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어트 홀과 호미 바바가 건네는 '조각난 자아'를 위한 위로
스튜어트 홀과 호미 바바가 건네는 '조각난 자아'를 위한 위로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화면을 조용히 넘겨봅니다. 별 의미 있는 행동은 사실 아닙니다. 그래도 애써 무언가를 찾으려는걸까요? 무심한 눈동자 너머로 손가락이 넘겨주는 화면이 이리저리 떠오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전혀 다른 우주를 넘나들며 살아갑니다. 직장 동료들이 있는 메신저 창에서의 '깍듯하고 유능한 나',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거침없이 속내를 쏟아내는 '날 선 나', 그리고 소셜 미디어 피드 위에서 정갈한 음식과 함께 무해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우아한 나'. 눈치를 채셨나요? 오늘은 ‘나’라는 우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화면을 넘길 때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옷을 입은 듯 전혀 다른 표정의 내가 나타났다 사라집니다. 그 수많은 나의 파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가슴 한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도대체 이 수많은 가면 중에서 진짜 나의 얼굴은 무엇일까. 나는 혹시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바야흐로 '부캐(부캐릭터)'와 다중 페르소나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상황과 관계에 맞춰 마치 능숙한 배우처럼 자신의 성격과 말투를 자유롭게 변형합니다. 어느새 이러한 유연함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필수적인 생존 능력이자 매력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하고 매끄러운 변신의 이면에는 짙은 피로와 실존적인 혼란이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시스템의 요구에 맞춰 나를 쪼개어 쓰는 동안, 우리 내면의 깊은 중심은 길을 잃고 표류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하나의 자아'를 가져야 한다는 오랜 믿음과, 매 순간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깊은 분열의 통증을 앓습니다.
영국의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은 중심을 잃고 헤메이는 우리에게 다정한 지혜의 빛을 비춰줍니다. 그가 이야기 하기를, 정체성이란 태어날 때부터 우리 내면에 고정되어 있는 '불변의 본질'이 따위가 아닙니다.
여기서 정체성은 멈춰 있는 고체(固體)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형성되어 가는 역동적인 '과정'입니다. 우리는 단단하게 굳어버린 바위가 아니라, 여러 갈래의 낯선 물줄기가 만나고 부딪히며 흘러가는 굽이치는 강물에 가깝습니다. 내가 여러 갈래의 물줄기라니, 이 발상이 참 흥미롭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 안에 여러 개의 모순된 자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코 우리가 망가졌거나 위선적이라는 증거가 아닌게 되는 셈이지요. 비록 흔들리고,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정체성이란 우리가 타인과 세계를 만나며 끊임없이 자신을 빚어내고 있는, 참으로 치열하고도 생명력 넘치는 흔적인 것입니다. 멋진 사람을 설명할 때에 으레 붙는 ‘한결 같다’와는 사뭇 다른 형태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인도 출신의 사상가 호미 바바(Homi Bhabha)의 통찰을 포개어 보면 또 좋은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문화와 이질적인 자아들이 부딪히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제3의 공간(Third Space)'이라 불렀습니다.
이름이 제3의 공간이라 하여서, 이곳이 이도 저도 아닌 서글프고 불안한 주변부라고 봐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이곳은 하나의 낡은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내 안의 다양한 파편들을 엮어 전혀 새롭고 입체적인 자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맑고 역동적인 성소(聖所)입니다. 우리가 여러 페르소나 사이에서 겪는 그 어지러운 혼란은, 곧 새로운 나로 도약하기 위한 거룩한 진통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그러니 하나의 완벽하고 순수한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는 무거운 강박에서 이제 그만 스스로를 놓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닿을 수 없는, 신기루나 무지개 같은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먹고살기 위해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던 비루한 당신도, 홀로 있는 어두운 방 안에서 남몰래 눈물짓던 연약한 당신도, 그리고 가상의 세계에서 얼굴 모르는 이들과 허물없이 웃고 떠들던 당신도, 모두 당신이라는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이루는 참으로 소중하고 빛나는 조각들입니다. 초라한 행색이 당신이란 소중함을 감히 침해하지 못합니다.
여러 개의 자아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의 삶은 결코 길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직조해 내는 눈물겹고도 장엄한 창조의 여정을 밟았습니다. 오늘 밤은 흩어진 당신의 여러 얼굴들을 거울 앞에 가만히 불러모아, 그 서툴고도 애달픈 수많은 '나'들에게 다정한 수고의 인사를 건네어 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다음 글 예고] 이로써 우리는 나의 내면과 사회 구조, 그리고 잃어버린 경계를 더듬어보는 여정(1~3부)을 무사히 지나왔습니다. 이제 시선은 가장 거대한 지평, 제4부 [인류의 황혼]을 향합니다.
인간을 넘어서려는 거대한 기술의 진보 앞에서 우리의 영혼은 무사할 수 있을까요? 제10화에서는 쇼샤나 주보프의 렌즈를 빌려 묻습니다. "내 욕망은 알고리즘이 설계한 것일까?" 감시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용히 증발시키고 있는지 그 서늘한 풍경을 마주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