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와 알고리즘이 빚어낸 '탈진실'의 서글픈 풍경
명절날 오랜만에 마주 앉은 가족들의 식탁이, 텔레비전 뉴스 채널 하나로 인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는 풍경을 우리는 종종 보고는 합니다. 또는 오랜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인식의 깊은 골짜기를 발견하고는 씁쓸히 입을 다물어버린 적도 있으실 겁니다.
각자가 쥐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 속 세상은 너무도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서로 다른 우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말이 엇갈립니다. 내가 보는 유튜브 피드와 소셜 미디어에는 나의 생각에 박수를 쳐주는 영상과 글들로만 가득한데, 화면 밖의 현실은 왜 이토록 날 선 적대감과 혐오로 가득한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결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거대한 바벨탑의 시대에 서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혹은 알고리즘이 만든 틀 속에 갇힌 모습니다.
우리는 바야흐로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의 신념과 감정이 진실을 규정하는 이 기이한 시대의 중심에는, 우리의 욕망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차가운 '알고리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대 IT 기업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불편해할 만한 다른 생각들은 친절하게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오직 우리의 입맛에 맞는 달콤한 정보들만 끊임없이 떠먹여 줍니다.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는 투명하고 안락한 감옥입니다. 그 창문 없는 방 안에서 우리는 "내 생각이 맞았어"라며 한없이 위로받고 안전함을 느끼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방의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향해 맹렬한 적의를 쏟아내게 됩니다. 의도치 않더라도 달콤한 확증편향을 입 안에 밀어넣어주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끔찍한 맹신과 광기가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는지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녀는 촘촘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고립되고 파편화된 대중, 즉 '원자화된 개인'들이야말로 극단적인 선동과 흑백논리에 가장 취약하다고 진단합니다.
"현실의 복잡함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깊은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는 대중은,
차라리 일관되고 단순한 허구를 진실로 믿어버리기를 선택한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중
이 뼈아픈 통찰은 오늘날 우리가 왜 그토록 쉽게 확증 편향에 갇히고 가짜 뉴스에 휩쓸리는지를 서글프게 설명해 줍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 모멸감, 세상 그 누구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짙은 고독 속에서 현대인은 참으로 무력합니다.
그 복잡하고 지난한 현실의 짐을 견뎌내는 대신, 차라리 누군가를 명확한 '악'이나 '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단순하고 선명한 세계관 속으로 도피해 버리는 것입니다. 너무나 편리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무감각해집니다. 바로 영혼을 병들게 하는 끔찍한 폭력성에 무감각해집니다.
신학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양심을 신앙을 날카롭게 하는 숯돌이다.” 오늘날 전통적 신앙의 자리를 이념과 사상이 대체하고, 또한 여러 신흥 종교가 등장하는 시대에서도 이 말이 유효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바로 ‘옳다 생각한 바’를 바로 세우려면 무엇보다 ‘양심’을 잊어 버려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좁은 진실 안에 갇히려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이 세상이 두렵고 외롭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혐오의 시대는,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던 성과사회의 피로감(1부)과 기만적인 능력주의 속에서 겪은 구조적 절망(2부)이 낳은 참담한 결과물입니다. 삶의 뿌리가 흔들리고 생존이 위태로운 사람들은, 나와 다른 타자를 가만히 헤아리고 환대할 마음의 여백을 가지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알고리즘이 지어준 이 다정하고도 끔찍한 감옥에서 걸어 나오기 위해서는, 기꺼이 낯설고 불편한 것들과 부딪히는 '마찰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의 목소리를 "저들은 틀렸다"며 즉각적으로 차단하는 대신, 그가 왜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삶의 서러운 맥락을 가만히 더듬어 보려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진실은 결코 매끄럽고 편안한 얼굴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진리가 배타적이라면, 진실은 때로는 폭력적입니다. 진실은 우리의 현실인식을 사포질합니다. 그것은 타인과의 거친 부딪힘 속에서, 그리고 내 안의 낡은 신념이 깨어지는 뻐근한 아픔 속에서만 비로소 희미하게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오늘 하루는 나의 작고 안전한 우주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뎌,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의 서툰 안부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그 서툰 경청이, 산산조각 난 이 세계를 다시 이어 붙이는 거룩한 접착제가 될 것입니다.
[다음 글 예고] 이로써 우리는 개인의 내면을 넘어, 사회 시스템이 안겨준 절망과 분열의 문제(2부)를 모두 마주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여정은 제3부 [경계의 상실]로 향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당신을 맞이하려 합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댓글은 제게도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