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단지 종말에 대한 비유적 해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서는 종말론적인 삶. 곧 정의와 공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함을 가르친다. 언제 끝이 올지 모르는 인생과 세상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성서의 강령이며 이것이 바로 이웃사랑으로 대표되는 성경의 제정 정신이다.
성경은 세상이 어떻게 끝이 나는지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왜 종교 집단에 나와야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성경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 즉 세계관을 길러주기 위해 신학적으로 재해석한 역사와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높은 수준의 윤리적 실천을 요구한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단지 아무런 감정과 가치가 없는 사건의 나열로만 보지 않고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쓰여지는 새로운 세상으로 보게 한다. 세상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관점과 함께 세상의 아픔을 조명하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때문에 청년들에게 종교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말하려 하기 보다. 세상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고 자신의 삶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더 호소력 있게 작용한다. 어떠한 “주관”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가 종교가 다뤄줘야할 근원적인 문제이며, 사실 오래전부터 본질적으로 추구하고 고민하던 분야였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왜 선해야하고 왜 악함은 안되는지. 강한 윤리적 명령이 있는 말씀 곧 율법을 따르게 했던 이유가 무엇이고 거기서 어떻게 선을 찾았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 지금 이 시대에서는 어떻게 선을 추구해야하고 왜 선을 추구해야하는지. 악함과 부패의 대명사가 되어버리는 타락한 종교에서 정신차리고 전해야할 메시지는 바로 이런데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전통과 전승이 엄청난 무기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인문학적이고 고전적인 가치를 탐구하고 가르침을 전하는데 있다.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을 어기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 종교를 외면했고, 현실적으로 어떻게 사랑하고 무엇이 사랑인지 고민할 틈조차 없이 바쁜 삶을 살아야했다. 종교는 바로 그런 문제에 물음을 던지고 함께 해답을 고민하는 경험을 공유할 수 있고, 그런 가치의 실천의 장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선하게 살아야한다는, 그럼에도 사랑해야한다는 것은 오직 신념. 곧 믿음의 영역에서만 얘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