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는 정말 내 노력 부족 때문일까

마이클 샌델과 부르디외로 읽는 '공정'이라는 서글픈 착각

by 광규

나의 실패는 정말 내 노력 부족 때문일까

마이클 샌델과 부르디외로 읽는 '공정'이라는 서글픈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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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이 내리는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방에서 무심코 열어본 이메일 속에는 또 한 통의 '불합격' 통보. 혹은 밤낮없이 땀 흘려 일했건만,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얄팍한 월급의 숫자를 보며 남몰래 한숨을 삼키기도 합니다.

우리네 인생, 우리의 신세. 걍팍한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여간 만만치 않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세상은 어찌 그리 빨리 바뀌고, 또 어찌그리 험하게 닦달하는지. 누군들 열심히 살고싶지 않겠습니다. 이미 우린 갖은 고생을 다 하는 중인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하나의 거대한 믿음을 종교처럼 주입받으며 자랐습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네가 흘린 땀방울만큼 반드시 보상받을 것이다."

참으로 눈부시고 정의로운 문장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번번이 무릎이 꺾일 때, 우리는 가만히 스스로를 향해 매서운 화살을 돌립니다.

"내가 덜 치열했던 탓일까?",

"남들 잘 때 잠을 줄이지 못해서, 내 노력이 아직 부족해서 이렇게 서성이는 걸까?"


깊은 자책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제가 나서서 따지듯 질문은 던지려 합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의 나태함만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요?'




공정함이라는 매혹적인 환상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기둥 중 하나는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입니다. 출신이나 배경, 신분과 상관없이 오직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사회적 지위와 부를 쟁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지요. 겉보기에 이 시스템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완벽하게 공정한 경기장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 눈부신 사다리의 섬뜩한 민낯을 고발합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승리한 자들은 자신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라 믿으며 오만에 빠집니다. 반면,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그 모든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무능함으로 돌리며 깊은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끼게 됩니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승자에게는 오만을,
패자에게는 가혹한 굴욕을 안겨준다.
그것은 승자가 자신의 성공을 온전히 자기만의 업적으로 여기게 만들고,
운이 준 혜택을 잊게 만든다."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중


샌델은 묻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 '능력'이라는 것, 심지어 '노력할 수 있는 재능'조차도 실은 우연히 타고난 유전자나 부모의 헌신, 시대적 운이 맞물려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출발선이 완전히 다른 경주를 두고, 결승선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승자 독식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 세습, 문화 자본

불평등의 출발선을 가장 예리하게 해부한 이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입니다. 그는 부와 권력이 단순히 돈의 형태로만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부르디외는 이를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언어로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 집안의 서재에 꽂혀 있던 책들, 식탁에서 오가던 교양 있는 대화들, 부모가 쥐여준 악기, 심지어는 세상을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와 말투까지. 이 모든 보이지 않는 문화적 습속들이 아이의 몸에 체화되어 학교와 사회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압도적인 유리함을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니 이 말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과열된 입시 경쟁으로 정평이 나버린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렇습니다. 이제는 '개천'에서 사다리를 타고 신세를 한 번 고치는 게 아주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 보이지 않는 자본을 날개 삼아 쉽게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투쟁만으로도 이미 숨이 벅찹니다. 그러니 우리의 실패를 오직 '개인의 노력 부족'이라는 얄팍한 저울로만 달아보는 것은, 이 거대하고 교묘한 구조의 폭력을 묵인하는 참으로 애달픈 일입니다.


'어쩌면 이 복잡스러운 세상은 내가 노력하기 이전부터 내 자리를 정해둔 게 아니었나?'

서글픈 생각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자책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기

물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려는 성실한 땀방울의 가치를 깎아내리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에 빠지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실패의 책임을 홀로 짊어지고 깊은 자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이들에게 가만히 위로를 건네고 싶을 뿐입니다.


여러분, 충분히 애쓰셨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상처입히며 채찍질하는 손을 잠시 멈춰주세요.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당신이 겪고 있는 그 남루한 실패와 좌절은 온전히 당신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은 부서진 사다리 위에서도 떨어지지 않으려, 당신에게 주어진 몫의 최선을 다해 오늘을 견뎌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만큼은 스스로를 향해 내리치던 가혹한 채찍질을 멈추어 주십시오. "내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서글픈 독백 대신, 불평등한 세계의 구조를 직시하는 맑고 서늘한 눈을 가져보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고통이 개인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은 수치심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디 경쟁이 아름답게 만들더이까? 아닙니다. 우리는 화합하며, 연합하며, 또한 연대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만의 상상력'과 또 그것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 혼잡한 시대의 등대가 되어, 우리의 인간성을 찾는 여정에 큰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이 행복하시길. 그리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글 예고] '노력'이라는 신화의 허상을 벗겨내고 나면, 땀 흘려 일하는 우리의 '노동'이 마주한 쓸쓸한 현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5화에서는 카를 마르크스와 가이 스탠딩의 시선을 빌려 묻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된다는 낡은 거짓말." 플랫폼과 긱 경제 속에서 파편화되고 가치를 잃어가는 우리 시대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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