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마음의 병마저 '스펙'처럼 관리할까

빅터 프랭클과 알랭 에랭베르로 읽는 우울증과 영혼의 파업

by 광규

우리는 왜 마음의 병마저 '스펙'처럼 관리할까

- 빅터 프랭클과 알랭 에랭베르로 읽는 우울증과 영혼의 파업




잠 못 이루는 늦은 밤, 머리맡의 스마트폰 화면이 파스텔 톤으로 빛납니다. 수면을 돕는 명상 앱을 켜고, 마음을 안정시킨다는 주파수의 백색소음을 가만히 방안에 채워 넣습니다. 혹은 내일의 일과를 무사히 치러내기 위해 신경안정제나 우울증 약 한 알을 조용히 물과 함께 삼키기도 하지요.


언젠가부터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다정한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약을 먹고 쉬면 낫는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이 다정한 비유의 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글픈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 해 봅시다.


우리는 과연 나의 우울과 슬픔을 온전히 앓도록 허락받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고장 난 기계의 부품을 갈아 끼우듯, 내일의 노동과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음의 병마저 서둘러 '수리'하려 드는 것은 아닐는지요.




우울이라는 이름의 자기 관리

오늘날 멘탈 관리는 현대인의 필수적인 스펙이 되었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적어 넣진 않지만, 압박감 속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고, 상처받아도 금세 툭 털고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은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노동자의 덕목입니다.


그렇기에 현대인은 자신이 우울하다는 사실조차 효율적으로 통제하려 듭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약물을 복용하고, 상담을 받는 일련의 과정들은 종종 '나라는 자본'을 유지보수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입니다. 존재의 밑바닥에서 길어 올려진 깊은 슬픔과 허무의 감정조차, 생산성을 저해하는 '오류'로 취급되어 신속하게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되어야 하는' 피곤함과 의미의 증발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랭 에랭베르는 그의 저서 『우울한 현대인』에서, 현대의 우울증이 과거와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과거의 우울이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서 비롯된 슬픔이었다면, 오늘날의 우울은 '스스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오는 무력감이라는 것입니다.


끝없이 주도적이어야 하고, 스스로를 증명해 내야 하는 성과사회의 한가운데서 우리의 신경은 무참히 닳아버렸습니다. 에랭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그저 "자신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이 지쳐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의 통찰을 포개어 봅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참혹한 죽음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그는, 인간을 살게 하는 것도 죽게 하는 것도 결국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어떻게(How) 성공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지는 쉴 새 없이 가르치지만, 왜(Why)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은 거둬가 버렸습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채 속도만을 강요받는 런닝머신 위에서, 우리의 영혼은 결국 의미의 결핍을 견디지 못하고 고장 나버린 것은 아닐까요.


영혼의 파업을 긍정하기

물론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의학적 도움을 받는 것은 마땅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울을 단지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만 환원하고 알약 몇 알로 잠재워 버린다면, 우리는 내면이 보내는 구조 신호를 영영 놓치고 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이 우울증이라는 것이 단지 병적인 증상이 아니라, 이 병든 사회를 향해 우리의 온 존재가 몸부림치며 던지는 정당한 파업 선언일 수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말한들, 지금 당장 내 몸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최종 결정권은 '나'에게 있을 뿐이니까요.


"더 이상 이런 의미 없는 쳇바퀴 속에서는 단 한 발자국도 걸을 수 없다"는 영혼의 단호한 거부인 셈이지요.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만약 지금 깊은 우울의 그림자가 당신을 덮고 있다면, 서둘러 그 그림자를 몰아내려 애쓰지 마십시오. 때로는 나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옳은줄을 알아야 합니다. 옳다 그르다를 따지자니 조금 웃기지만 말이지요.


어쩌면 그 아픔이 말입니다. 매일 밤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게하는 그 슬픔과 무기력감의 원인이 '당신의 나약함' 탓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멘탈이 약해서도, 당신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영혼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잠시 작동을 멈추고 고독의 성소로 숨어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울을 관리해야 할 스펙이나 결함으로 대하지 않고, 내 삶의 잃어버린 의미를 묻는 소중한 나침반으로 가만히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약물이 주는 얕은 마취를 넘어 진정한 존재의 치유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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