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 이스라엘 종교편 - 예언과 공의

예언자 전통과 사회적 공의의 발견

by 광규김

축의 시대: 이스라엘 종교편

- 전사의 신에서 정의의 유일신으로

- 예언자 전통과 사회적 공의의 발견


이스라엘 종교는 축의 시대를 거치며 인류 종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혁을 경험했다.

초기의 전쟁의 신 야훼 신앙에서 출발하여, 예언자들의 혁명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중시하는 윤리적 종교로 진화했고,

바빌론 유수라는 국가적 파국을 겪으며 내면화되고 보편화된 유일신교로 성숙했다.

본 편은 이스라엘 종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 예언자 전통의 핵심 메시지, 토라의 형성과 의미,

그리고 현대적 유산을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1. 초기 신앙: 만군의 주

야훼 사바오트: 군대의 신

이스라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초기 형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초기 이스라엘인들에게 야훼는 평화나 자비의 신이기보다 '전사(Warrior God)'로서의 성격이 뚜렷했다. 야훼는 '야훼 사바오트(Yahweh Sabaoth)', 곧 '군대의 신' 또는 '만군의 주'라 불렸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인들에게 전쟁이 세속적 활동이 아니라 신성시된 종교적 활동이었음을 보여준다. 전쟁은 야훼의 전쟁이었고, 이스라엘 군대는 야훼의 군대였다. 승리는 야훼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패배는 야훼를 배신한 결과로 해석되었다.


초기 시편과 노래들은 야훼를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한다. 출애굽기 15장의 '미리암의 노래'는 이를 잘 보여준다:

"야훼는 용사시로다, 야훼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야훼는 바다를 가르고, 적군을 물리치며,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강력한 신이었다.


창조 신화와 혼돈과의 전쟁

초기 이스라엘 신앙은 주변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의 신화적 요소를 수용하여 야훼의 권능을 설명했다. 특히 혼돈과의 전쟁 모티프가 중요했다.

가나안의 신화에서 폭풍의 신 바알은 바다의 신 얌(Yam)과 싸워 승리하고 왕이 된다. 이스라엘인들은 유사한 구조를 야훼에게 적용했다. 시편과 예언서에는 야훼가 태초에 '레비아단(Leviathan)' 또는 '라합(Rahab)' 같은 바다의 용, 곧 혼돈의 상징들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세상을 창조하고 질서를 확립했다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시편 74편은 이렇게 노래한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주께서 레비아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이는 창조를 평화로운 말씀이 아니라 폭력적 정복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야훼는 혼돈의 세력을 물리적으로 제압하고 승리함으로써 질서를 수립한 전사 왕이다.


가나안 신 엘과의 결합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은 가나안의 지고신 '엘(El)' 신앙과 융합되었다. 창세기의 족장 이야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느님을 '엘 샤다이(El Shaddai, 전능하신 하느님)', '엘 엘리온(El Elyon,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등으로 부른다. 이는 모두 엘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출애굽기 6장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엘 샤다이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 야훼로는 그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야훼 신앙이 가나안의 엘 신앙을 흡수하고 통합했음을 시사한다.

엘은 원래 온화하고 자비로운 아버지 신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야훼와 결합되면서, 야훼는 엘의 창조주이자 아버지로서의 측면과 전쟁의 신으로서의 측면을 모두 갖게 되었다. 이 긴장은 이스라엘 종교의 발전 과정에서 점차 해소되어 간다.


언약의 궤와 초기 제의

초기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은 성전이 아니라 '언약의 궤(Ark of the Covenant)'였다. 언약의 궤는 야훼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상자로, 그 안에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들어 있었다.

언약의 궤는 전쟁터에 함께 나갔다. 사무엘상 4장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과 싸울 때 언약의 궤를 전장으로 가져온다.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땅이 울릴 만큼" 큰 함성이 일어났고, 블레셋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언약의 궤는 야훼의 현존을 나타내며, 군사적 승리를 보장하는 상징이었다.


