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에게 목사님이라 부르시던

사역 이야기

by 광규

<응답> 외할아버지는 술을 마실 때마다 내 손을 잡으시고, 목사님 목사님하고 부르시곤했다. 정작 아무것도 아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외삼촌의 장례식 때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시며 “우리 아들 천국 갈 수 있지요? “물어보셨다. 어느 명절에는 헌금 많이 못내면 원래 차별 받냐고 내게 물어보셨다. 그때에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내게 와서 풀어놓는 의문은 오히려 신학교에 가서도 알려주지 않는 질문이 더 많았다. 어쩌면 그들이 더 많이 경험하고 그들이 더 많이 고민했을 문제들이었다. 교회에 받은 상처가 많으실텐데 그럼에도 손주의 꿈을 존중해주셨다. 입신과 양명을 목전에 두는 진로가 아님에도 기뻐해주시는 사람이 있었다. 무력함을 느꼈다. 차라리 다른 것을 공부했으면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더 많지 않았을까. 오히려 내 손이 너무 짧다는 것을 느낄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며 세월을 보냈다. 어쩌면 고민만 하다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을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일종의 좋은 핑계거리로 나의 책임 없음을 둘러대는 허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내가 더". 많은 질문에 생각나는 단어는 크게 이 두가지였다. 함께 해야지 비록 그 순간에 아무 대답을 못해도 그 고민을 놓지 말고 함께 고민해야지. 그들의 질문을 받아들고서, 내가 하나님께 더 많이 질문하고, 더 메달리고, 더 씨름해야지. 그것 말고는 눈에 보이는 방도가 없았으니까. 하지만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말로 도망치지 말아야지. 언젠가 주님 앞에 서원을 했던 그날. 나는 내가 하나님이 좋아서 이 길을 가고자 했을까? 아니면 내가 저들을 너무 사랑해서 목회를 사모하게 되었을까? 떠올려보면 십대의 나는 두가지 사랑을 함께 고백했었다. 여전히 흔들림 없이는 계속할 수 없는 신앙을 나의 심중에 품고있다. 무엇을 준비하고, 지금 뭘 노력하고 있어야 한발짝 더 앞으로 갈 수 있을까? 목표로하는 막연한 나라는 있지만 뚜렷한 방향 없이 모든 사람은 세상에 던져졌다. 어쩌면 목자의 이끌림을 듣지 못하는 우매한 양 처럼 인간의 실존은 골짝 사이를 헤메이고 있다. 어떻게하면 뿌옇고 흐릿한 시선을 넘어서 저들의 옆자리까지 다가설 수 있을까? 내 손에 잡히는 주님의 옷자락은 어디쯤에 있을까? 이제까지의 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음이 확실했다. 다만 내 눈이 어둡고 내 귀가 고집스러워 들어야할것을 외면해왔을뿐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내게 질문을 던지게 하심으로써 내게 대답해주셨다. 그렇게 쉬지말고 저들의 마음 하나 하나를 내 마음 깊이 품으라고, 지체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하나님은 내게 질문을 던지게하심으로 내게 대답해주셨다. 사유함을 끊지 말고 손을 내미는 것에 인색하지 말라고. 십대의 나를 부르셨을때 하나님은 내게 해주셨듯이 이제 내가 저들의 곁을 지키라고 그렇게 나의 고백에 대답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