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제자와의 대화 (1)

by 광규김

[지금 시대에서]

“지금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을 새로운 트렌드로 받아들이고 있어. 하지만 그중에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인걸 아니?”


수능을 앞둔 제자와의 대화에서 무엇을 목표로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지금은 오히려 하고 싶는 걸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나 역시 막연한 목표는 있었지만 그걸 어떻게 채워가야 하는지를 찾아낸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니까. 네가 그 고민을 한건 나보다 6년은 앞서간 거랑 같아.


지금까지의 세상은 그랬을 거야. 끝도 보이지 않는 경쟁 사회 속에 던져졌지. 그 속에서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도태될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너의 등 뒤를 따라왔을 거야. 왜 그랬을까? 모든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서 순위를 메기는 교육 과정이 초중고 12년 과정의 전부였기 때문이야. 마치 이 순간 만을 위해서 지금까지 너의 10대 인생 전부를 살아왔다는 말처럼 들릴 테지 그렇지 않니?


[대학교육과의 연결지점]

너희의 인생이란 것에 대해서 충분히 묵상할 시간도 기회도 완전히 박탈당한 채로 달려야 했던 인생을 결국 누가 책임져주지? 채찍을 휘두르며 달리게 했던 교육은 너를 책임져주지 않아. 오직 너희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라 말하면서 자기의 인생은 자기의 책임이라 말하지. 너희는 세상에 던져질 테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마저 들어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생이란 것에 대해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았으면서 말이야.


인문학적 사유함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눈이 없어. 이건 문이과를 따지지 않고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성인의 소양임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을 마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눈 앞에 있는 시험지를 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풀이하는 능력밖에 없지.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에 가면 난리가 나는 거야. 리포트를 쓰고 소논문을 쓰는 것 즉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피력하는 능력을 교육받진 않았기 때문이지.


참 웃기지 않니? 지금까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공부했으면서 정작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방식, 대학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 대학교 교육이 연관성을 상실한 채 너희를 몰아세우고 있다는 게 어떻게 느껴지니? 기형적인 발달이 이뤄진 지성체에게 어떤 인격의 깊이를 기대할 수 있지?


[정상에 오르는 사람]

그러니까 방황이라도 해봐. 너의 것을 찾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가져보라는 말이야. 너는 지금까지 학원에 과외에 빠져 살면서 너만의 시간을 얼마나 가져봤니? 도대체 너의 인생과 너의 자아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얼마나 없었기에 아직까지 네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걸까? 좋아하는 걸 해볼 시간이 없었겠지. 그렇다는 건 필연적으로 좋아하는 걸 찾을 기회조차 너희는 박탈당하고 살아왔다는 거야. 자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이 가르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취업 시장이 되어버린 대학이 주는 학사 학위증 밖에 그 8학기간의 시간에 너에게 주는 게 뭐란 말일까?


이것조차도 사치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말이야.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는 말을 나는 하고 싶어. 우린 잠시 세상에 마실 나온 사람들일 뿐이야. 등산처럼 끝을 찍었으면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지. 그건 생의 정점을 찍으라는 말이 아니야. 어느 지점까지는 계속 올라가겠지만 결국엔 내려오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말이지. 정상이 등산의 목적이 될 수는 있어도 정상이 등산의 전부가 될 수는 없어. 끝만 보고 걸어가면 산이 주는 것들을 느낄 수도 없고 누릴 수도 없기 때문이야. 산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만이 정상의 경치를 누릴 수 있어.


왜 그럴까? 단지 정상이란 곳에 오르기만을 위해서 걸었던 사람은 정작 그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워하고 공황에 빠지지. 이젠 목표가 없어지거든 이젠 다 이뤄버렸거든. 그러니까 결국엔 하는 말이 이런 게 되어버리는 거야. “다 부질없더라 그거.” 산을 오르며 마주했던 세상과 자기 자신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끝에만 닿을 뿐이니까. 그 이상의 효용도 가치도 없는 인생을 살아버린 거지.


네가 지금까지 배우고 해온 건 최단기간에 최고의 호율로 정상에 오르는 법만을 배웠을 뿐이야. 그것도 등산이겠지만 그게 등산의 전부는 아니야. 그래서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만 너는 지금 그렇지 않잖아? 그렇기 때문에 너에게 필요한 건 다른 코스로 다른 방식으로 가는 길일 거야.


[하고 싶은 게 없다면]

“그러니까 하고 싶은 게 없다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넌 방황이라도 할 수 있어. 그마저도 네가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이지.”


하라는 것만 열심히 해서 지금까지 왔지만 선택의 기로에 버려진 아이와 나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의 가는 길도 본인의 책임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나는 답도 없는 인생, 이왕 태어난 세상 마음껏 누리다 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점점 소망이 사라져 가는 세대에게 본받을 어른이 되지 못한 선생이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리 멋있진 않았다. 하지만 작은 용기라도 더해줬다면 내가 그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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