또한 초기 이스라엘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건립되기 전, 세겜, 길갈, 실로, 베델, 헤브론 등 여러 지역 성소에서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분산된 제의 중심은 후에 요시야 왕의 개혁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통합되지만, 초기에는 각 지역의 성소가 독립적으로 기능했다.

제의의 핵심은 희생 제사였다. 소, 양, 염소 등을 제물로 바쳐 야훼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죄를 속죄하며, 복을 구했다. 이는 신을 달래고 은혜를 얻는 거래적 종교관을 반영한다.


평등주의적 사회 구조

흥미롭게도, 초기 이스라엘 사회는 비교적 평등주의적이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기원전 1200년경 가나안 고지대에 형성된 이스라엘 마을들에는 성벽, 왕궁, 대규모 신전이 없었다. 집들은 크기가 비슷했고, 사치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초기 이스라엘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계층적 제국 사회와는 다른, 부족 연합에 기초한 평등한 공동체였음을 시사한다. 사사기는 이 시기를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고 묘사한다. 야훼만이 왕이었고, 인간 왕은 없었다.


그러나 이 평등주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블레셋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왕정이 수립되었고(사울, 다윗, 솔로몬), 사회는 점차 계층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예언자들의 비판의 표적이 된다.

2. 예언자 혁명: 제의에서 정의로

8세기의 전환점

기원전 8세기는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 시기에 문서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종교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했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같은 예언자들은 제의 중심의 종교를 비판하고, 사회적 정의와 윤리를 강조했다.

이 시기 북이스라엘(여로보암 2세, 기원전 786~746년)과 남유다(웃시야, 기원전 783~742년)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무역이 번창하고 도시가 성장했다. 그러나 이 번영은 사회 전체에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 부는 상층 계급에 집중되었고, 빈부 격차는 극심해졌다.


지방의 소농들은 과중한 세금과 강제 노동에 시달렸다. 채무 때문에 땅을 잃고 소작농이나 노예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정은 부패했고, 뇌물을 받는 판사들은 가난한 자의 권리를 무시했다. 사회적 약자인 과부, 고아, 외국인 거주자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러한 불의를 자행하는 부유층은 동시에 종교적으로 매우 열심이었다. 그들은 성소에 자주 가서 호화로운 제사를 드렸고, 많은 제물을 바쳤으며, 축제를 성대하게 지켰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열성이 사회적 불의를 상쇄한다고 생각했다.

예언자들은 바로 이 위선을 폭로했다.


아모스: 정의의 선포자

아모스(기원전 760년경)는 유다의 드고아 출신 목자였지만, 북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직업적 예언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는 선지자도 아니요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되, 야훼께서 나를 양 떼를 따르는 중에서 취하시며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아모스 7:14-15)


아모스의 메시지는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는 부유층의 사회적 불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아모스 2:6-7)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아모스 5:11)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모스가 이러한 불의를 자행하는 자들의 제의를 야훼가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아모스 5:21-23)

이것은 혁명적 선언이었다. 예언자는 종교 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제의는 이스라엘 종교의 핵심이었는데, 야훼가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훼는 무엇을 원하는가? 아모스는 명확하게 답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정의(mishpat-미쉬파트)와 공의(tsedaqah-째다카)—이것이 야훼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정의는 법적 공정성, 특히 약자의 권리 보호를 의미한다. 공의는 올바른 관계, 특히 가난한 자에 대한 의무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가 "물 같이"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는 사회—그것이 야훼가 원하는 것이다.

아모스는 종교를 윤리의 문제로 재정의했다. 진정한 종교는 제의가 아니라 정의다. 신을 경배하는 방법은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보호하고 약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호세아: 헤세드의 신학

호세아(기원전 750년경)는 아모스와 동시대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 그의 메시지는 아모스와 유사하지만, 어조는 더 개인적이고 감정적이다.


호세아의 예언은 그의 비극적인 결혼 경험에서 시작된다. 그는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들과 간음했다. 호세아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비유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야훼의 신부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알을 따라 음행했다. 바알 숭배는 단순한 다신교가 아니라, 언약에 대한 배신, 곧 간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는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한다. 호세아가 고멜을 다시 받아들였듯, 야훼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린다.


