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저기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을 때

에드워드 사이드와 한나 아렌트로 읽는 '뿌리 뽑힘'의 서러움

by 광규


여기도 저기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을 때

에드워드 사이드와 한나 아렌트로 읽는 '뿌리 뽑힘'의 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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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의 밤거리,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를 걷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짙은 이방인의 감각에 사로잡힌 적이 있으신지요. 더 나은 삶을 좇아 고향을 떠나 타지의 좁은 방에서 밥벌이를 하는 수많은 청년들, 혹은 오랫동안 몸담고 헌신했던 익숙한 세계의 질서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망연히 바라봐야만 했던 이들.


세계화라는 거대한 물결은 물리적인 국경을 가볍게 허물어버렸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내면의 깊은 안식처마저 고스란히 휩쓸어 가버렸습니다. 내 두 발은 분명 단단한 아스팔트 위를 딛고 서 있는데, 마음은 어느 곳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고 거친 바다 위를 부유하는 듯한 헛헛함.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일까요.




영적인 디아스포라, 고향을 상실한 자들

팔레스타인 출신의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는 평생을 두 세계의 경계인으로 살아야 했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망명(Exile)'의 본질을 사유했습니다. 오늘날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의 끊임없는 긴장과 분쟁의 역사 속에서 고향을 잃고 떠도는 수많은 난민들의 슬픔은, 단지 먼 이국의 뉴스 화면 속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사이드는 망명객의 삶을 가리켜 "인간과 그의 자생적 장소 사이, 자아와 그 진정한 고향 사이에 강제로 파인 치유 불가능한 균열"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쟁의 포화를 피해 국경을 넘는 정치적 난민은 아닐지언정, 숨 가쁘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정서적 고향을 잃어버린 '문화적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기억하던 다정한 골목길은 차가운 빌딩 숲으로 대체되고, 평생을 바쳐 묵묵히 익혔던 노동의 기술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습니다. 낡은 것들은 너무도 빨리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에는 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서글픈 과도기. 시대의 맹렬한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등 떠밀리듯 낯선 곳으로 내몰린 현대인은 누구나 이 영적인 의미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앓고 있는 셈입니다.




텅 빈 시대의 공백을 채우려는 몸부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고향을 잃어버린 난민의 상태를 '권리를 가질 권리'마저 박탈당한 절대적 무력함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소속될 안전한 공동체가 없다는 것은, 나를 나로서 온전히 증명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이 텅 빈 시대의 공백 속에서, 현대인들은 소속감의 부재가 주는 그 뼈시린 한기를 어떻게든 견뎌내려 안간힘을 씁니다.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알량한 안도감을 얻기 위해 맹목적으로 특정 집단의 극단적인 혐오 논리에 동조하기도 하고,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화려한 브랜드의 로고 뒤로 자신의 남루한 정체성을 다급히 숨기려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뿌리 뽑힌 영혼의 빈자리는 결코 그런 가벼운 소비나 얄팍한 배타주의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계선 위에서 피어나는 복수적인 시각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이 넓은 세계 어디에도 온전히 내 자리라 부를 곳이 없다는 사실에 깊은 절망을 느끼는 밤이라면, 에드워드 사이드가 남긴 조용한 위로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고향을 상실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으로 '복수적인 시각(Plural vision)'을 이야기했습니다. 하나의 세계에 맹목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경계선 위에서 두 세계의 모순을 동시에 꿰뚫어 볼 수 있는 서늘하고도 맑은 눈 말입니다.


비록 우리는 온전한 닻을 내리지 못해 늘 흔들릴지언정, 그 서러운 흔들림 덕분에 타인의 낯선 고통에 부드럽게 공명할 수 있는 마음의 결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도 저기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몹시도 서글픈 날, 나와 같이 길을 잃고 서성이는 또 다른 이방인에게 가만히 따뜻한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부서진 세계의 경계선 위에서 맞잡은 두 손의 온기만이,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유일하고도 진실한 고향이 되어줄 것입니다.




[다음 글 예고] 물리적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는, 이제 디지털이라는 기이한 바다 위를 끝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제9화에서는 스튜어트 홀과 호미 바바의 시선을 빌려 묻습니다. "여러 개의 페르소나, 진짜 나는 누구일까?"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많은 부캐(부캐릭터) 사이에서 길을 잃은 우리의 조각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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