 괜찮다고, 괜찮다고. 정성스레 위로 해 주자.


어차피 걸어야 하잖아. 함께 걸어야 하잖아. 멈출 수 도 없는 마당에, 그거 약 얼마나 한다고. 위로를 아끼지 않는 서로가 되자. 우리가 되어주자.




유태형입니다.


저는 출판 경험이 있습니다. 자기계발서 ‘가지고 싶은걸 가져요’의 작가입니다.


원래 자기계발서를 낼 생각은 없었는데, 출판 과정에서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에세이를 꼭 써보고 싶었는데요.


버킷리스트 ‘책 내기’에 줄을 긋고 나서, 다시 현업으로 돌아와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전 자료들을 정리하다 보니 열심히 준비했던 에세이 글들이 보이더랍니다.


완벽하지 않을지 몰라도, 훌륭하고 파격적인 글이 아닐지라도. 내가 낳은 글. 나의 온도, 주파수에 딱 맞는 그 글들이 그렇게 예뻐보이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이제는 아무런 욕심 없이 하나씩 꺼내놓으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시리즈의 이름은 '냄비받침'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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