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친구 500명, 왜 내 방은 이토록 적막할까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와 휘발되는 유대감에 대하여

by 광규


카톡 친구 500명, 왜 내 방은 이토록 적막할까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와 휘발되는 유대감에 대하여




밤이 깊어갈수록 방안의 적막은 짙어지고, 손에 쥔 스마트폰 액정의 불빛만이 시리도록 밝습니다. 무심코 메신저 앱을 열어봅니다. 친구 목록에는 수백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고, 소셜 미디어 피드에는 지인들의 화려한 일상이 실시간으로 쏟아집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연결된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노릇입니다. 화면 속 세상은 이토록 붐비고 소란스러운데, 폰을 내려놓고 마주한 내 방의 공기는 견딜 수 없이 차갑고 외롭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겪는 뼈가 시리는 아이러니입니다. 마음 한구석이 허물어져 누군가의 온기가 간절한 밤, 수백 명의 연락처를 위아래로 훑어보아도 정작 내 찌그러진 마음을 날것 그대로 털어놓을 이름 하나를 찾지 못해 밤을 지새운 적이 있으신지요. 풍요 속의 빈곤처럼, 우리는 '연결 속의 고립'이라는 지독한 시대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가벼운 관계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 기이한 고독의 정체를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탁월한 은유로 짚어냅니다.


과거의 사회가 가족, 이웃, 공동체라는 끈끈하고 단단한 '고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면,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유동하고 형태를 바꾸는 '액체'의 상태로 변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 액체의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감 역시 형체를 잃고 쉽게 증발해 버립니다.


"온라인의 연결은 유대라기보다는 '접촉'에 가깝다.
그것은 언제든 쉽게 접속할 수 있고, 또 언제든 부담 없이 로그아웃할 수 있다."
-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중


우리의 관계는 이제 손가락의 터치 한 번으로 시작되고, 스와이프 한 번으로 쉽게 종료됩니다. 깊은 우물을 파듯 시간과 인내를 들여 서로의 내면을 알아가는 수고로움 대신, 우리는 서로의 프로필 사진과 짧은 상태 메시지만을 가볍게 소비합니다.


상처받고 싶지 않기에, 혹은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기에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언제든 끊어낼 수 있는 '안전하고 얄팍한 연결'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매끄러운 전시장의 진열품이 된 슬픔

관계가 가벼워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더 맹렬히 얽매입니다. 소셜 미디어라는 거대한 전시장에서 우리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흠결 없는 매끄러운 일상만을 편집하여 진열합니다.


그 화려한 진열장 뒤편에서, 우리의 진짜 슬픔과 남루한 상처들은 철저히 유폐됩니다. "나 빼고 다들 잘 사는 것 같다"는 착각은 질투를 넘어 깊은 소외감으로 우리를 찌릅니다. 모두가 각자의 가면을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무도회장에서, 홀로 가면을 벗지 못해 숨 막혀 하는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군중 속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갑니다. 카톡 친구가 500명이어도 내 방이 적막한 이유는, 그 500명과 연결된 것이 나의 '진짜 존재'가 아니라 정교하게 편집된 '페르소나'이기 때문입니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실컷 드러나는 SNS 세계에서는 '인간됨'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아를 꾸며내는 일은 피로감만 더할 뿐입니다. 사람이 없고, 일종의 작품 내지는 상품만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누구라도 결국에 외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상처받을 용기, 그리고 고체화된 사랑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이 얄팍한 연결망 속에서 당신이 느끼는 헛헛함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건강한 감각입니다. 그것은 기계적인 접촉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진정한 인간적 유대를 향한 우리 영혼의 오랜 갈망이기 때문입니다.


액체처럼 흘러가 버리는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닻을 내리기 위해서는 기꺼이 '상처를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합니다. 리스크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재테크의 문장이 여기서도 나름 통하는 바가 있는듯 하지요?


이제는 매끄러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의 연약함과 실패를 타인 앞에 조심스레 내어놓는 일. 그리고 타인의 남루한 고통 곁에 판단 없이 가만히 머물러 주는 일. 그것은 클릭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가벼운 접속을 넘어, 서로의 삶에 묵직하게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어려움을 짊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싸움 끝에서 빛나는 승리를 얻을 것입니다.


오늘 밤, 화면 속의 가상의 안도감을 잠시 꺼두는 것은 어떨까요. 내일은 가장 가까운 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화면 너머로는 차마 전하지 못했던 투박하고도 뜨거운 마음의 온기를 나누어 보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상처 입고 삐걱거릴지라도,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 것은 결국 그 질척하고 끈끈한 '사람의 온도'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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