호세아는 아모스처럼 제의를 비판했다:

"나는 인애(hesed)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6)

'헤세드(hesed)'는 번역하기 어려운 히브리어다. 그것은 사랑, 자비, 충성, 언약적 헌신을 모두 포함한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의 신실함이다. 야훼는 제물이 아니라 헤세드를 원한다. 곧, 타인에 대한 자비와 충성, 특히 약자에 대한 돌봄을 원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단순한 지적 지식이 아니다. 성서에서 '안다(yada)'는 친밀한 관계적 앎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호세아는 종교를 거래적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로 재정의했다.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주인과 종, 신과 숭배자의 관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적 의무의 이행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과 헌신이다.


이사야: 정의 없는 제의는 가증하다

이사야(기원전 740~700년경)는 남유다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예언자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보이며, 왕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의 예언은 국제 정치와 신학적 통찰을 결합한다.


이사야도 선배 예언자들처럼 제의를 비판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이사야 1:11-13)


야훼는 제물에 "배불렀다." 제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제의와 불의가 공존하는 것을 야훼는 "견디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이사야 1:16-17)


이사야의 요구는 구체적이다.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고, 정의를 구하고, 학대받는 자를 돕고, 고아와 과부를 변호하라. 이것이 진정한 종교다.

이사야는 또한 메시아적 비전을 제시했다. 미래에 다윗의 후손 중에서 이상적인 왕이 나타나, 정의와 공의로 다스릴 것이다:

"그가 가난한 자를 공의로 심판하며 세상의 겸손한 자를 정직으로 판단할 것이며..."(이사야 11:4)


이 메시아 왕국에서는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임한다:

"그들이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


미가: 야훼가 요구하는 것

미가(기원전 730~700년경)는 이사야와 동시대인이지만,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골 출신이다. 그는 지방 농민의 시각에서 사회적 불의를 고발했다.


미가의 가장 유명한 구절은 종교의 본질을 간결하게 요약한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세 가지 요구: 정의를 행하고(mishpat), 헤세드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라. 이것이 전부다. 제물도, 제의도, 성전도 언급되지 않는다. 종교는 윤리적 삶으로 환원된다.


예언자 혁명의 의의

8세기 예언자들은 종교의 중심을 제의에서 윤리로 완전히 이동시켰다. 이는 단순한 강조점의 변화가 아니라, 종교의 본질에 대한 재정의였다.

첫째, 신이 원하는 것의 재정의다. 신은 제물이 아니라 정의를 원한다. 신을 기쁘게 하는 방법은 성전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다.

둘째, 종교의 사회화다. 종교는 더 이상 개인과 신의 사적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셋째, 약자 중심의 윤리다. 예언자들은 반복적으로 과부, 고아, 외국인 거주자, 가난한 자를 언급한다. 사회의 가장 약하고 무력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그 사회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넷째, 권력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다. 예언자들은 왕, 귀족, 사제, 부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비판했다. 그들은 권력자들에게 그들의 권력이 도덕적 책임과 함께 온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이러한 예언자적 전통은 이스라엘 종교를 다른 고대 종교들과 구별하는 독특한 특징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후에 기독교와 이슬람교에도 계승되어, 사회 정의를 강조하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공통 유산이 되었다.

3. 바빌론 유수: 신앙의 내면화

국가적 파국

기원전 587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 일어났다.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한 끝에 함락시켰다. 성전은 파괴되고 불태워졌다. 왕과 귀족, 사제, 장인 등 지도층은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다윗 왕조는 끝났다. 약속의 땅에서 쫓겨났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군사적 패배가 아니라, 신학적 위기였다. 전통적 신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신이며,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신다고 믿었다. 그런데 성전이 파괴되었다. 야훼는 어디로 갔는가? 바빌론의 신 마르둑이 야훼보다 강한가? 언약은 파기된 것인가?


