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땀방울이 아파트 한 평의 그늘에 가려질 때

토마 피케티와 '벼락거지'가 된 우리의 짙은 상실감에 대하여

by 광규


노동자의 땀방울이 아파트 한 평의 그늘에 가려질 때

토마 피케티와 '벼락거지'가 된 우리의 짙은 상실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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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진 퇴근길,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날 때면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올려다보게 됩니다. 수천 개의 창문마다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오지만, 그 거대한 불빛의 장벽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종종 갈 곳을 잃고 한없이 작아지곤 합니다. 저 많은 집중에 내가 살 곳이 없다니, 내 처지가 참 처량하고 한심합니다.


누구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꿈을 꾸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확천금을 쫓으며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그런 요행과는 요원합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뿐이지요. 그저 묵묵히 땀 흘려 일하고, 조금씩 저축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저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는 소박하고 다정한 공간을 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끼고 모으며 성실하게 살아온 대가가 '벼락거지'라는 참담한 이름표로 돌아올 때, 우리는 깊은 허무의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단지 정직하게 오늘을 살았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빼앗긴 듯한 이 짙은 상실감은 어디에서 불어온 것일까요.


땀방울을 비웃는 자본의 속도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방대한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현대 자본주의가 숨기고 있던 차가운 진실 하나를 꺼내어 놓습니다. 그는 수백 년간의 방대한 경제 데이터를 분석한 끝에,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잔인한 부등식 하나를 제시합니다.

바로 $r > g$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언제나 높다)라는 공식입니다.


"과거에 축적된 부(자본)가 스스로 증식하는 속도는,
노동과 생산을 통해 얻는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를 언제나 압도한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불평등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기계다."
-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중


이 건조한 수식이 우리의 삶에 던지는 파장이 참으로 뼈아픕니다. 돈이 돈을 버는 속도를, 사람의 땀방울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고하는 것이니까요.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본이나, 운 좋게 올라탄 부동산의 가치가 폭등하는 동안 우리의 정직한 노동은 비웃음을 삽니다.


노동의 가치가 아파트 한 평의 가격표보다 한없이 초라해진 이 세계에서, 우리는 "열심히 일하라"는 세상의 훈계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온몸으로 뼈저리게 겪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부모를 원망하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자식에게 미안하고 싶겠습니까.


시대의 공백, 존엄을 잃어버린 세계

자산 격차가 만들어낸 이 거대한 양극화는 단지 통장 잔고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삶의 의미를 앗아가는 치명적인 '시대의 공백'을 만들어냅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서글픈 조어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이들이 지르는 절박한 비명입니다. 이번 열차에 타지 못하면 영원히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합니다. 금새 삶을 가꾸는 여유와 타인을 향한 환대는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인생의 가치를 오직 그가 소유한 아파트의 평수와 브랜드로만 달아보려는 천박한 물신주의 앞에서, 노동하는 인간의 고귀한 존엄은 소리 없이 바스러지고 맙니다.


콘크리트 신전을 넘어 연대의 숲으로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치솟는 그래프와 붉은 숫자들이 춤을 추는 이 혼란스러운 세계의 한복판에서, 당신의 묵묵한 일상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내 손에 쥔 노동의 몫이 한 줌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감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세상의 잣대가 아무리 비틀어져 있다 한들, 당신이 정직하게 흘린 그 맑은 땀방울의 가치마저 부정당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존엄과 생의 의미는 결코 저 차가운 콘크리트 벽돌의 가격표 따위로 매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본이라는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괴감의 동굴로 숨어드는 것도, 헛된 탐욕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기형적인 불평등의 구조를 직시하며 분노할 줄 아는 맑은 정신, 그리고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웃들과 눈을 맞추며 가만히 손을 맞잡는 작은 연대. 그것만이 자본이 만들어낸 이 시린 시대의 공백을 따뜻한 사람의 온기로 채워나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 것입니다.



[다음 글 예고]

지금까지 2부에서는 불평등과 계급, 노동과 자본이라는 차가운 구조의 문제를 직시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렇게 명백한 구조적 모순 앞에서도, 왜 우리는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서로를 혐오하며 끝없이 분열하고 있을까요?


제3부 [경계의 상실]을 여는 7화에서는, 한나 아렌트와 알고리즘의 세계를 교차하며 묻겠습니다. "우리는 왜 각자의 '진실' 안에서만 살고 싶어 할까?" 진실이 실종된 포스트 트루스의 시대를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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