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권력
<종교 권력>
“권력을 가진 사람은 철저히 불신되어야 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paper of James Madison, edited by H. D. Gilpin, Vol. 2, p. 1073
“사회 권력이 존재하는한, 인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윤리적 자제를 요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 왜냐하면 권력이 한 곳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을 경우, 그러한 권력의 사용에 대해 내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강력한 윤리적 힘이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개인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드 니버, p227
비대해진 종교집단은 자칫 지도자에 대한 윤리적인 제재력이 상실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자한다.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의 성공사례가 있냐는 말은 옳지 않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개혁이 성공했냐는 말은 바른 말이 아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한다.”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어거스틴에서 시작되어 칼바르트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 개혁의 지속과 갱신은 곧 교회는 개혁된 상태로 존재함이 아니라 끊임 없이 그 정신을 계승해야함을 의미한다.
개혁된 상태의 교회가 존재하는가? 수세기전 개혁자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교회는 이내 정치적인 명목하에 분립되고 분단되어 수백가지의 분파로서 존재할 뿐이다.
교회의 전체적인 개혁은 환상 속의 이야기 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면 그들이 이미 “하나된 교회”라는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라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전체 교회를 하나로 생각하지 않는다. 개교회의 생존. 그것이 현대 사회 혹에서 교회에게 던져진 더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비대해진 종교집단에서 종교적 신비라는 맹점을 가지고서 해석의 권위를 독식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장로의 권위를 마치 공동체 내부의 권력으로 치환하여 정치적 영향력과 종교적 완숙함 그리고 도덕적 온당성까지 고작 몇년 신학을 공부했다는 이유 하나로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특권 계급은 어디서나 그렇듯 사회의 불의가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인식할 만큼 그 불의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렇게 공동체는 목회자가 상주함에도 버려진다.
아니. 처음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신학의 길로 빠져들었을지 모르는 기도하던 입술의 말로가 어떠했는가? 지옥의 업화가 타오르듯 좌우로 갈라진 세치혀를 낼름 거리며 성도의 영혼을 취식하고 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권력을 휘두르는 만큼 그들은 뭇 동료사역자와 후배 신학도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동역하는 귀한 성도들에게 비판과 불신의 대상이 되어본적이 없다. 적어도 스스로 채택한 방법론에 대한 회의적인 성찰과 비판적인 성토가 지속되었어야한다.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면, 자신 스스로에게 만큼은 끊임없는 불신의 시선과 질문을 던졌어야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려다봄’이라면, 신자의 자기 사랑은 ‘되돌아봄’이 되어야한다. 그랬어야했다.
더이상 외부의 개입으로도 이 독점적이고도 배타적인 사역자 카르텔을 부술 수 없다면, 정통이 되어버린 부조리를 어찌해야하는가?
친분 관계에 의한 사역지 이양은 최선 혹은 차선 또는 차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교회 사유화의 단적인 예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과거의 환상에 취해버린 종교집단은 이미 보편적 언어를 상실한채로 공중에서 분해될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한부와 같다.
환난 속에서 그때가 언제까지리이까 묻지 말라. 향수를 품은 우리의 옛적은 이미 지나고 없다.