일부는 절망했다. 에스겔 37장은 유배민들의 탄식을 기록한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며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시편 137편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우는 유배민들을 묘사한다: "우리가 바빌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러나 위기는 또한 기회였다. 바빌론 유수는 이스라엘 종교를 더 깊고 보편적인 신앙으로 변화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예레미야: 마음에 새긴 법

예레미야(기원전 627~587년경)는 예루살렘 함락 전후에 활동한 예언자다. 그는 바빌론의 침공을 야훼의 심판으로 해석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하고 우상을 숭배했으므로, 야훼가 바빌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심판 너머 회복의 희망을 보았다. 그는 '새 언약(New Covenant)'을 예언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임이라"(예레미야 31:33-34)


이것은 혁명적 비전이었다. 옛 언약은 시내 산에서 돌판에 새겨졌다. 그것은 외적이고 객관적이었다. 그러나 새 언약은 "마음에 기록"된다. 그것은 내적이고 주관적이다.


옛 언약은 사제와 교사를 통해 매개되었다. 새 언약에서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가 직접 야훼를 안다. 중재자가 필요 없다. 각 개인이 하나님과 직접적 관계를 맺는다.

이는 종교를 집단적 의례에서 개인적 신앙으로 이동시켰다. 성전이 없어도, 제사장이 없어도, 제물이 없어도, 개인은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종교의 본질은 외적 형식이 아니라 내적 태도다.


에스겔: 하나님의 영광의 이동

에스겔(기원전 593~571년경)은 바빌론 유배지에서 활동한 사제 출신 예언자다. 그의 예언은 환상으로 가득하며, 상징적이고 때로는 기이하다.

에스겔의 첫 환상(에스겔 1장)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바빌론에서 야훼의 영광을 보았다. 네 생물(나중에 그룹으로 확인됨)이 끄는 전차 위에 보좌가 있고, 그 위에 인간 형상 같은 존재(야훼)가 앉아 있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야훼가 바빌론에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유배민들과 함께 바빌론까지 오셨다. 야훼는 특정 장소에 갇혀 있는 신이 아니라, 어디든 가실 수 있는 보편적 신이다.

에스겔 8-11장은 더 놀라운 환상을 기록한다. 에스겔은 영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성전에서 행해지는 우상 숭배를 목격한다. 그리고 야훼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것을 본다. 야훼의 영광은 성소에서 나와, 성전 문턱으로, 그리고 도시 동쪽 산으로 이동한 후 사라진다.

이것은 심판의 환상이다. 이스라엘의 불신실함 때문에, 야훼가 성전을 버리신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해방의 환상이기도 하다. 야훼는 성전 건물에 갇혀 있지 않다. 야훼는 자유롭게 움직이시며, 필요하다면 성전을 떠날 수도 있다.


에스겔은 또한 개인 책임의 원리를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은 집단적 책임을 믿었다. 아버지의 죄가 자손에게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스겔은 선언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에스겔 18:20)

각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진다. 이는 종교를 개인화하는 또 다른 단계였다.


제2이사야: 보편적 유일신교

이사야 40-55장(제2이사야 또는 익명의 이사야)은 바빌론 유수 말기(기원전 540년경)에 기록되었다. 이 부분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시작한다: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라..."(이사야 40:1-2)


제2이사야는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를 야훼가 기름 부은 자(메시아!)로 선언한다. 고레스는 바빌론을 정복하고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제2이사야의 신학이다. 그는 야훼를 이스라엘만의 신이 아니라, 우주의 유일한 하나님으로 선언한다: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이사야 45:5-6)


이것은 단순한 유일신교(monolatry,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되 하나만 숭배함)가 아니라, 엄격한 유일신교(monotheism, 오직 한 신만 존재함)다. 다른 신들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상, 곧 인간이 만든 무력한 형상일 뿐이다.


제2이사야는 우상을 조롱한다:

"그는 그 나무의 일부분으로는 불을 사르고 그것으로 고기를 삶아 배불리 먹기도 하며...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가 숭배하는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게 엎드려 절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이사야 44:16-17)


같은 나무의 일부는 불을 지피는 데 쓰고, 나머지로는 신을 만든다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제2이사야는 또한 야훼의 구원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 미친다는 보편주의적 비전을 제시한다:


"땅 끝의 모든 백성들아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이사야 45:22)

고난받는 종: 비폭력적 구원

제2이사야의 가장 신비로운 부분은 '고난받는 종(Suffering Servant)' 노래들이다(특히 이사야 52:13-53:12). 이 노래들은 무명의 종이 고난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구원한다고 묘사한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3-5)


이 종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전체인가? 충실한 남은 자들인가? 미래의 메시아인가? 예언자 자신인가?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제시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것이 전통적인 승리의 신학과 정반대라는 점이다. 초기 이스라엘은 야훼를 전쟁의 신으로, 적을 물리치는 강력한 전사로 이해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력하고 고난받는 종이 구원의 도구가 된다.

