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우리가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이유는 완전히 혼자서 가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언가의 도움을 받고 살며 또 어느 순간에선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았다. 그게 사람 사는 삶이 아닐까?
여기 내가 받았던 도움들이 있다. 어쩌면 나라는 하나의 인격도 이런 자잘한 사랑이 엮이고 모여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누고 싶고 건네주고 싶다. 또 어딘가에서 살아갈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항상 읽던 책들보다 내 삶에 있어 더 많은 영감을 줬던 문장들을 오늘 이곳에서 나누고자 한다.
“잘 걸어갈 거야 넌 좋은 사람이니까.”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끝나갈 무렵 번아웃이 온 나는 요양과 대학원 입시를 두고 크게 고민을 했었다. 어딘가 조언을 구하려고 해 봐도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생각해보면 나는 말없이 스스로를 원망하고 있던 것 같다. 뭐하고 살았길래 선뜻 물어볼 사람이 이렇게 없니.
나는 평소에 사람들과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는 표정과 얼굴을 대면하고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아날로그 한 방식을 좋아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가끔 안부를 묻거나 아끼는 사람들을 챙겨주는 등 크게 연연하며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나에게 참 서운했다.
사실 사는 게 그렇지 않을까. 사람이 기댈 곳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하지만 운 좋게도 간혹 만난다. 자신의 어깨애 기대어 쉴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을 말이다. 내게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문득 예전에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던 학교 선배들에게 연락을 했다. ‘잘 걸어갈 거야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충격적일 만큼 위로가 됐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너를 위한 일을 해라.’, ‘더 마음이 가는 길을 택해라’이런 문장들은 내게 용기를 줬다. 하지만 잘 걸어갈 거야. 그 말은 내게 또 다른 빛을 보여줬다.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이미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제에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닥친 이 우울증과 번아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머릿속에 계획이 차근차근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잘 걸어갈 수 있으니까.’
사람 말을 좀처럼 믿기 힘든 세상에서 나는 믿어버리고 싶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서 이 문장에 뛰어들길 바랬다. 내가 이 어휘의 집합이 되고 되고 저 말이 나를 설명해주길 바랬으니까.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최근에 와서까지도 연락을 잘하지 않고 살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내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셨는지 무슨 일이냐는 연락이 왔다. 조금씩 나의 마음을 풀었고, 그 선배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형은 네가 죽으면 진짜 슬플 거 같아. 그리고 있잖아. 널 처음 봤을 때부터 참 좋았다. 목소리도 좋고, 생각도 깊고, 너 탁월해. 감정적인 것도 탁월하지만 신학적인 글 보면 정말 탁월하니까 계속 한번 파봐. 요즘에도 글 쓰니? 넌 참 좋은 애야. 재능 있으니까 계속 한번 파봐.”
정말 건질게 많은 위로였다.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어느새 소원해진 사이라고 생각해도, 어디선가 서로를 생각하는 관계가 있다.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풀어주는 이들이 있다. 감사하게도 인복이 많은 나는 이런 이들을 직접 경험하며 배울 수 있었다. 멀리 있는 이들을 마음으로 더욱 아끼는 방법을….
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한 내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애써주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인생 선배라 부른다. 그분들의 통찰은 어느덧 나를 어른이 되게 했고, 내게 스며들어 그 마음을 닮아가게 했다. 어찌할 바를 모를 땐 충고나 판단 그리고 조언이나 비판을 하려 해선 안된다. 그 마음 안에 이미 답이 있는데 그걸 끌어낼 방법을 모를 뿐이다. 그런 이들은 대개 자존감이 낮아져 있어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쁠게 뭐가 있어. 천천히 가도 괜찮아.”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참 방황하던 내게 해주셨던 인생 선배의 말이었다. 조언을 구했지만 위로가 돌아왔다. 대학원 특차를 갈 수 있지만, 좀 더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싶던 내게 해주셨던 말이다.
“일찍 간다고 천국 특차 가는 거 아니다. 세상에 많이 귀 기울이고 경험해보고 생각해봐”
나는 세상을 알고 싶었다. 한 울타리 속에 갇혀서 닫힌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밖에 있는 이들에게 내 마음이 더 아팠다. 더 외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경청하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를 묵상하는 방법을 말이다.
그들은 나를 믿었다. 그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이 나를 믿게 했다. 그 말들이 나를 살게 했다 고백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건 지치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있다는 사실은 참 위로라 느꼈다.
어느새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려고 했다. 그동안 끔찍하게 비하고 싶었던 흉 진 내면을 대면할 수 있었다. 자신을 만나는 이야기에 왜 타인과의 이야기를 적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을 통해 형성되어가는 내 인격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그 기억에 서로에게 행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게 요즘 내가 바라는 일이다.
당신도 그렇다. 요즘 스스로를 믿기 힘든 마음이 들었다면 가끔 이 글을 찾아왔으면 한다. 짐 진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가끔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스스로를 믿고서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내 글은 이 자리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슴을 녹여 적은 언어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흘러 살아갈 용기가 되어 등을 떠밀어줬으면 하니까.
“잘 걸어갈 거야. 넌 좋은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