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받아 들고는 등을 돌리셨다.

누군가를 만난 이야기

by 광규



2020년. 코로나로 일손이 없다는 친구의 말에 나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번에 내가 함께하게 된 곳은 “거리의 천사들”이라고 하는 노숙인 사역 단체였다. 이들은 노숙인 자활을 돕고, 음식과 마실 것을 나눠주며 이들이 최대한 다시금 삶에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단체였다.


담당자께서는 전염병이 한참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지 지원을 오는 봉사자와 후원자들의 발길이 끊겼다고 말씀하셨다. 한참 빵과 함께 나눠드릴 손편지를 쓰고 있던 때였다.




차에서 내려 지하철 입구에 들어서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었다. 싸움을 걸어도 받아주지 말 것, 깨우지 않게 조심히 다니고, 조용히 기도할 것 등등


머리맡에 빵과 음료를 두고 무릎을 꿇고 한 명씩 기도를 했다. 그럴 때면 간혹 마주 앉아 기도하는 이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지독한 냄새가 올라온다. 틀림없는 사람의 냄새였다. 지독한 세상에서 살아오느라 몸에 배어버린 악취였다. 그래서 싫어할 수가 없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사람들이 매일 밟고 지나간 이곳의 바닥은 차가웠고, 닫혀버린 마음은 너무나 굳어있었다.


한 아저씨는 빵을 받자마자 등을 돌렸다. 세상이 이들에게 등을 돌렸는지. 이들이 세상을 등졌는지. 마음이 아렸다.


사람의 마음을 병들어 죽게 하는 건 위선적인 동정도 아니고, 멸시의 시선도 아닌 이토록 차갑게 굳어버린 무관심한 일상의 통행로가 아니었을까.


수많은 이들이 출퇴근하는 길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사랑하는 이들을 향해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온다. 더러는 자신을 위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관심과 마음을 주고받지 않고서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들은 지하철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했다. 홀로 잠드는 이들은 자기 고집이 몹시 강하거나 정신이 아주 나가버린 이들이라 하였다. 표현이 다를 뿐 마음이 몹시 망가져있어야만 사람은 홀로 잠을 청하는 것이겠다.


이런 게 봉사냐고 술에 취해 마음속의 역정과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대처하나 여쭤봤지만 할 말이 없다 하였다.




날이 추웠다. 추우니까 찾아갔다.

시국이 소란했다. 그러나 남대문역을 찾는 봉사자들의 발길은 소원해졌다.

조용했다. 그래서 찾아갔다.


처음엔 무어라 기도할지 짧은 문장조차도 쉬이 읊조리지 못했다. 출구가 가까워지면서 바구니는 가벼워졌다. 그제야 기도할 말들이 떠올랐다.


살아있음을 만끽하며, 살아가게 해 달라고. 언젠가 이들과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부를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굳고 차가워진 바닥이 이들이 사는 세상의 전부이듯, 나의 표독스러운 마음도 어느새 찾아온 봄에 다 녹아버리길 바랬다.


그래서 이들을 모른척하는 이들을 등지고서 나는 빈자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성경에서 말하던 예수라면 바로 저기에 함께 계실터였다. 가난한 마음으로 내 바람을 읊조렸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저와 같은 이들에게 당신의 마음을 주옵소서."


사랑을 구했다. 사람이 사람을 마주할 수 있을 사랑을 간절히 찾았다.


'나와 같은 악독한 위선자의 발걸음을 멈출 작은 관심을 이 길목에 내려주옵소서'.


집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에 오르며 단출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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