종은 폭력으로 저항하지 않는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7)


이것은 비폭력적 저항의 신학이다. 악에 대한 대응이 더 큰 폭력이 아니라, 고난의 수용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고난이 구원을 가져온다.

이 이미지는 후에 기독교에서 예수 이해의 핵심이 되었다. 예수는 고난받는 종으로 이해되었고, 그의 십자가 죽음은 대속적 고난으로 해석되었다.


유수의 유산

바빌론 유수는 이스라엘 종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첫째, 성전 없는 신앙이 가능해졌다. 제의는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았다. 기도, 토라 연구, 윤리적 삶이 제의를 대체했다. 이는 후에 랍비 유대교의 토대가 되었다.

둘째, 개인화와 내면화가 진행되었다. 종교는 집단적 의례에서 개인적 신앙과 도덕적 책임으로 이동했다.

셋째, 유일신교의 확립이 이루어졌다. 야훼는 이스라엘만의 신에서 우주의 유일한 하나님으로 격상되었다.

넷째, 보편주의가 발전했다. 구원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다.

다섯째, 고난 신학이 형성되었다. 고난은 단순히 피해야 할 악이 아니라, 의미와 목적을 가질 수 있다. 고난은 정화와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다.

4. 토라: 책의 종교

요시야의 개혁과 신명기

토라(Torah, 율법 또는 가르침)는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가리킨다. 이 다섯 권의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전승들이 편집되어 형성되었다.

중요한 전환점은 기원전 622년 요시야 왕의 개혁이었다. 열왕기하 22장에 따르면, 성전을 수리하던 중 사제 힐기야가 "율법책(Book of the Law)"을 발견했다. 이 책을 읽은 요시야 왕은 옷을 찢고 회개했다. 그는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학자들은 이 "율법책"이 신명기의 핵심 부분(12-26장)이었을 것으로 본다. 신명기는 예루살렘 성전 외의 모든 제의 장소를 폐지하고, 중앙 성소에서만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한다. 요시야는 이에 따라 지방의 산당들을 파괴하고, 예루살렘을 유일한 합법적 예배 장소로 만들었다.

신명기는 또한 사회적 정의를 강조한다. 가난한 자, 과부, 고아, 외국인 거주자를 보호하는 법들이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 7년마다 빚을 탕감하고(신명기 15:1-11), 50년마다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돌려주며(레위기 25:8-55), 추수할 때 밭 모퉁이를 남겨두어 가난한 자가 이삭을 줍게 하라(레위기 19:9-10)는 등의 법은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시도였다.


유수 기간의 편집

바빌론 유수 기간과 그 직후, 토라의 최종 편집이 이루어졌다. 에스라(기원전 5세기)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느헤미야 8장은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 공동체 앞에서 토라를 낭독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아침부터 정오까지 낭독이 계속되었고, 레위인들이 해석을 제공했다. 백성들은 울며 회개했다.

이 사건은 상징적이다. 토라가 이제 공동체의 헌장, 곧 정체성의 기초가 되었다. 유대인은 혈연이나 영토가 아니라, 토라를 따르는 사람들로 정의되었다. 토라는 성전을 대체했다.


책의 종교

유대교는 '책의 종교(Religion of the Book)'가 되었다. 이는 여러 면에서 혁명적이었다.

첫째, 이동 가능성이다. 성전은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책은 어디든 가지고 갈 수 있다. 유대인들이 디아스ㅌ포라(흩어짐)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토라 덕분이다.

