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착취해야만 안도하는 슬픈 긍정의 시대
창틈으로 비껴 들어오는 주말의 볕이 참으로 다정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의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와, 모처럼 몸을 뉘고 아무런 노동도 하지 않은 고요한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가는 일요일의 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상쾌함보다는 정체 모를 짙은 피로가 밀려옵니다. 방전된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렇게 귀한 시간을 허비해도 괜찮은 걸까", "남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을 텐데"라는 불안이 고개를 듭니다.
몸은 분명히 쉬고 있었건만, 영혼은 채찍질을 당한 것처럼 기진맥진합니다. 이 까닭 모를 피로와 쫓기는 듯한 죄책감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편리한 시절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돌덩이를 나르거나 뙤약볕 아래서 흙투성이가 되는 고된 육체의 노동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사람들은 늘 지쳐있습니다. 서점마다 번아웃을 위로하는 책들이 위태롭게 쌓여있고, 우리의 내면은 늘 바스락거리며 메말라 있습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우리가 앓고 있는 이 만성적인 피로의 근원을 아주 예리한 시선으로 응시합니다. 그는 우리가 과거의 '규율사회'를 지나 '성과사회'로 진입했다고 진단합니다.
과거에는 우리를 억압하는 대상이 명확했습니다. "너는 이것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명령하는 외부의 권력, 혹은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었지요. 우리는 그 억압에 분노하고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다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금지가 아니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끝없는 긍정의 속삭임입니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지만,
성과사회의 긍정성은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한다."
- 한병철, 『피로사회』 중 "한계를 극복하라", "더 나은 자신이 되라"는 달콤한 자기 계발의 메시지들은 얼핏 우리를 응원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어떤 규율보다 더 잔인하게 우리를 옭아맵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가 주인이자 동시에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를 착취하는 자도 나이고, 착취당하는 자도 나 자신입니다.
주말의 고요한 침대 위에서 우리가 그토록 불안해했던 이유는, 내 안의 가혹한 감독관이 '자기 착취'의 공장을 멈춘 나를 끊임없이 다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흔히 우리의 이 깊은 탈진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네가 충분히 강인하지 못해서, 혹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부족해서 번아웃이 온 것이라며 가볍게 충고합니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치유와 명상을 권하며 다시금 경쟁의 트랙 위로 올라가라고 등을 떠밉니다.
하지만 우리의 피로를 오로지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치부할 때, 정작 우리를 병들게 하는 이 탐욕스러운 무한 경쟁의 시스템은 교묘하게 면죄부를 얻고 맙니다. 개인의 영혼을 땔감 삼아 굴러가는 거대한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한낱 개인의 '멘탈 관리' 문제로 축소해 버리는 현상은 얼마나 슬프고도 기만적인 일인지요.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일요일 밤, 이유 없이 밀려오던 그 무력감 앞을 서성이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느낀 그 깊은 피로는 당신이 게으르거나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가혹한 성과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당신이 당신의 영혼을 얼마나 치열하게 갈아 넣었는지를 보여주는 애달픈 훈장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 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고개를 돌려보십시오. 철저히 무용해 보이는 시간, 아무런 성과도 내지 않는 그 텅 빈 여백이야말로 질식해 가는 우리의 영혼이 깊은 숨을 고를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성소입니다.
때로는 가만히 멈춰 서는 것만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이 세계를 건너가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