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전도하는 노인

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by 광규

<누구도 듣길 원하지 않는 전도>


한 영감님께서 지하철에 오르셨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윽고 영감님께서 입을 여셨다.


“제가 간증을 한가지 하러 왔습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관심도 두지 않았지만, 지하철칸에 있던 어떤 이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그들중에서 하나였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을 것이다. 하지만 듣는내내 나의 마음을 불편했다.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사람들에게 민폐를 준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분의 종교적 열심에 거부반응을 보인것일까?

더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에 나는 ‘복음이 무엇일까?’하고 생각했다.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불에 떨어진다.

이게 복음의 본질일까? 이 말 하나를 전하기 위해 예수는 이땅에 왔던걸까?

이 말 한마디 때문에 그동안 많은 순교자의 피가 땅 위에 뿌려졌을까?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 나는 언젠가 다시오실 그리스도 예수를 기다린다.

하지만 사후세계는 나의 신앙의 동기가 아니었고, 나를 살게하는 소망도 아니었다.


나는 하늘 나라의 상급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고있다. 황금으로된 궁전에 살겠다고 이생의 자랑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


지금의 삶도 충분히 선물인데 마다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여전히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간증의 소리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의 전도에 대한 열심을 나는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면서도 나는 그들을 온전히 존중하지 못한다.

침묵하면서 나는 서로를 존중한다고 위선 뒤에 나의 혐오어린 표정을 숨길 뿐이다.


지하철에서 내린다.




오늘 그 영감님의 말씀을 듣고 누구 한사람이라도 변화의 계기가 생겼다면, 누구도 그분을 비난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어느새 좁은 대중교통 속에 모였던 모든 이들이 흩어졌다. 다시 새로운 얼굴과 새로운 무관심만 공간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전도는 관심을 끌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 없이 관심을 뿌려야하는 것인가?


나는 바람에 스치는 들풀과 길가의 짐승에는 동정과 배려를 던지면서도

그 정성의 절반 만큼도 주변의 이웃의 삶에 관심을 주지 못했다.


참으로 위선적이었다.

도덕적 우월감을 위해 선택한 윤리 의식은 선택적으로 사랑의 대상을 가렸고,

나의 불편함을 숨기기 위해 작은 실천들로 가득 채운 벽을 세웠을 뿐이었다.


말쟁이. 언변을 앞세운 사람 중에 끝까지 존경받은 사람은 적어도 이 바닥엔 없었다.


아무도 서로에게 경청하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 간증을 전했다.


자신의 말을 하고 싶지만 타인의 말은 들으려하지 않는다. 이게 교회의 현 주소였다. 아무도 믿지 않을만하다.



귀를 막은채로 의는 행하지 못한다.

어디선가 걸인의 모습으로 만날 예수를 얼마나 지나쳤는지 모른다.

답답한 마음을 숨겼다.

나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예수를 믿어서 바뀌었다 하였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이들이 바꾼 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전히 굶주림과 아픔이 많은 이곳에서

나는 미혼모 가정을 섬기는 교회로 향했다.

필요 물품을 전해주는 크리스마스 블레싱이 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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