둘째, 민주화이다. 성전 제의는 사제의 전문 영역이었다. 그러나 토라는 누구나 읽을 수 있다. 물론 해석에는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원칙적으로 토라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셋째, 지적 종교가 되었다. 종교 활동의 중심이 제물 바치기에서 연구와 토론으로 이동했다. 회당(synagogue)은 희생 제사가 아니라 토라 낭독과 기도의 장소가 되었다. 랍비(선생)는 제사장이 아니라 토라 학자가 되었다.

넷째, 해석의 전통이 발전했다. 토라는 고정된 텍스트이지만, 해석은 계속 진화한다. 미슈나, 탈무드, 미드라쉬 등 방대한 해석 문헌이 생겨났다. 유대교는 살아있는 해석 전통이 되었다.


황금률과 토라의 본질

축의 시대가 끝날 무렵, 랍비 힐렐(기원전 110년~서기 10년)은 토라의 본질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탈무드(샤바트 31a)는 이 유명한 일화를 기록한다:

한 이방인이 힐렐에게 왔다. "내가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를 가르쳐 주시오." 힐렐은 대답했다: "네게 미운 일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 전체다. 나머지는 그에 대한 주석일 뿐이다. 가서 배우라."

이것은 황금률의 부정형이다(긍정형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힐렐은 토라의 613개 계명을 이 한 원칙으로 환원했다. 모든 법은 이 핵심 원리의 적용이다.

이는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일치한다. 아모스의 정의, 호세아의 헤세드, 미가의 요구는 모두 황금률의 다른 표현이다.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타인에게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는 것—이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예수(기원전 4년~서기 30년경)도 유사한 요약을 제시했다. 율법학자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자, 예수는 대답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미워할 수 없다. 요한일서는 이를 명확히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요한일서 4:20)

5. 현대적 유산과 의의

사회 정의 전통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확립한 사회 정의 전통은 서구 문명의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중세와 근대 초기에는 이 전통이 약화되었지만, 19세기 사회복음 운동에서 재발견되었다.

20세기 민권 운동의 지도자들, 특히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명시적으로 예언자 전통을 계승했다. 킹의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은 아모스를 인용한다: "정의가 물처럼 흘러내리고,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바랍니다."

해방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등 20세기 후반의 다양한 신학 운동들도 예언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모두 종교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불의에 무관심할 수 없으며, 약자와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 사상의 종교적 토대

현대 인권 사상은 표면적으로는 세속적이지만, 그 뿌리는 종교적이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생각은 창세기의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개념에서 유래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므로, 본질적 가치와 존엄을 갖는다.

예언자들의 메시지—과부, 고아, 외국인, 가난한 자를 보호하라—는 현대 인권법의 선구다. 유엔 세계인권선언의 많은 조항들(생명권, 자유권, 법 앞의 평등, 사회보장권 등)은 예언자적 정의 개념과 공명한다.


정교 분리와 예언자적 비판

흥미롭게도 예언자 전통은 정교 분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예언자들은 권력의 외부에서 권력을 비판했다. 그들은 왕실이나 성전 체제에 속하지 않았고(아모스는 직업적 예언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었다.

이는 종교가 국가 권력과 결합하면 예언자적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국교가 된 종교는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기 쉽다. 예언자적 종교는 항상 권력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비폭력과 고난의 신학

제2이사야의 고난받는 종 이미지는 비폭력 저항의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간디와 킹은 모두 비폭력 철학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기독교의 고난 신학에 영향을 받았다.

악에 대한 대응이 더 큰 폭력이 아니라 고난의 수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역설적이지만 강력하다. 폭력은 폭력을 낳지만, 비폭력적 고난은 가해자의 양심을 일깨울 수 있다.

물론 이 신학은 위험할 수 있다. 억압받는 자에게 순종과 인내를 강요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따라서 고난 신학은 항상 정의 추구와 결합되어야 한다. 불의한 고난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유일신교의 양면성

이스라엘이 발전시킨 유일신교는 인류 사상사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유일신교이며,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 종교들 중 하나를 따른다.

유일신교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첫째, 보편주의를 촉진한다. 하나님이 하나라면, 모든 인류는 하나의 하나님 아래 형제자매다. 둘째, 절대적 윤리 기준을 제공한다. 하나님의 뜻은 문화나 시대를 초월한다. 셋째, 우상 숭배를 비판한다. 어떤 피조물(권력, 돈, 국가 등)도 신격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부정적 측면도 있다. 유일신교는 배타성과 불관용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우리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다"는 주장은 쉽게 "다른 종교는 거짓이다"로 이어진다. 역사상 많은 종교 전쟁과 박해가 유일신교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축의 시대의 정신은 이러한 배타성을 완화한다. 황금률, 공감, 자비는 종교적 경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다. 힐렐이 토라를 황금률로 요약했듯, 우리는 유일신교의 본질을 타자 사랑으로 이해해야 한다.

결론: 예언자의 꿈

이스라엘 종교의 여정은 인류 영성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혁 중 하나다. 전쟁의 신 야훼에서 출발하여, 예언자들의 혁명을 통해 정의의 하나님으로, 바빌론 유수를 거쳐 보편적 유일신으로 진화했다. 제의 중심 종교에서 윤리 중심 종교로, 집단적 의례에서 개인적 신앙과 사회적 책임으로, 민족적 신에서 우주의 하나님으로 확장되었다.

예언자들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에도 생생하다. 아모스의 정의에 대한 열정, 호세아의 헤세드, 이사야의 평화 비전, 예레미야의 새 언약, 제2이사야의 고난받는 종—이 모든 이미지와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도전하고 영감을 준다.


현대 세계는 예언자들이 비판했던 것과 유사한 문제들로 가득하다. 극심한 불평등, 권력의 남용, 약자에 대한 억압, 형식적 종교성과 도덕적 공허함의 공존. 예언자들이라면 오늘날 무엇을 말할까?

아마도 그들은 여전히 같은 메시지를 외칠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종교 활동에 관심 없다. 하나님은 정의를 원한다. 가난한 자를 돌보라.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라. 외국인을 환대하라. 과부와 고아를 보호하라. 정의를 물처럼 흐르게 하라.

그리고 그들은 묻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 편인가? 권력자와 부자의 편인가, 아니면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인가? 당신의 종교는 현상 유지를 정당화하는가, 아니면 변혁을 요구하는가?

힐렐의 황금률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간단하지만 깊은 답을 제공한다. 네게 미운 일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주석이다.


이 단순한 원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착취는 불가능해진다(나는 착취당하기 싫으므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나는 폭력당하기 싫으므로). 차별은 용납될 수 없다(나는 차별받기 싫으므로). 무관심은 죄가 된다(나는 내가 고통받을 때 남들이 무관심하기를 원치 않으므로).

예언자들의 꿈은 이 황금률이 개인 윤리를 넘어 사회 구조가 되는 것이었다. 정의가 물처럼 흐르는 사회, 헤세드가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되는 공동체, 고아와 과부가 보호받는 나라, 외국인이 환대받는 세계.


이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우리를 부른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가 말했듯, 완덕을 향한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각 세대는 정의를 향해, 자비를 향해, 하나님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완성된 시스템이 아니라, 끝없는 과제다. 정의를 추구하라. 헤세드를 사랑하라.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라.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것이 2700년 전 예언자들이 발견한 진리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류가 추구해야 할 길이다.


시리즈 원문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https://starlightkimgyu.tistory.com/entry/%EC%B9%B4%EB%A0%8C-%EC%95%94%EC%8A%A4%ED%8A%B8%EB%A1%B1%EC%9D%98-%EC%B6%95%EC%9D%98-%EC%A2%85%EA%B5%905-%EC%9D%B4%EC%8A%A4%EB%9D%BC%EC%97%98-%EC%A2%85%EA%B5%90%ED%8E%B8-%EC%98%88%EC%96%B8%EC%9E%90-%EA%B8%B0%EB%A1%9D%EC%9D%98-%EC%A2%85%EA%B5%90-%EC%9C%A0%EB%8C%80%EA%B5%90%EC%99%80-%EA%B8%B0%EB%8F%85%EA%B5%90%EC%9D%98-%EB%B0%9C%EC%A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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